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븐니 Nov 30. 2021

[Wien] 국제적 미식가 블리의 오스트리아 맛집 방문

송블리의 동유럽 보고서 | 피그 밀러&벨베데레 궁전


국제적 미식가

송블리의 비엔맛집

전지적 일기시점


https://brunch.co.kr/@songvely1004/101

그렇게 도시의 청초함을 지닌 오스트리아에서의 행복한 전반의 여행이 끝나고 후반의 여행 여정이 남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조금 여유를 가지며 맛있는 식사 장소와 트램 타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빈 분리파의 거장이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유명한 클림트의 작품 <키스>가 있는 벨베데레 궁전을 방문하기로 일정을 정한다. 사실, 계획적으로 이러한 장소들을 미리 정해서 간 것은 아니고 우리의 그날 여행 비용이나, 혹은 여행책 속에서 조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곳을 고려해서 결정하게 되었으므로 자유여행에 더욱 방점을 두며 여행이 진행된 점을 밝힌다.


여행이 진행될수록, 캐리어의 무게는 더욱 무거워졌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누어 줄 각 국의 초콜릿 수집에 여행길이 더욱 신이 나며 인생 최고의 편안함을 누리는 유럽여행이 진행되고 있었다. 언젠가 TV에서 유럽의 어원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오루페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제우스와 이오루페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을 수 있는 유럽의 다양한 모습이 내 청춘의 역사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꽤 오래 전의 해외여행이지만, 아직도 어제 방문한 장소처럼 친근함과 낭만을 남겨주고 있다.

<슈니첼과 청포도 쥬스가 맛있는 피그밀러, 포토바이-송블리>

프라하에서 방문하여 접한 음식, 꼴레뇨만큼이나 맛있는 독일식 돈가스 같은 슈니첼. 모차르트의 집을 방문한 이후 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 방문한 이곳은 노란 색감의 인테리어와 아늑한 조명으로 오랜 관광을 한 투어리스트들의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친구와 나는 사이좋게 서로의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어주고 인생 사진이 나왔다면서(?) 빨리 카톡 프로필 사진 바꾸자고 사진 나부랭이에 난리 법석을 떨었다, 그렇게 즉각 즉각, 프로필 사진을 바꾸곤 친구들에게는 사뭇 근엄한 말투로 "어, 나 지금 Wien이야"라며 허세를 부린 경험이 있다.

(주소: Wollzeile 5, Vienna 1010 Austria)

홈페이지 예약:https://figlmueller.at/en/


슈니첼의 이름의 유래는 '음식을 얇게 썬 조각'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 요리 에스칼로피와 비슷하다고 한다. 고기의 종류로는 송아지 고기, 양고기, 닭고기, 쇠고기, 칠면조 고기, 돼지고기 등의 다양한 고기로도 요리가 가능한 모양이다. 송블리가 외쿡에서 송아지 고기를 먹는 현장을 부모님께 사진으로 보내드리면 송블리의 부모님들은 자신이 해외에 있는 것 마냥 빙의되어 함께 응원을 해주고 많은 시차에도 빠른 답장을 해줬다. 아주 흐뭇한 마음을 가진 채로 "블리야, 좋은 시간 보내고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조심히 돌아오너라"라고 집 나간 딸내미의 여행길을 서포트해주시고 계셨다. ^^ (슈니첼 정보- 위키백과 참고)


벨베데레에서 만난

클림트 작품을 본

블리의 전지적 소개시점


<벨베데레 궁전과 클림트의 키스 작품을 보다. 포토바이-송블리>

제가 사실, 국제적 미식가로서 먹는 것은 정말 잘하고 즐겨하는데요. 미술작품을 보는 눈이 아직 미린이 수준이라서 사실.. 이 구스타프 클림프 작품을 공부하고 오스트리아 여행 편을 올리려고 동유럽 보고서의 작성 공백기간이 꽤 길었다는 뒷 이야기를 보태며 트램을 타고 Belvedere 궁전을 향했습니다. 사실 말이죠. 이 여행 때에는 보고 즐기는 재미에 한 화가와 작품에 대한 깊은 감상을 하기에는 시간이 좀 부족할 수도 있다는 사실~! 미리미리 공부를 하면 좋았겠지만 저는 사실 스페인을 유럽여행의 첫 여행지로 가고 싶기도 했는데 친구의 의견에 따라 이곳을 오기도 한 편이기도 하고, 해서.. 미술의 역사는 정말 어렵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다는 말 :)


클림트는 1862 Wien 태생으로, 귀금속을 다루는 아버지의 밑에서 자라 수공예품의 화려한 장식과 디테일을 보고 자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비엔나 국립 응용미술학교에 입학하여 제품에 응용하는 미술을 배웠다고 해요. 장식 회화의 길에 들어선 건데요, 이집트의 벽화나 모자이크 기법을 배우며 건축 장식물을 하기 전, 본인만의 작품 방향을 잡은 듯합니다. 한편 주류계에서도 그의 벽화와 장식 기법을 반기기도 하였는데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미술 작품에 상징적인 요소들을 많이 표현했다고 해요. 주로 인간의 운명, 구원 같은 것들을 주제로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니 주류 미술계와 마찰이 생기기도 하나 봅니다.


그렇게, 미술가 협회를 탈퇴하고 빈 분리파 초대 회장을 맡으면 잡지와 전시회를 열기도 하고 신진 예술가들과 새로운 작품 세계를 펼치기도 하였나 봐요.  시간이 좀 더 흐르면 구스타프 클림트는 분리파를 떠나고 벽화도 공공 작품도 의뢰받지 않는다고 해요. 그리고 개인작업으로 클림프의 걸작들이 탄생하는데 그중 우리에게 광고나 굿즈로 잘 알려진 <키스>라는 작품이 탄생한 것이죠. 어느 누군가는 유려한 인물들의 나체와 화려하고 감정적인 인간의 관능미를 추구하는 그의 작품을 퇴폐적이라고도 말하지만, 사랑의 본질을 나타내려고 한 그의 작품을 보면 궁전 안에서도 그 시선을 빼앗기게 되어버리니, 에밀라 플릐게를 외치며 생을 마감했다는 클림트의 작품은 오랜 시간 잔상을 남기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아요.


[유튜브 영상- 예술의 이유, <클림트 작품 속엔 왜 황금색이 많을까?> 편 참고하였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 Judith, 1901>

벨베데레 궁전 안에선 사진 촬영이 허용이 안되었습니다. 전시회 팸플릿에도 사진, 취식이 금지되는 안내가 있는데요. 이 유디트 작품은 제가 그날 전시회에 들어가기 전 가져온 전시회 팸플렛에 크게 자리 잡은 작품을 아주, 포스팅 리더의 마음가짐으로 투철하게 찍어 올려봅니다^^* 그날 보고 온 그 자리의 정취가 느껴지는 것 같은 그런 저만의 팸플릿을 공유해보며, 추웠지만 맛있었고 현재 우리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에 대해서도 직접 눈으로 보고 온 황홀하고 행복한 기억을 되짚어보니 그 여행길이 정말 그리워지네요. 어서 여행이 다시 활발히 이루어지는 날들이 도래하기를 기도해봅니다. :D


작가의 이전글 나의 도전은, 내일의 성장을-가능성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