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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Nov 17. 2017

당신은 마녀입니다

중세 시대 스코틀랜드의 흑역사 마녀 사냥

"네 이년, 너는 마녀다!" 

"아닙니다. 저는 마녀가 아니에요."

"머리가 붉은색이니까 마녀 맞잖아!"

"뭐라고요? 말도 안 돼요. 아닙니다." 

"그럼 어디 한번 증명해 보거라." 

"어, 어떻게요?"

"너의 오른손과 왼발을 묶어 호수에 던질 것이다. 빠져 죽으면 마녀가 아니고, 살아남으면 마녀란 소리니까 불에 태워 죽일 것이다. 저년을 물속에 처넣어라!" 

"악!!! 그게 무슨 소리예요. 살려주세... 켁 마녀 아냐... 어푸어푸, 살려...!! 살... 꼬르륵......."  


이 이야기는 실화다.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 스코틀랜드에서 일어났던 마녀재판의 상황을 각색하여 한국말로 옮겼을 뿐이다. 살면서 ‘마녀사냥’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는다. 정치판에서, 뉴스 사회면에서, 기타 여러 곳에서. 너무 흔하게 듣다 보니 그저 관용어쯤으로만 여기며 산다. 그런데 이 단어를 진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으로 바라보니까 온 몸에 좁쌀 같은 게 쫘악 퍼질 만큼 무섭고 잔인하며 기가 막히고도 슬픈 이야기였다. 중세시대 유럽을 비롯한 세계 곳곳 그리고 내가 사는 이 도시에서도 벌어졌던 비극을 찾아 길을 떠나기로 한다. 





1.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뉴타운을 지나 올드타운으로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의 뉴타운 


볕 좋은 날을 골라 에든버러로 가는 버스를 잡아탔다. 출근 시간을 막 벗어난 덕분에 버스는 45분 만에 종착역인 뉴타운에 도착했다. 프린세스 스트리트에 가볍게 발을 내디뎠다. 찬 기운이 살짝 서린 공기가 코끝으로 다가왔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여행자 코스프레인지. 가을 끝자락을 지나는 나무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제 몸에 붙어 있는 형형색색의 이파리들을 떨구어냈다. 월터 스콧 기념탑을 올려 보다가 햇살과 정면으로 마주쳐 눈을 진하게 감았다 떴다. 상점들은 막 문을 열었고 도로에는 버스와 트램, 차들이 여유롭게 오고 갔다. 조금만 있으면 이 거리가 사람들로 가득 찰 테지. 늘 활기가 넘치는 뉴타운은 혼자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감성 충만, 에너지가 꽉 차오르는 기분이 든다. 


에든버러의 올드타운의 아침


에든버러 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그는 백파이프 대신 구슬픈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올드타운에 있는 로열마일에 들어섰다. 올 때마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이곳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곳이다. 거리 곳곳에서 백파이프를 부는 아저씨의 모습은 또 얼마나 근사하고 이국적인지.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오랜만에 아이들 없이 느끼는 자유의 기분은 잠시 벗어놓고, 일부러 비장한 마음을 가지고 올라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것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여성들에 대한 예의일 것만 같았으니까. 그날따라 킬트를 입은 아저씨는 활기찬 백파이프 연주 대신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거리에서 오직 장엄하고 구슬픈 목소리만이 아침 공기를 가로질렀다. 가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포피 데이(1차 대전이 끝난 날을 기념하는 날) 며칠 전이었으니까 어쩌면 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노래는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만 했다.  



2. 500년 전 마녀 화형식이 있었던 곳 - 그들의 절규가 들리는 듯해 


에든버러 성 광장에서 바라본 캐슬힐 (Castle hill)


 에든버러 성 (Edinburgh Castle) 앞 광장


로열마일을 따라 꼭대기까지 오르다 보면 좁은 길의 캐슬 힐이 나오고 그곳마저 지나면 에든버러 성이 눈 앞에 나타난다. 성 앞에 섰다. 관광객들은 저마다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거나 돌로 견고하게 세워진 성 안으로 들어갔다. 호흡을 가다듬고 광장을 둘러보았다. 눈을 등 뒤로 돌려 방금 걸어 올라온 캐슬힐을 바라보았다. 광장과 캐슬힐, 이곳이었구나. 이 도시에 4년째 살면서 자주 와봤던 곳인데. 그때마다 사진 몇 장 찍고 쉽게 지나쳤던 곳인데. 스코틀랜드는 마녀사냥을 했던 여러 나라 중에서도 악명이 높고 희생당한 사람의 수가 많은 나라였다. 약 500년 전, 그러니까 16세기경 내가 선 이 땅 부근에서 300명이 넘는 여자들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마녀 혐의를 받으면 악마의 표식을 찾는답시고 온 몸의 털을 깎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겨지거나 물속에 손발이 묶인 채 던져져야 했다고 한다. 익사하면 무죄, 떠 오르면 화형. 마녀는 대개 힘없고 늙은 여성들 혹은 돈 좀 있는 과부들이 많았는데, 그중에는 몸에 점이 있거나 머리가 붉다거나 다른 사람이 마녀라고 일러바친 경우도 있다고 하니 중세 시대의 법은 권력자들의 마음에 따라 이리저리 주무를 수 있는 밀가루 반죽 같은 것이었던 것 같다. 몇 백명의 죄 없는 여성이 끔찍한 고문을 당한 뒤 나무 기둥에 묶인 채 불에 타 죽었을 광경을 떠올리자 광장은 지금까지 봐온 광장이 아니었다. 화형식을 구경하는 군중의 야유를 들으며 고통 속에서 재로 변했을 그녀들의 절규를 상상하다가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 앞에서 떨고 있는 마녀혐의자들


