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 글 쓰는 여성의 탄생 - 나혜석 지음, 장영은 엮음
<나혜석, 글 쓰는 여성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나혜석. 처음 그녀의 삶에 대해 들었을 때는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나라 최초 여성 화가, 최초 세계일주 여성 등 화려한 수식어가 붙지만 시대가 하필 1900년대 초였으니까요. 여성에 관해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그녀는 이혼 후 혼자 살다가 길거리에서 죽게 돼요. 하지만 그것보다도 자신의 사상을 따라줄 친구들이 많지 않아서 더 외로웠을지도 모르겠어요.
나혜석의 글은 지금 읽어도 ‘오잉!’ 하고 감탄이 나오는, 시대를 앞선 대목들이 많아요. <우애 결혼, 시험 결혼>이라는 글에서는 시험적인 기간을 거쳐 결혼을 결정하는 것이 모두에게 필요하다고 주장했어요. 결혼 전에 동거를 해봐야 한다는 거죠. <독신 여성 정조론>에서는 여자에게도 남성 공창(몸 파는 남자)이 필요하다고도 했고요.
가장 공감하며 읽었던 <모된 감상기>에서는 엄마가 되어 느낀 감정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표현했어요. 다음을 보실래요?
“더구나 빨아 댈 새 없이 적셔 내놓는 기저귀며, 주야 불문하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깨깨 우는 소위 자식이란 것이 생기어 내 몸이 쇠약해지고, 내 정신이 혼미하여져서 “내 평생소원은 잠이나 실컷 자 보았으면.” 하게 될 줄이야 뉘라서 상상이나 하였으랴."
결혼하여 아이를 낳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시겠죠? 다음 내용도 그렇습니다.
“나는 동창생 중에 미혼자를 보면 부러웠었고 더구나 활기 있고 건강한 그들의 안색, 그들의 체격을 볼 때 밉고 심사가 났다. 그들의 천진난만한 것이 어찌 부럽고 탐이 나던지, 무슨 물건 같으면 어떠한 형벌을 당하든지 도적질을 할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글쓰기로 거침없이 드러낸 앞선 여성이었기에 그녀는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어요. 여성이 의견을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는 아니었으니까요.
저는 나혜석의 글을 읽으며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글쓰기를 생각했어요. <정여울의 에세이 쓰기 수업>에서 세상을 바꿔내는 글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혜석이 딱 그랬던 것 같아요. 나 하나보다는 우리 사회와 여성의 삶이 나아지는 것을 생각했던 그녀이기에 모든 비난마저 감수하면서 글을 쓸 수 있었겠지요. 외롭고 고되었겠지만 그녀가 있었기에 지금 여성의 세상이 이렇게라도 변화 발전해온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