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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븐니 Sep 06. 2021

때 아닌 '삐꾸논쟁' : 비정상회담

송블리의 공감 에세이 l 성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병신과 머저리>는 전쟁 당시의 상처를 극복하려는 두 형제의 모습이 담겨있다. 우리 집에서도 때아닌 삐꾸 논쟁이 일어났다. 발단은 강아지인 '솜털'이와 '뭉치다'. '솜털'이는 그의 습관으로 혀를 삐딱하게 내놓고 걸어 다니는 모습이 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고 '혀가 삐꾸가 된 모양', '혀 삐꾸 솜털이'라는 귀여운 애칭으로 솜털 이를 놀려준다.(?) 뭉치는 듬직하고 장군 같은 기세로, 사랑을 받는 강아지인데 그의 목소리는 가끔 스트레스 지수를 올리는 데시벨로 상승하기도 한다. 그래서 뭉치의 그런 점을 보고 우리는 '목 크기 삐꾸 뭉치'라는 애칭으로 뭉치의 씩씩한 목소리에 지쳐가는 날들에 뭉치에 대한 별명을 불러주기도 한다. (간식과 산책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있으니, 이런 애칭을 잠시 부른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이렇게 우리 집안에 '삐꾸 논쟁'이 일어났다. 엄마는 같은 말을 너무 많이 반복해서 '반복 삐꾸', 아빠는 길을 가다가 자신의 성질을 잘 못 참아서 '화삐꾸', 언니는 가족들을 잘 챙기다가도 때로는 배려심이 없는 모습이 있어서 '성격 삐꾸', 나는 커가면서 가족들과 어울리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서 '소통 삐꾸'. 이렇게 가족들의 모습이 정상인 점은 하나도 없는 삐꾸들의 모습을 갖춘, 그야말로 '비정상회담'의 소통이 열리게 되었다. 이러한 애칭에는 누구를 비하하거나 비아냥거릴 의도로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의 아쉬운 점을 '삐꾸'라는 단어에 담아 고치고 돌아보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장난을 치는 시간이다.


어린 학창 시절, 남학생들이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장난을 한번, 두 번 걸듯이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서로의 고칠 점에 대하여 장난을 건다. 한편 삐꾸는 좋은 점을 지칭하는데도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에 대한 배려심이 너무 많은 사람들은 '배려심 삐꾸'. 누군가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너무 많은 사람들은 '사랑 삐꾸'. 누군가에 대한 이해심과 이타적인 마음이 큰 사람들은 '이해심 삐꾸'. 그렇게 좋은 점이 과잉된 그릇이 큰 사람들 역시, 평범한 우리가 보기에는 그 덕목의 총량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좋은 의미에서의 '삐꾸'로 지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 집에서는 이 은어인 '삐꾸'를 사용하면서 서로의 아쉬운 점, 잘하는 점에 애정을 담아서 논하기를 즐겨할 것 같다. 솜털이의 리즈 모습인 '혀 삐꾸 모습'을 보면서, 뭉치의 가장 매력적인 '목 크기 삐꾸 모습'을 보면서도 우리 가족은 오래 살아온 솜털, 뭉치를 사랑할 것이다. 오늘은 때 아닌 삐꾸 논쟁에 배꼽이 도망가기 직전까지 웃어본 우리 가족들의 행복한 추억을 떠올리며 다소 생소한 단어일 수도 있는 '삐꾸'에 대하여 이런, 저런 기록을 남겨본다. 나의 글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진실성이 있는 글로 발전하는 '글쟁이 삐꾸'가 되어보기를 소망한다. (참고- '9월 휴식'을 외쳐놓고, 글쓰기 발행으로 휴식을 하고 있는 나의 알다가도 모를 글을 공유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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