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븐니 Sep 10. 2021

부모님을 왜 공경해야 합니까?

●매거진 <가브리엘을 닮아 소식을 전해요> 4회

●매거진 <가브리엘을 닮아 소식을 전해요> 4회


어린 시절의 주일예배시간 l <서프라이즈> 보면 안 되나요?

기독교에는 ‘부모님을 공경하라’라는 계명이 있다. 이건, 그야말로 계명이다. 문자 그대로 부모님을 존중하고 공경해야 한다. 엄마는 어린 시절부터, 나를 오전 예배에 항상 데리고 다니셨다. 11시에 오전 예배가 시작되기에, 10시부터 집을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좋아하는 프로그램 편성시간과 겹쳐 괴로웠다. 이 시간은 어린 시절 내가 정말 재미있게 시청한 MBC <서프라이즈>가 하는 타임이었다. 나는 당시에 <서프라이즈>에 나오는 코너 중에서 [진실 혹은 거짓]이라는 코너를 좋아했다. 세상에 일어나는 신기하고 신비로운 일들을 차례차례 보여준 다음 그것이 진짜 있었던 이야기 인지, 아니면 허구로 꾸며낸 이야기인지 시청자가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이 프로그램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이 주일만 되면 <서프라이즈>를 보고 싶은 나의 손을 잡고, 거의 반 강제(?)로 교회 유년부에 데려다가 앉혀놓으셨다. 울상을 하고 차를 타고 따라나서면, 가는 길도 멀고 길이 좁고 험해서 차 안에서는 울렁울렁 멀미가 나곤 했다. 오바이트 직전까지의 요동치는 속을 부여잡고 나는 '찬양율동반' 특별석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열정 리더는 교회에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던 것. 반 강제로 끌려감에도 ‘찬양율동반’에서 봉사를 하였다. ‘찬양율동반’의 가운을 입고 친구들 앞에서 찬양 율동 봉사를 하고, 찬송을 부르면 교회에서는 맛있는 식사를 제공해주었다. 당시에 친구들과 옹기종이 모여 앉아 교회의 식당에서 식사를 나누던 추억이 생각나서 <서프라이즈> 시간에 나를 교회에 데려간 엄마를 용서하고 있다. (어린 시절 보고 싶었던 서프라이즈를 못 봤던 게 불쌍하기라도 했는지, 커서 '서프라이즈'의 대세 여배우님을 만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_^V)

<인물사진: 작가님과 배우님과의 사진촬영 l 풍경사진: 어린시절 방문한 교회의 모습>

그렇게 11시 예배가 끝나고 나면, 집에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심이>라는 만화 영화와, <달려라 하니>라는 만화영화 선물. 예배가 끝나면 엄마는 항상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주었다. 동네에 만두집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만두나 어묵국, 떡볶이를 자주 사다가 오후의 시간에 맛난 식사를 대접해주었다. 또, 젊은 시절에 엄마는 요리하기도 즐겨하셨는데 냉면, 쫄면, 김밥 등 손이 많이 가고 간을 잘 맞추어야 하는 음식도 정말 맛있게 해 주셨다. 오전에 10시까지 시간을 맞추느라 옷을 입고, 채비를 하고, 성경책을 들고나가는 모든 과정은 역대급 귀찮음을 선사하는 준비기간이었지만 엄마의 이런 특별한 서비스로 인하여서 피로가 풀렸다. 이후에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 시간만 되면 <영심이>와 <달려라 하니>라는 보상을, 엄마가 주일마다 선물해주는 특별요리 서비스를 기다리게 되었다.


성인이 된 나의 예배 습관 l 부모님께 버려졌다는 생각이 든 시간들

이와 같이 어린 시절부터 주일에 말씀을 듣는 것이 습관화된 나는, 20대가 넘어서는 홀로 예배를 찾아다녔다. 예배당에서 흘러나오는 찬양 소리와, 그 장소를 가면 나는 특유의 예배당의 향기가 있어서 지친 날에는 가서 예배를 보거나 기도를 했다. 그러면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힘든 일이 생기거나, 원망할 일들이 생기면 보통 믿음이 없어지고 신앙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고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쩐지 나는 힘든 순간에 더욱 믿음이 강해졌다. 그리고, 기쁘고 자랑거리가 넘치는 순간 역시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자만하여, 그 믿음이 흔들릴 법도 할터인데 그렇게 믿음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더 많은 헌금을 할 수 있어 감사한 날들이라고 여기며, 어린 시절부터 예배를 드릴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꾸준히 신앙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지금처럼 교회의 모임에 제한이 없을 때에는 크고 작은 행사나 뮤지컬 공연, 연주회 같은 것들도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봉사자 들과 삼삼오오 모여, 성경말씀에 근거한 창작 뮤지컬, 관현악의 연주가 어우러진 연주회, 교회 이웃 돕기 행사 같은 것들이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열린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 보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기도를 하고 모이기를 힘쓴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지금의 제한된 상황이 더 촉발시키는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은 감정일 것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온라인을 통한 예배가 주류를 이루다 보니, 예전에 어린 시절과 청춘의 시절에 나의 주일을 책임져주었던 그 장소와 시간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오프라인 예배가 완전히 제한된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이동에 제한이 생긴 점에서 예전만큼 자유로운 상황이 아니니 아쉬움이 크게 드는 부분이다.


