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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Oct 10. 2022

노브라를 선언한 딸과의 전쟁

한국인 스위치가 켜졌습니다

나: 안돼, 한국에선 입어.

딸: 왜요?

나: 사람들이 다 너만 쳐다볼 거야. 그러길 바라?

딸: 허(어이없는 웃음), 나만 안 쳐다봐요. 

나: 여기 한국이야. 안 보는 척 해도 너만 본다니까?! 사람들이 얼마나 민망하겠어!

딸: 그러면 남들의 눈을 위해 입으란 거예요? 너무 더운데도?

나: ....... 어. (대답하면서도 께름칙함)

딸: 왜요?

나: 아니, 그게 꼭 남들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하고 다니면 가슴 모양도 예뻐지고....... 

딸: 난 상관없는데요.

나: 아우 그냥 좀 입으면 안 돼?!!!!

딸: 왜요?


이 무슨 돌림노래란 말인가. 설득을 하려는 자와 당하지 않으려는 자의 갑론을박은 같은 말만 되풀이하다가 해결점을 찾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그것도 한여름에 노브라로 다니겠다는 고1 딸의 주장을 선뜻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영국에서도 보라는 노브라였다. 이것저것 속옷을 사줘봤지만 하나 같이 불편하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안 하고 다녔다. 그래도 괜찮았다. 스코틀랜드의 여름은 평균 기온이 20도 안팎이라 1년 중 반팔만 입고 밖에 나갈 날이 열손 가락 안에 드는 데다가 남방, 카디건, 재킷 3단으로 구성된 교복 덕분에 안 입어도 티가 안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 여행 중 아닌가. 이미 몇몇 사람들이 귀띔을 해준 터였다. 애 브라 좀 입혀야겠다고. 



한국인 스위치가 켜졌습니다


내 몸에는 "한국인 스위치"라는 게 있다. 대개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는 순간부터 켜진다. 영국에서는 주근깨가 늘든 말든, 주름이 늘든 말든 맘 편히 살다가 한국에 가려고 하면 갑자기 "한국인답게"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가 가장 신경 쓰인다. 


머리끝이 상했잖아? 피부가 엉망 됐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값비싼 손상 모발용 샴푸를 사서 머리를 감고 영양크림을 발라가며 밤마다 마사지를 했던 것도 모두 이 스위치 때문이다. 그동안 책을 읽고 정신 수양을 하며 다른 이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나 자신으로 사는 연습을 했다고 자부했지만 웬걸, 한국 갈 날이 정해지니 여전히 스위치가 켜졌다. 딸각. 수련이 부족했다.   


나도 안다. 딸은 변해버린 엄마의 태도가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영국에서는 되는 것이 한국에서는 안 되는 것을 그저 문화의 차이라고,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얼마나 모순적으로 느껴졌을까. 언쟁을 하면서도 "입으라면 좀 입으라!"고 윽박지르는 내가 꼰대 같이 느껴졌다. "라떼는 말이야"와 "한국에서는 말이야"은 사실 같은 맥락이다.  


딸이 행복했으면 한다. 그게 다다.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좋을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그게 정말 딸만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런 딸이 있다는 이유로 남들에게 비치는 내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까 봐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왜 그렇게밖에 못 키웠냐고, 초장에 잡았어야지 그런 것도 못했냐고 엄마인 나를 손가락질할까 봐서. 


보라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만 15살. 몇 년 전부터 2차 성징이 나타나 자기 몸이 바뀌어 가는 것도 당혹스러웠을 텐데 그것을 싸매야 하는 브라는 족쇄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불편하고 답답하고 한국에 오니 덥기까지 하고. 나는 한 번도 의문을 갖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다고 해서 누구나 그래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그래도... 여기는 한국인데. 



2차전이 끝나고 발견한 바로 그것! 


딸은 인터넷에서 브라를 해야 하는 이유가 적힌 영문 문서를 찾아내 나에게 보여줬다. 자신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안 입어도 된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참이다. 싸우기 전엔 늘 논리적인 근거를 들고 이성적으로 준비하려는 아이. 이런 애한테 내가 말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작전을 바꾸었다. 감정에 호소하기로 했다. 


"있지...... 엄마도 한국이 정말 웃기다고 생각은 해. 근데 현실이 그런 걸 어떡해. 사람들이 대 놓고 말은 안 해도 나중에 자기들끼리 수군대고 욕하고 그래. 엄마 딸이 그런 말의 중심에 있지 않았으면 좋겠어. 한국에 있는 동안만, 몇 주만 입어 주면 안 될깡......? 응응?"


통했다. 딸은 한숨을 길게 쉬며 그러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결이 나는 건가. 아이가 커갈수록, 어른에 가까워질수록 엄마 노릇 하기가 고차원적으로 어려워진다는 걸 느낀다. 뒤끝이 개운하지 않다. 더 눠야 하는 똥을 중간에 끊고 나온 것처럼 마음이 묵직하다. 스스로를 앞서가는 엄마라고, 열린 엄마라고 믿었건만 왜 자꾸 닫힌 엄마처럼 느껴지는 건지. 


여성이 브래지어를 하게 된 건 언제부터일까.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그 사람을 찾아가 양쪽 어깨를 잡고 앞뒤로 흔들며 따져 묻고 싶었다. 왜 이런 걸 만들어서 우리 딸에게 시련을 주시냐고요! 왜 저에게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드시냐고요! 정녕 다른 방법은 없는 건가요. 그런데, 있었다! 혹시나 하고 찾아본 인터넷 상점에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물건을 찾은 것이다. 바로 니플 패치. 


"보라야! 이거 한번 봐봐! 엄마가 기가 막힌 걸 찾았어!"


너무 신이 나 노트북을 들고 딸에게 달려갔다. 그 옛날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심정이 지금 나의 심정에 버금갔을까? 몸통 전체를 조이지 않아 답답함은 없애되, 민망함은 감춰주는 제품, 우리의 앞날이 장밋빛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나의 호들갑에 보라가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이거, 2년 전에 내가 사자고 했던 거잖아요."

"어머... 그, 그랬어...? 미안."


그때 나는 딸의 말을 어디로 받아 삼켜 먹어버렸단 말인가. 열린 엄마 같은 소리 한다. 숙소 근처 올리브영에 들어갔다. 가장 비싼 니플 패치를 고르며 우리는 평화협정을 맺고 전쟁을 끝냈다. 남성용 제품도 있다는 것이 (아주 살짝) 위안이 되었다. 이마트에서 급히 샀던 브래지어는 환불해버렸다. 



네 덕분에 알게 된 더 큰 세계 


딸과 전쟁을 하는 동안 노브라, 니플 패치 이런 단어를 검색하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여자들이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속옷을 벗어던진다는 사람, 노브라를 하되 캡이 달려 있는 브라렛 같은 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여럿이었다. 니플 패치도 회사별 리뷰가 얼마나 많던지. 


그랬구나. 보라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브라가 편하진 않아도 벗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기에 그동안 이런 목소리가 있다는 것에 눈감고 살았다. 어쩌면 일상의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하니까, 해야 되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따라 하기. 불편한 걸 불편하다고, 왜 그래야 하냐고 말하는 딸 덕분에 더 큰 세계를 만났다. 함께 고민하며 1cm 정도쯤은 더 열린 엄마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아직은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국이다. 그러니 나부터 변해야 한다. 노브라쯤은 개인의 사생활이라고 쿨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니플 패치 말고도 다양한 속옷 대용품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 여성들, 내일의 가슴이 오늘의 가슴보다 편안해질 때 우리는 더 살기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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