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퀸븐니 Feb 25. 2023

그래서, 몇 학년인데?

<송븐니 나라에 송븐니> l 아침부터 힘이 빠지는 날.

며칠 전의 일이었다. 오늘은 왠지 가방도, 화장품도 갖고 다니고 싶지 않은 바쁜 아침 날. 블리는 가뿐한 패딩하나와 해맑음을 장착하고 집을 나서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하여 버스를 찍는 순간, "잔액이 부족합니다."가 나온다. 그런데, 그날따라 교통카드가 연결되어 있는 카드들을 몽땅 First Wallet에 넣었고, Second Wallet의 카드에도 그리 많은 돈이 남아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더군다나, 그날따라 현금이 아예 빵밍아웃이 되어 이러다가는 아침 시간에 늦는 대형사고가 발생할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드는 날. 왠지 서러운 마음에 눈물이 폭풍처럼 흐르는데‥ 다행히, 빠르게 버스를 내리고 택시를 잡긴 잡았다.


(타자마자,) 서러운 마음에 급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데.. 목적지를 말해야 되는데, 울면서 말한다.


블리: XX고등학교 잎이욝.. 흐엉으억흐얼얽


기사님: 왜 울어요?


블리: 늦었는데,, ㅠㅠ흐억으헝ㄱ흐얽


기사님: 아이구, 우리 공주님이 우니까 할머니 마음이 안 좋네, 

울지 말고 오늘은 기분 좋게 시작하도록 할머니가 빨리 운전해 줄게.


블리: 흐얽흐얽흐얽럭 ㅠ.ㅠ



ㅋㅋㅋ 블리는 그날 아침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과 너무 열심히 사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여서 갑자기 택시에 앉는 순간 눈물이 나게 된다. (물론, 블리 요정은 아침마다 매우 빛나고 아름답지만 말이다. ㅎㅎㅎ) 그래서,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순간에 눈물이 터지면서 잠시동안 목적지를 말하며 서러움 폭발한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할머니는 나를 보시더니, "근데 고등학교 몇 학년이니?"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슬픈 마음에 갑자기 나를 학생처럼 어리게 봐주시는 할머니의 멘트에 기분이 좋아져, "저 학생 아닌데요...ㅎㅎㅎㅎㅎ"라며 다시 울음을 멈추고 택시 안에서 서러운 마음을 달랠 수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할머니가 울고 있는 나의 기분을 달래기 위해 했던 멘트성 발언 아닐까?ㅎ.ㅎ 왜냐면, 나는 옷도 메이크업도 누가 봐도 성인처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내가 아직은 순수하고 착하기 때문에 좀 젊어 보이는 면도 없지 않아 있어 보인다. 물론 내 생각이니까 너무 불편하게 듣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 그날, 하루종일 기분이 저기압으로 아침부터 왠지 모를 서러움에 잠식당할 수 있을 뻔한 날에, 처음 보는 승객인 나를 '공주님'이라며 자신의 자녀/손녀 다루듯이 대해주신 할머니의 다정다감함과 따스함을 당분간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아 그리고, 깜빡이 켜고 안 들어온다고 무지막지한 사이다 같은 발언을 날려주셔서 차에 관심많은 블리에게 운전법도 알려주신 할머니의 마음이 당분간은 깊게 생각날 것 같은 2월의 정오다. :)




작가의 이전글 2,700개의 글을 작성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