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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g with a View Mar 08. 2018

하노이: 들어가기 전에

C-REA"D"I: urban design



베트남은 급속하게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로 손꼽히는데, 발전이 늦어진 데에는 전쟁 탓이 크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통일이 되었지만 1979년 캄보디아를 침공하고 중국과의 전쟁으로 사실상 발전할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하노이는 2010년에 수도 1000주년을 기념한 역사가 깊은 베트남의 수도다. 하노이라는 이름은 하내(河內)를 베트남어로 읽은 것으로, 홍강과 또릭강 두 강 사이에 위치해 있고, 그런 탓인지 도시 곳곳에 호수가 굉장히 많아 물의 도시라는 느낌을 준다. 하노이는 1010년에 처음 리왕조의 창시자 이태조가 수도를 호아루에서 오늘날 하노이인 탕롱으로 천도한 것으로 베트남의 수도역할을 담당해왔고, '하노이'라는 이름은 1802년 베트남 마지막 봉건왕조 응웬왕조는 후에로 정도하면서 탕롱의 지명을 하노이로 바꾸게 되면서 생겨났다. 이후 1945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베트남은 하노이를 수도로 재지정한다.


하노이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트남 북부에 위치해있으며, 북부는 특히 한자와 유교 문화권으로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연중 따사로운 날씨는 아니며, 겨울에는 섭씨 1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고 습도 때문에 같은 기온이면 한국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그래서 4계절 옷이 어느 정도 다 필요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더 자세한 설명은 차치하고, 이번 글에서는 하노이의 골목길과 문화지구에 대한 글을 쓰기에 앞서 하노이의 도시계획과 주요 구역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려 한다.



하노이의 주요 구역마다 확연한 분위기의 차이가 존재하는데, 호안끼엠 지역은 낭만적인 구시가지, 오페라하우스 지역은 식민지 건축이 남아있는 고급지구, 서호는 여유로운 히피지구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래는 하노이의 지도다. 두번 째 구글지도의 붉은 선으로 표시된 경계가 이전의 행정구역상의 하노이다.  베트남 정부가 2008년에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하노이의 면적이 3배가량 확대되었지만, 기능상 주요 구역은 전부 이전의 하노이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앞으로 글에서는 이전의 하노이에 집중하려고 한다. 상단의 지도를 살펴보면, 하노이의 행정구역이 색깔별로 구별되어 있다. 분홍색이 하노이의 문묘와 탕롱 황성, 호찌민 묘, 대사관 등의 유적지가 위치한 바딘(Ba Dinh) 지구,  주황색이 하노이 최대의 관광지가 위치한 호안 끼엠(Hoan Kiem) 지구, 녹색 하단이 중국을 물리친 쯩 자매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하이 바 쯩(Hai Ba Trung) 지구, 마지막으로 맨 상단에 커다란 서호가 위치한 호떠이(Ho Tay) 지구다. 왼쪽에 위치한 노란색 구역이 동다(Dong Da) 지구인데, 한인타운이 위치해 있으며, 인구밀도가 하노이에서 가장 높은 주거지다. 하단에는 구글지도 중 특히 필자의 개인 구글지도를 올린 데는 이유가 있는데, 노란색 별표가 쳐져있는 곳이 자주 가던 음식점과 상점들이 있는 곳으로 아주 대략적인 문화지구 인덱스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별들이 주로 서호와 호안끼엠에 몰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노이 구역별 지도. 핑크색이 바딘구, 주황색이 호안 끼엠구, 그 하단 녹색이 하이 바 쯩, 제일 상단 커다란 호수가 테이 호 구역
필자의 개인 구글맴에서 캡쳐한 하노이 지도. 별표된 곳이 자주 방문했던 음식점과 상점들.


하노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유교 질서에 기반한 도시계획과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도시계획, 통일 이후에 실시된 사회주의식 도시계획이 겹겹이 쌓인 결과이기 때문에 하노이의 오늘날 구역들이 어떻게 개발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하노이의 오늘날 모습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근대사는 세 파트로 구분할 수 있다. 1875-1944년 프랑스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기능에 따른 구역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번화가인 짱 띠엔(Pho Trang Tien, 호안끼엠 호수와 오페라 하우스를 연결) 거리를 사업과 서비스 지역으로 지정하고, 전통상업 중심지역인 36 거리(호안끼엠 부근)를 유지, 호안끼엠 호수 동쪽을 정치행정 지역, 그리고 창고 및 공장 주변지역을 창고 및 공장지대로 구획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1945-1985년 사회주의 시기에 베트남은 소련의 영향을 받아 소련, 폴란드, 불가리아 등의 사회주의 국가로부터 파견된 도시계획가들과 도시개발계획을 실시한다. 이는 베트남의 산업단지 개발과 주거시설의 변화를 이끌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하노이에는 기능별 단지 안에 아파트가 같이 위치해있는 구조가 존재한다. 그 예로 외교단지나 과학단지 등이 있는데 지금은 몹시 낡아 이전을 준비중인 곳이 여럿이다. 이때가 상업지구의 암흑시대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명한 1986년 도이모이(쇄신) 정책 이후는 중앙계획 시스템이 아닌 시장원리에 따른 개발이 실시된다. 오늘 구시가지를 가득 메워 하노이 구시가지의 특징이 일부가 되어버린 여행사, 호텔, 식당 등은 1986년 이후에 시장경제를 도입한 하노이에 입혀진 옷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 하노이 총리실은 1990년에 하노이 종합계획 2010을 발표한다. 상업중심지역으로 호안 끼엠(지도상 주황색 지역의 작은 호수) 근처의 36거리와 French Quarter(호안끼엠 하단의 규칙적인 격자 무늬 구역)를, 정치행정중심지역으로 바딘구(Ba Dinh Quarter)를 제시한다. 정부차원에서 상업중심지역을  지정한 것이 눈여겨볼 변화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호떠이(서호 부근)가 더 여유롭고 차분하며 덜 상업적인 느낌이 드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호떠이 지역은 애초에 정부가 상업지구로 계획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치 바다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호수 주변에 생겨난 고급 호텔들과 레지던스, 그리고 국제학교에 맞물려 서양인들을 비롯한 외국인이 많이 살면서 그들의 문화를 가져오게 되어 정부의 관심에 빗겨 자연스레 이 구역이 세계 음식, 예술과 서브컬처가 발달한문화지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공간이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어느 정도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필자가 제일 좋아했던 음식점들도 대부분 서호 쑤언 지우(Xuan Dieu) 거리 주변에 위치했고, 주말 코스는 호떠이에 위치한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긴 후 주변에 간간이 보이는 가구점이나 소수민족 기념품 샵, 또는 미국의 딘 앤 델루카 격인 Annam Market에 들러 각종 과자와 차를 섭렵하는 약간은 노티나는 코스를 밟았다. 오히려 호안끼엠에는 정말 볼 일이 있지 않고서야 그 번잡함에 잘 가지 않게 되었고, 가도 짱 띠엔 거리를 걸어 오페라하우스 근처의 음식점이나 카페를 찾아다녔다.  


