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걱정이 껌이라면 풍선 불어 날릴 텐데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나의 걱정이 껌이라면 질겅질겅 씹다가 오물오물 입 안에서 잘 모은 뒤 “후~” 하고 바람을 불어넣어 “빵!”하고 터트려 버리면 참 좋겠다는 생각. 그 안에 들어 있던 잡생각, 특히 나쁜 상상들도 함께 터져버리면 얼마나 개운할까! 하지만 그렇게 터져 코와 볼을 덮은 풍선껌은 기꺼이 다시 모여 입안으로 들어오듯, 나의 걱정은 새로운 모습을 하고 시나브로 몸집을 불려 나가곤 했다.
DNA 어느 꼬임 속에 걱정 유전자가 기록되어 있는 것 마냥 나는 매사에 걱정을 달고 사는 편이었다. 특히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모르는 미래를 상상하기는 주 특기였다. 누군가 “걱정한다고 해결되냐”며 핀잔을 줄 때 겉으로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미리 걱정을 해 놓는 것이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데 충격을 완화시켜줄 거라 믿었다. 마치 차 사고 방지용 에어쿠션처럼.
아니었다. 걱정은 충격 완화용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가올 상황을 더욱 극적이게 만들어주는 특수 무대장치 같은 것이었다. 미리 상상한 걱정이 실현이 되면 “후유, 다행이다. 미리 준비하니 마음이 한결 편한 걸” 이러는 대신 “거 봐 거봐! 이럴 줄 알았어! 나는 망했어!” 류의 호들갑으로 가는 길이었다. 깊은 구렁텅이로 빠지는 디딤돌 같은 것. 그것을 밟고 뛰어가면 훨씬 깊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실컷 헤엄을 치다 기진맥진해졌다.
도를 닦았다. 걱정을 안 하는, 아니 안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소 불필요한 걱정에 사로잡혀 영혼이 갉아 먹히는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평화로운 어느 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공황 장애를 겪고 난 이후의 일이다. 그것의 원인이 쓸데없는 걱정과 역시 쓸데없는 완벽주의를 향한 집착임을 깨닫고 난 후에서야.
그리하여 내가 터득한(?) 방법은 걱정이 이끄는 맨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만약 이러저러한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면 그 일이 실제 일어났을 때 무슨 일이 펼쳐질지 주룩 나열한다. 그리고 이성을 가지고 (감성이 풍부하고 감정적인 나는 이 부분이 가장 힘들지만) 그것이 정말 큰 문제인지, 앞으로 살아갈 무수한 삶의 과정에서 그 일 한 번 일어나는 게 대수인지 따져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게.
며칠 전 지인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언니, 나 오늘 한국 가기로 되어 있었는데 KLM 비행기 취소되었잖아. 언니는 뭐 타고 가요?”
심장이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같은 비행기였다. 3일 뒤면 두 딸을 데리고 나도 한국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럴 땐 일단 걱정 모드가 가동된다. 같은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면 어쩌지? 이미 잡아 놓은 일정들은? 순식간에 3일 뒤에 실망하는 엄마의 표정과 꼬여버린 계획 때문에 엉망이 된 한국의 여행이 떠올랐다.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코로나 후 갑자기 불어난 여행객과 정비되지 않은 항공사 상황이 맞물리면서 비행기 문제가 잦게 일어난다는 기사를 본 게 며칠 전이었다.
바로 이럴 때! 이성을 찾아야 한다. 끝까지 가볼 때다. 좋다. 비행기가 취소돼.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나지? 항공사에서는 다음 비행기를 예약해줄 것이다. 며칠 뒤가 되겠지만 한국에 가기는 갈 것이다. 코로나 검사를 다시 해야 하므로 검사 비용이 추가로 들겠지. 약 10만 원. 밀린 약속? 다시 잡으면 되잖아. 김 빠진 마음은 살짝 뒤로 미루어 다시 기대감으로 바꾸면 일. 그러면 약간의 경제적 손실 외에 뭐가 문제지?
하나씩 따지다 보면 내가 했던 걱정은 사실 별 게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상황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그랬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 중에 수많은 일이 일어날 텐데 겨우 이깟일로 안달복달하며 소중한 현재를 써버릴 일인가. 하늘 위로 올라가 나의 걱정을 바라보면 얼마나 하찮을 것인가. 따지다 보면 나의 걱정은 조그마한 점이 된다. 그걸 깨닫고 나면 비로소 (풍선껌이 아니더라도) 터트려버릴 수 있다.
물론, 나의 도 닦기가 하산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걱정이 나타나면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하지만 훈련을 하다 보니 확실히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그리하여 요즘은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겨도 걱정이 덜 된다. 해결책을 아는 문제는 시간이 걸릴 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속을 끓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그것이 지상 최대의 걸림돌이라도 되는 냥 오버하면서.
글 쓰기로 우주 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멘탈(정신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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