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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븐니 Oct 25. 2021

꿈을 꾸고 보니 이해되는 너의 입장-역지사지(易地思之)

캥블리의 가족 이야기 l 사랑을 양보한다는 것에 대하여

긴 잠을 깨고 일어난 아침, 유독 힘든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꿈에서 화가 나서 화를 내며 잠을 깬다던가, 슬퍼해서 가슴 한편에 파스가 붙여진 듯한 쓰라림과 동시에 깨는 날들. 오늘은, 슬픈 꿈에서 깨어난 날이다. 무엇이 슬펐는가? 사랑을 빼앗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엄마가 내가 아닌 다른 아이를 업고 달려가는 모습이 너무 슬펐다. 어린 시절, 동생 없이 내가 막내로 자라다 보니 엄마가 요즘 조카를 많이 예뻐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질투가 나고 슬펐나 보다. '저 자리, 원래 내 자리였는데..' 나와 언니에게는 찬바람 '씽씽'날리면서 냉정한 면모를 많이 보이던 엄마가 요 근래 손주 보는 덕에 웃음이 많아진 모습을 보인다. 영상통화로 보이는 귀여운 손주 녀석의 애교에 나에게는 어린 시절에나 보여주었던 상냥한 미소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받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넘겨야 하는 시기가 온다. 그것이 사랑을 양보해야 하는 사람에게 충분히 이해를 구하고, 이제 다른 사람이 그 사랑을 필요로 하는 시기라고 사전에 미리 알려주면 그 충격은 덜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사랑을 양보하는 이에게 그 과정의 설명이 없이 사랑을 양보해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기도 한다. 언니와 나의 이야기다. 언니는 세상에서 혼자 받고 있던 사랑을, '동생의 출현'으로 인하여 사랑을 양보하고 나누어야 했다. 엄마의 실수는 사랑을 양보하고 분할을 해야 하는 시점에, 그 사랑의 분량이 이제 동생에게 조금 갈 수도 있다고 원래 있던 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던 점이다.


엄마의 미흡했던 애정에 대한 설명과정과, 그걸 느낀 사람들의 증언을 들으니 정말 내가 사랑을 빼앗은 장본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원래 있던 이는 '나보다 귀여운 동생이 태어나서, 나의 사랑을 나누게 되었다.'라는 인식을 한 듯 보인다. 분명 부모님은 자식 둘을 공평하게 사랑하시고 키웠다. 그리고 첫째라는 이름하에 장녀인 사람에게 더 애정을 보이고 사랑의 마음을 표현할 걸 나는 같이 큰 입장에서 보아왔다. 그렇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난 순간은 나를 더 사랑하시는 듯했지만, 그건 아기니까 그런 거고. 첫째인 언니를 많이 의지하고 든든한 자식이라고 생각하며 사랑으로 보듬었다.


그리고 나는 항상 막내 같은, 아이 같은 자식으로 키우셨다. 물론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열정 리더, 야무진 장녀같이 보이는 막내였지만 집에서의 분위기는 내가 밖에 나가면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인 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가족들의 선입견으로 언젠가부터 가족모임이 꺼려지게 되었다. 내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나를 투영시키는 그 모임이 싫어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부모님이 날 사랑하지 않는 순간도 스스로의 자뻑과 착각 속에 서 '이건 분명 나를 위하여 마련해놓아 주신 걸 거야, ', '역시 우리 아빠 엄마는 나를 위해 주시는 분이야'라며 밝은 오해를 하며 살아왔다. 사랑의 의도가 아닌 순간도 사랑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과 사랑의 의도였던 순간을 사랑이 아니라고 믿으며 살아온 사람의 성향이 섞여 부모님의 사랑을 온전히 느끼는 자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극과 극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서로 해석하며 싸워온 우리는 어린 시절에서부터 사이가 좋을 리가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분할하게 된 우리의 관계? 살벌하면 살벌할 정도로 경쟁적인 관계이기도 하였던 적이 많이 있다. 때리고 꼬집고 서로가 서로를 골탕 먹이면서 자랐으니 말이다. (물론, 협력관계로 서로의 어려움을 같이 해결한 적도 많다.) 그런데, 지금 커서 엄마가 다시 사랑을 손주에게 분할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언니의 감정과 심정을 알게 되는 역지사지를 느끼고 있다. 손주는 아기니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니까 사랑을 주고 애정을 줘야 하는 설명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도, 내가 있었던 자리에 누군가가 나타나 그 사랑을 받는 것을 보니 왠지 서운하다. 내가 조카를 사랑하고 업어주는 것은 좋지만 나의 엄마이자 조카의 할머니인 그 신여사가 나는 업신여기고 조카에게 살갑게 대하면 왠지 모르게 슬프고 서러워졌다. T_T


누군가에게 사랑을 내어주고 양보하는 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거였다.

어린 시절 나의 등장에 많은 충격을 받고, 사랑의 양보를 기꺼이 하며 자란 나의 어떤 형제를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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