하노이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한 국가의 수도치고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나마 존재하는 몇몇의 미술관은 외진 곳에 위치해있어서 전시를 보고 걸어서 카페나 음식점으로 이동하여 동행과 전시에 대한 인상을 나누는 종합적인 경험이 되는데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전시를 보러 이동한 후 식사를 하러 또 차를 타고 이동하는 속칭 '깨는' 위치로 주말에 자주 가지 않게 되었다. 서울처럼 시립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고 정동길로 걸어가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나 카페에 앉아 친구와 수다를 함창 떨었던 그런 코스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약간의 애로사항이 있지만 하노이에는 거리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일단은 대략적인 구역들을 소개하고 이번 포스팅을 마무리하려한다.




1. 오페라 하우스 (짱 띠엔 거리)


하노이는 프랑스 식민 시대에 인도차이나 3국의 중심지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프랑스식 건축물과 도로계획이 많이 남아있게 되었다. 식민시대 당시 Rue Paul Bert이라고 불렸던 짱 띠엔 거리는 인도차이나의 샹제리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호안끼엠에서 짱 띠엔 거리를 거쳐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 당도하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과 힐튼 호텔을 비롯한 여러 브라세리와 카페들이 한데 자리 잡아 서양에 온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운동 당시 월맹군이 행진한 역사적 거리였던 이곳은 이제 하노이의 부잣집 사모님들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짱 띠엔 거리의 끝 우측에 오페라 하우스가 위치해있다







2. 호안끼엠 부근 (36거리)


호안끼엠의 한자를 우리말로 읽으면 '환검(還劍)'이라는 뜻이 되는데, 15세기 레로이(Le Loi) 왕이 호수를 거닐다가 호수에서 나타난 황금거북이신에게 받은 검으로 몽골군을 무찌르고 그 검을 다시 돌려주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최근에는 주말에 호수 주변 도로를 통제하여 차 없는 거리를 운영 중에 있고, 주말에는 하노이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36거리는 호안끼엠 호수(주황색 구역) 지도를 보면 무수히 구불구불한 거리가 모여있는 곳으로, 매우 인상적인 역사가 있다. 36거리는  13세기부터 존재했는데, 그 시작은 성곽 밖에 소규모 마을별로 있었던 공예품과 예술품을 생산하는 작업장의 장인들 중 뛰어난 사람들이 성곽안으로 이주하면서부터다. 같은 마을출신 사람들은 같은 종류의 공예품을 생산했고,  이들은 길드를 조직하여 함께 생활했다. 장인들이 모여사는 곳이 거리가 되면서 취급하는 물건에 따라 거리 이름이 붙여졌다. 당시에는 건물 폭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었기 때문에 이곳의 건물들은 유독 폭이 좁고 길어 터널 하우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오늘날에도 몇몇 골목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성요셉 성당 부근에도 낭만적인 카페와 여행자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호안끼엠 호수와 응옥 선 사원
호안끼엠 호수 야경








3. 떠이호(Tay Ho) 지역


서호를 둘러싼 지역을 떠이호라고 한다. 지도에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겠지만 호수 둘레가 17km에 달한다. 앞서 언급한 고급 레지던스와 호텔이 히피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떠이호에는 정말 다양한 주재원들과 영어교사, 은퇴한 서양노부부들과 다같이 모여사는 곳이기 때문에 한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노부부가 식사를 하는 한편 바로 옆 로컬카페에서는 레게 머리를 한 유럽 젊은이들이 쭈그려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장면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Photo credit: Francisco Anzola Flickr.
Photo credit: David Kckelvey Flickr.




이 글의 결론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베트남의 아파트 난개발 붐에도 불구하고 하노이만의 도시계획적 특색만 놓고 보았을 땐, 하노이가 문화지구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서울보다도 더 다양성있고 정체성있는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다음 글들에서는 이미 문화의 거리로 자리잡았거나 그러한 거리로 발전할 수 있는 장소들을 C-READI (Culture-Rent/Entrepreneurship/Accessibility/Design은 오늘 다룸/Identity) 모델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골목길 경제학. 모종린. 다산3.0


하노이의 개발과 도시계획: 역사적 과정과 정책적 함의. 권태호 아시아 연구 제12권 제1호, 2009.6, 1-31 (31 pages)


베트남 개황. 외교부.


Lonely Planet Vietnam


Things Asian


https://youtu.be/4VG7RZX_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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