종교개혁 이후 출산을 돕거나 약초를 연구하는 등 민간 의술을 담당하던 이들이 쉽게 마녀로 의심받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악마와 놀아나며 신앙을 해치고 공동체를 망가뜨린다고 생각했다. 당시 사회는 정치, 종교적으로 어지러웠고 계속되는 기근으로 경제도 파탄에 이를 지경이었다. 성직자, 정부 관리, 지주나 재판관 등 권력자들은 민중들의 분노를 타개할 방안으로 정책 대신 마녀를 택해 희생양으로 삼았다. 특히 *제임스 6세가 스코틀랜드 왕이었을 때 그는 마녀가 사탄과 교류한다고 굳게 믿었는데 16-18세기 동안 약 4,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재판에 올렸고 대략 2,500명을 실제 처형시켰다. 마녀 희생자 중 80% 이상이 여성이었다는 건 슬픈 일이다. 중세 시대 유럽에 넓게 펼쳐져 있던 성차별적이면서 여성 혐오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증거다.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는 훗날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가 된다.



3. 마녀사냥 추모 기념물 그러나...... 



성을 바라보다가 오른쪽 뒤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마녀의 샘- Witches' Well>이 있다. 1894년에 생물학자이자 사회학자 그리고 지리학자였던 Patrick Gedes의 요청으로 예술가 John Duncan이 제작한 기념물이다. 타르탄 기념품 가게 입구와 직각 방면의 벽면에 설치된 기념물인데 자칫하면 지나치기가 쉽다. 크기가 크지도 않고 구석진 곳에 있는 데다가 에든버러 성으로만 눈길을 준다면 찾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100년도 넘게 이 자리에 있었다는데 나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길을 떠나기 전 인터넷으로 위치를 찾아봐야 했다. 


주물로 만든 기념물 바로 앞에 서서 한참을 쳐다봤다. 당시엔 몰랐는데 나중에 찾아 보니 이것은 약의 신인 Aesculapius와 그의 딸인 건강의 여신 Hygeia의 머리를 뱀이 감싸고 있는 형상이었다. 뱀의 머리 위로 뻗어 있는 식물은 Foxglove라고 하는데 의약품으로 사용한단다. 이것은 선과 악의 균형을 강조하며 모든 이야기에는 양면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다. 무고하게 죽은 여성들을 기리는 기념물에서 죽은자를 위한 추모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오히려 신들이나 뱀의 얼굴이 어쩐지 죽어 마땅해야할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남의 나라 남의 역사 기념물에 이런 기이한 감정이 들다니. 하지만 그건 단지 기분만이 아니었나 보다. 


스코틀랜드의 마녀사냥 자료를 찾던 중, 바로 지난 달 에든버러 대학교의 역사학자인 Goodare 박사가 The Herald와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다. 그는 "성 앞의 기념물 Witches Well은 잘못 되었다. 구석에 처박혀 있는것도 그렇고 사람들은 그걸 보고 마녀들이 진짜 마법을 부리는 힘이 있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건 역사적으로 근거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추모하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그걸 기억하려는 다양한 계층의 방식 혹은 이익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 기념물을 만들려고 했던 Patrick Gedes은 어떤 목적이 있었을까. 자료가 충분치 않아 의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거 하나. 내 키만한 마녀의 샘은 오래 전 죄없는 여성들이 목숨을 버려야 했던 그 자리에 서서 일부 관광객들의 시선을 붙잡아 어이 없는 마녀사냥의 역사 한 조각을 끄집어내준다는 사실이다. 아주 잠깐일지라도. 


로열마일을 내려와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마녀라 지목된 자들을 고문하던 기구들을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인터넷창에 '마녀사냥' 이 네 글자를 검색하면 고문당하는 여자들의 사진과 그림이 많다.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내가 그 시대를 살지 않은 걸 감사해야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이거다. 2017년에도 우리 사회에서 마녀사냥은 계속된다는 거. 이 시점에서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군가를 마녀로 몬 적이 없었던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미리 재단하고 확신하고 우기고 퍼뜨리고 그런 적은 없었던가. 인터넷이 인간세상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마녀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마녀재판의 재판관이 될 수도 있다. 아주 쉽게 "당신은 마녀입니다 쾅쾅쾅" 망치를 내려친 후 한 사람을 사회에서 매장시키는 모습을 자주 봤다. 항간에 떠도는 말만으로도 마녀가 만들어지는 세상에 우린 살고 있다. 마녀사냥의 가해자가 명확하지 않은 불특정다수라는 것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다시 뉴타운으로 걸어갔다. 

볕 좋은 날을 고른다고 골랐는데 햇님은 구름 뒤로 쏙 숨어버린 오후였다. 






* 무시무시한 중세시대 각종 마녀 고문 기구들

 - National Museum in Edinburgh


 Thumbscrews: 뼈가 부서지도록 엄지손가락을 눌렀던 기구 -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 사용했다.


Brank(위): 머리에 씌우는 재갈 - 신성모독 등의 죄를 벌할 때 사용했다. / Manacles with chains(아래): 수갑 


Thumbscrews(위): 뼈가 부서지도록 엄지손가락을 눌렀던 기구 / Manacles with chains(아래): 수갑


Branks with a chain(맨 위): 재갈 / Whitch's collar of iron(중간): 톱니가 달린 목줄, 목에 피가 흐르게 하는 잔인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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