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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Aug 26. 2022

연남동 반지하 한 달 살기를 시작하다

드디어 홍대입구 도착. 정확히 말하면 홍대입구 지하철역에서 7분 거리에 있는 연남동 주택가 어느 집 대문 앞에 섰다. 그래, 이 집이란 말이지? 4개월 전 영국에 있는 우리 집 거실에서 숙박 사이트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곳이 실제가 되어 눈앞에 나타나다니. 하나님, 부처님, 신령님, 요정님, 부디 인터넷에서 본 것보다 더 괜찮은 집이기를 도와주소서! 아니, 그냥 똑같기만이라도 해 주소서! 반지하집을 예약했더니 이런 기도가 절로 나왔다. 여기서 딱 한 달을 머무르며 사춘기 두 딸과 함께 한국 여행을 할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한옥집 같은 곳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집은 월 500을 내란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월 200. 계산기를 두드리니 300으로 맛있는 거 사 먹는 게 남는 장사라는 결론이 났다. 예산에 맞춰 그나마 옥탑집 대신 고른 게 반지하집이다.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동생은 거의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며 당장 취소하라고, 자기 집 근처에 한 달에 50 하는 방을 구해줄 수 있다고 소리쳤다. 환불이 가능한 취소 기한이 넘어가고 난 뒤였다. 기한 전이라 해도 취소할 마음은 없었다. 꼭 한 번은 홍대입구에 살아 보고 싶었다.    


"얘들아, 어서 들어가자!"


한국식으로 치면 올해 고1, 초5 되는 딸 보라, 연두와 함께 캐리어 5개를 나눠 밀며 대문을 통과했다. 왼쪽으로 난 계단을 3칸 내려갔다. 현관에 달린 디지털 도어록 커버를 들어 올려 집주인이 알려준 데로 번호를 눌렀다. 띠리리. 문 열림을 알리는 소리가 나더니 번호판 아래에서 파란 불이 깜빡였다. 손잡이를 돌리자 가볍게 문이 열렸다.


연남동 반지하 숙소 (에어비앤비)


집 안으로 들어오니 바로 거실 겸 6인용 테이블이 있는 공간이 나왔다. 그 너머에는 부엌과 화장실이, 양쪽으로 방이 하나씩 붙어 있었는데 사진으로 확인한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음, 나쁘지는 않은 것 같군. 그래도 반지하는 반지하다. 방 한 곳은 그나마 나은데 나머지 공간은 햇볕 한 줌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어두침침하고 왠지 꿉꿉한 것도 같았다. 기분 탓인가?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엄마, 개 같아."


연두가 말했다. 뉘 집 자식인지 원. 내가 개면 너는 개새끼다, 라고 말해주려다 그냥 웃었다. 영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한국말 어휘가 좀...... (많이) 약하다. 그 탓에 엄마가 개 같다는 말도 저렇게 사랑스런 얼굴로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여간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집 공기를 확인하는 게 먼저다. 다시 킁킁대니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안 나는 것도 같고. 어라? 오른쪽 벽과 벽지 사이에 틈이 생겨 벽지가 너덜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습기 때문인가.


한국에 오기 전 영국에서 집주인에게 메시지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저기...... 곰팡이 같은 건 없겠죠?"

"그럼요! 그렇게 습하지 않은 편이긴 한데, 장마 기간에는 많이 습해요. 그 외엔 크게 못 느끼실 거 같아요."


한국에 도착한 순간부터 비가 내렸다. 어쩔 수 없는 일에 시간을 쓰지 않기로 했다.   


"우와, 여기 너무 시원해! 천국 같다 그지!"


천국을 언제 가봤다고 연두는 보라에게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온다고 집주인이 에어컨을 틀어놨나 보다. (반지하의 실상을 감추기 위해?) 사실은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다. 살끼리 부딪쳤다 떨어지면 오래된 스티커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후덥지근한 한국의 여름. 삶은 계란을 몸에 찍어 먹어도 될 만큼 짭짤함이 온몸에 배어 있는 여름 속에 있다가 에어컨 나오는 실내로 들어오니 정말 살 것 같았다. 천국이 얼마나 쾌적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름철 바깥이 지옥인 건 맞는 것 같다.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집은 괜찮아?"

"어, 좋아. 직접 와보니까 이 집이 반지하가 아니야."

"무슨 소리야."

"아니 그게....... 3/5 정도는 지상에 있어. 창문이 엄청 크고 넓다니까! 아니다, 한 2/3 정도가 지상인가? 여기 현관 내려올 때도 계단을 겨우 3개밖에 안 내려왔어."   

"그게 그거지."


궁색한 변명이었지만 말하다 보니 반지하를 다른 말로 하면 반지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이 반 담긴 컵을 보고도 어떤 이는 반밖에 안 남았다고 하고 누구는 반씩이나 남았다고 하는데 당연히 후자가 멋진 것이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반지상집이라 불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굳이 정확도로 따지면 2/3 지상집? 내가 이름을 불러주자 그 집은 내게로 와 (반지하가 아닌) 2/3 지상집이 되었다!


분수로 된 숫자를 말하다 보니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3/4 승강장이 생각났다. 주인공들은 런던 킹스턴 역 그 구역에 있는 벽을 통과해서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들어갔다. 어쩌면 2/3 지상집 이곳은 나와 딸들에게 '한국'이라는 마법 같은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달콤하면서도 위험한 마법의 세계가 기다릴 것이다.


요즘 한 달 살기가 유행이라는 데 쉽게 설명하면 우리도 그거 하려는 거다. 여행을 하되 살아보는 여행으로. 다만 서울에서. 홍대입구 연남동에서. 영국에서 온 한국 여자 셋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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