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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븐니 Nov 23. 2021

정처 없이 떠도는 블리의 밤

이 시대의 대표 캥거루족 CEO 캥블리의 하루 l 고민 많아지는 밤


한 바다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 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가슴에 근심 가득 잠 못 드는 밤

새벽달 창에 들어 칼을 비추네


-한산도 야음, 이순신- 『조선시대 인물의 재발견 』-일 조각. 1997-


이순신은 병력과 전투력이 우세했던 외세의 공격에 대한 나라에 걱정으로 저, 달이 아름답거나 처량한 것이 아닌 자신의 칼을 비춘다고 말하며 걱정과 근심의 시를 지었다. 평온한 일상 속에서도, 다가오는 선택/고민/인생의 다양한 문제들 속에서 달이 아름답게 보여야 할 여유보다는 눈앞의 문제들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다. 20대에 크고 작은 사회 경험을 돌이켜보면 인생은 방학 계획표처럼, 내가 계획한 대로만의 일들로 흘러갔던 것 같지는 않던 것 같다. 계획한 일들이 바다의 항해하는 배처럼 순조롭게 흘러가며 진행되었다가도, 이내 예고하지 않은 큰 파도가 다가오는 것처럼 계획한 일들에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생긴 적도 많으니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열정의 온도도 내려가고 자신감의 어떤 것들도 조금은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보다는 더 보아야 할 현실의 무게와 문제 같은 것들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자연스럽게 10대, 20대의 패기는 조금씩 멀어져 가는 듯하기도 하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는 것들이 남아있기는 하다. 이러한 것들은 잘 지켜가면서, 현실 속에서 주어진 태제들도 잘 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공존하는 30대가 된 지금은 어쩐지 자신감 많은 '당당이' 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겁쟁이'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모든 일 다,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말자"라고 스스로 체면을 걸면서 하루하루를 체면을 걸고, 다독여본다.


우리 할머니가 나를 보면, 내가 20대인지, 30대인지, 40대인지 아마도 구분을 못하실 수 있다. 이제 정말 연세가 100세를 앞둘 정도로 오랜 세월 앞에서 할머니의 눈에는 내 나이가 구분이 안 될 것이고, 내 나이가 구분이 된다고 해도 난 여전히 할머니의 귀여운 손녀일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할머니는, TV나 드라마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손녀들에게 아기자기하게 마음을 표현해주시지는 않는 스타일의 할머니셨지만 누구보다도 자식과 손녀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 내 이름을 아직도 까먹지 않고 외우시면서 기도해주시는 할머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할머니의 고향도 자주 찾아가고, 그 여행길에 기차여행도 즐겼는데 할머니가 가끔씩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나의 작은 일상 에세이에 위인, 이순신의 시를 인용한 것이 조금은 부끄럽지만, 할머니는 한국전쟁 이후 그 힘든 피난길에서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부산까지 내려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목숨을 걸고 지켜준 그 보금자리에서 나는, 인생을 살아갈 때 나라를 지키려고 전쟁에 참여한 누군가처럼 아주, 정신을 바짝 차리면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내 인생이 때로는 전쟁터처럼 아주 힘들고, 고되고, 심신이 괴로운 날들의 연속인 날들도 있지만 나에게 행복하고 감사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준 할머니,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오늘도 근심 가득한 밤에 달빛에 동동 비치고 떠다니고 있는 나의 걱정거리를 위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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