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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븐니 Sep 18. 2021

어린 시절의 추석-중간고사 준비기간

송블리의 추석 관습 | 추석특집 특별기획 추억 에세이

어린 시절의 추석 l 영화 보는 것을 무릎을 찔러가며 참았습니다.


7월, 8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벌서 9월이 되었고 이제 추석이 코앞에 다가왔다. '추석'이 다가오니 어린 시절에 명절을 보낸 기억이 생각난다. 학생 시절에는 이맘때가, 한창 개학을 하고 중간고사나 수행평가를 준비하는 학업 특수 시기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추석명절에 항상 일일 계획을 세워놓고 해야 할 공부 과목에 대한 계획표를 작성하였다. 추석 연휴의 첫째 날은 수학 위주, 추석 연휴의 둘째 날은 국어 위주, 추석 연휴의 셋째 날은 영어 위주. 그리고 그 뒤로 좋아하는 여타의 과목들을 배정하여 추석이라는 연휴에 학교 사물함에 있는 온갖 책들을 무겁게 바리바리 집으로 가져와서는 그 과목을 정리하고 복습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 과거 시절에는 TV가 지금처럼 다시 보기, 구매하기의 기능이 없는 모습으로 지금보다 훨씬 통통한(?) 네모상자의 일방향성의 시청권을 가지게 한 TV였다. 신문지에 나와있는 편성 시간대에 프로그램을 시청해야 했던 비교적 폐쇄적인 시청 선택의 구조였던 사회였다. 다시 보기를 하자면, '비디오테이프'에 그 프로그램을 녹음해서 다시 보기를 해야 한다거나, 인터넷에 올라오는 영상으로 보고 싶은 영상을 찾아야 했다. (그래도, 지금처럼 빠르거나 화질이 좋게 올라오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편성시간에 그 프로그램을 사수하여 시청하는 것'이 비교적 익숙했던 시대에 나에게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는 마약 같은 영화였다.


호빗족으로 나오는 프로도(일라이저 우드)와 엘프족으로 대표되는 레골라스(올랜도 불룸)가, 아라곤(비곤 몬테스)이 너무 멋있어서 그 영화가 추석특집으로 시리즈로 방영될 때마다 시청의 유혹이 다가와서 정말 괴로웠다. 게다가 사우론과 대비된 간달프 선생님의 자상함과, 영화의 신화적 요소가 겸비된 그 판타지 영화가 너무 재미있고 보고 싶어서 좀처럼 TV와 리모컨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말 보고 싶은 시청의 욕구를 제어한 채, 나는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이 당시에는 정말 영화를 보지 못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미리 설정해놓은 과목 계획표대로 공부를 하는 것이 정말 독한 과정이었다. 다시 하라고 하면, 아마 못할 것이다.


추석 기간이 되면, 나는 그렇게 어린 시절에 나의 시청에 대한 열망을 제어한 시절이 생각나면서 계절의 향기를 추억한다. 그때 정말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참았지?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하면 그냥 영화나 실컷 봤을 거야~!라고 생각을 하면서, 그 당시의 나의 참을성을 우러러보고 위로한다. 나는 정말 '학업과 공부'에 엄청난 시간 투자(?)를 해온 셈이다. 그렇게 공부계획대로 어느 정도 하루가 지나면, 저녁이 돼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래도 계획표대로 공부를 할 수 있었구나, 정말 영화는 보고 싶었는데'라는 속마음을 계속 달래면서, 그렇게 먹고 싶은 사과를 먹지 않았던 나는 아담과 하와가 보면 칭찬을 해줬을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추석 특선 영화가 나오면, 이제는 참지 않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보니, 참는 것에 대한 이상반응이 나타났다. 보고 싶을  보지 않고, 먹고 싶을  먹지 않았던 과거의 나의 모습이  이상 '참음' 허락하지 않았다. 이후로는 성인이 되어서는 시험을 조금  보더라도 보고 싶은 것은 보고, 먹고 싶은 것은 먹고, 잠도 조금은 허락해 가면서 그렇게 나에 대하여 너그러워졌다. 그리고 과거처럼 독하게 하려고 해도 이제  이상 그것이 체력적으로 허락되지 않았다. 과거에 한번  역치를 최대치로 끓어 올려서 사용했으니 몸에서는  이상 수준의 노력과 체력이  이상 생성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나에 대하여 관대해질  있었다.


만약에, 그 당시에 지금처럼의 영화 다시 보기나, 왓챠, 넷플릭스 같은 시청 플랫폼을 이용하여서 나의 시청에 대한 열망을 달래줬더라면 그렇게 서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고정적인 상황으로 제한적인 것이 많았다. 편성시간을 놓치면, 바쁜 나날에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까지 그걸 빌려온다는 게 얼마나 부지런한 사람의 일상이란 말인가? 그렇게 해서 보지 못한 많은 영화와 TV 프로그램들을 아주 성인이 되어서 원 없이 보는 날들도 허락되었으니 인생은 공평하다는 생각도 든다.


추석이 되면, 그렇게 영화와 인내, 추억과 아픔이 동시에 들면서 마음이 애잔해진다. 추석 명절에 늘 먹던 음식 냄새가 나면 가족들의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그때의 잔향들이 아직 내게는 크게 남아있어 그렇게 홀로 씨름하고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했던 어린 시절의 나의 고독한 시간들이 생각난다. 문을 닫고, 홀로 의자에 앉아, 어떤 말도 내게 건네지 않는 책을 보며 나의 이성적 영역을 확장시키는 과정이 웬만한 고독감과 외로움을 주는 게 아니다. 그 자리는 정말, 위대하고 숭고한 희생의 자리임을 추석이 다가옴에 고해 드린다. 추석에 만나는 학생들에게 함부로 성적을 논하지 말라. 추석에 만나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함부로 논하지 말라.


* 추석 잔소리 비용 정산표가 날아올 수도 있으니, 특별히 잔소리는 아껴둡시다. *


너 공부는 잘하니? = 십만 냥

너 취업은 했니? = 이십만 냥

너 결혼은 안 하니? = 삽십만냥

너 학교는 어디 가니?= 사십만 냥

너 아이생각 있니?= 오십만 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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