이와 같이 코로나로 인하여 온라인을 통한 예배가 더 활성화되고, 점점 성인이 되어가며 엄마와의 갈등을 겪어가면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의 말씀이 와닿지가 않게 되었다.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던 상황적 어려움 앞에서 왜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약간의 물음표도 생겼고, 정말 대화조차 할 수 없는 갈등의 무게 앞에서는 그 계명이 솔직하게 말하자면 꼴 보기가 싫었다.  ‘다 큰 성인은 알아서 해야 한다, 내가 너의 나이에는 이런 것 까지 했다.’라는 엄마의 인간적인 조언과 충고가 때로는 지독하게 외로움을 주고 심장을 후벼 파는 잔소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나를 지금 이 나이까지 키워달라는 건 아니지만, ‘다 큰 성인도 힘들고 아프면 위로받고 싶다. 엄마 세대와 우리 세대의 환경과 삶의 모습이 다르다.’가 나의 속마음이었다. 그렇기에 엄마에게는 대들면서 내색하지 않아도, 마음속에는 큰 상처가 생겨 좀처럼 예전 같은 입맛이 돋아나지 않았다.


엄마와 사이가 정말 안 좋은 날에는 시편의 말씀으로, 나의 처지를 위로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편 27:10)라는 말씀이 있다. 가족에게 버림받았단 기분을 느껴보면, 인생에 큰 의미가 없어진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해왔던 모든 노력과 열정에도 회의감이 느껴졌다. 내가 제일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 했던 상대에게 버려졌다고 느끼면 그 사람의 마음엔 핏방울이 맺힌다. 사랑과 존중을 바랐는데 그와는 정 반대로 나를 대하는 많은 것들. 어린 시절에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 같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 같았던 엄마가 나에게 제일 상처가 되는 존재로 바뀌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처음엔 현실을 부정했다. 엄마는 그래도 날 믿겠지. 하지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다 변해도, 엄마는 끝까지 소위 말하는 내편, 든든한 내 지원군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단 사실.


엄마를 그만큼 사랑했기에, 끝까지 엄마의 인정과 사랑을 바란 지도 모르겠다.

Image-Pixabay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 l 갈등을 통해 성장한 시간들

그렇게 첨예한 갈등의 시간은 꽤 지나고, 서로의 상처를 바라볼 기회가 운 좋게 생겼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던 부분들도 서로 거리를 두고 바라보니까 이해의 접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예전 어린 시절만큼의 관계까지는 되돌이킬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상처가 봉합된 사이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전적으로 다 이해할 순 없다. 은연중에 나에게 했던 모질게 퍼부었던 말들과 생채기를 낸 말들, 냉정했던 태도를 곧이곧대로 용인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다만, 성경의 십계명의 '부모를 공경하라'는 한 명령처럼,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를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 (잠언 30:17)라는 잠언의 한 구절처럼 그 명령을 지켜보려고 한다. 계명과 말씀을 마음에 새겨 부모를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현실이다.


나는 평생을 싸우지 않고 좋은 관계로 남아있을 줄 알았던 부모님과의 관계가 전면 틀어짐에 따라서 인생과 인간관계, 나의 철학에 대한 여러 가지 부분들을 많이 생각할 수 있는 날들이 허락된 점은 감사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 갈등의 터널 속에서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 계속적으로 다가옴에 따라서 나의 밝은 에너지가 점차적으로 검게 그을리게 된 모든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생각하기 싫은 날들이다. 그렇게 부모님도 때로는 ‘하나님’이 아니기에 나의 마음과 상황을 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너무 늦은 나이에 깨닫게 된 건, 내가 정말 철이 덜든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몸만 성장한 어른이로 자라 버린 탓에서 비롯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과의 관계도 변화하기 마련이란 것을 누가 알려주기라도 했으면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인생에서 주어지는 숙제는 이렇게 해답이 숨겨져 있어서 도통 알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다.


그렇게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천륜인, 부모님과의 관계로 인하여 오랜 시간 많은 고민을 하다 보니 이와 같은 성경 구절을 하나, 둘 찾을 수 있었다. 인생에 숨겨진 해답을 찾기 위한 시도에서 덮어두었던 성경을 꺼내 읽고, 부모님의 역할과 자식의 도리를 생각하며 나의 인생관은 이전보다는 성숙해지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성찰함에 따라서, 명령의 약속인 성경 구절을 좇아감에 따라서 나의 상황과 부모님의 마음을 점차적으로 헤아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듯싶다. 이제 부모님은 내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젊음이 넘치고 힘이 센 장군, 전사의 모습보다는 세월의 시절을 거친 힘이 다소 약해진 대왕과 대비마마가 되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모님을 향한 기도와, 화해의 시도,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 어린 시절 나에게 친구가 되어주었던 그들처럼 나도 그들의 인생 후반부의 친구가 되어주는 것. 그런 것들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이제 그 젊은 시절의 장군, 전사가 된 내가 부모님의 앞길과 아픔을 나눌 수 있는

마음 넓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작가의 이전글 스몸비(Smombie)와 스좀비 : 스마트폰 중독사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