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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독립을 준비할 때

내 자식은 내 것이 아니므로

by 영글음

1년 전 내 친구가 한국 초등학교 5학년 나이인 자기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너는 앞으로 엄마를 지금만큼 안 좋아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싫어할지도 모른다, 맨날 소리 지르고 말도 안 듣고 화를 자주 낼 수 있다, 엄마보다 친구가 좋다고 뽀르르 달려 나갈 것이다 등등. 다가올 아들의 사춘기를 미리 걱정하여 한 말일 텐데, 아직 여린 그 아들내미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자긴 안 그럴 거라고 말하며 울었단다.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해줬다. 오지 말라고 해도 올 사춘기 뭐하고 미리 그런 말을 해서 아이를 울리느냐는 게 요지였다. 그런데 옆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던 첫째 딸 - 친구 아들보다 한 살이 많은 우리 딸 연두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심드렁하게 한마디 했다.


"나는 그렇게 될 것도 같은데."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뭐, 뭐라고? 네가? 내 딸이? 기대치 않은 펀치가 내게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생각보다 말이 앞서 나갔다.


"안 돼! 그러면 안 돼, 엄마는 계속 사랑해 줘야지. 소리 지르면서 말하지 말고 부드럽게 대화하면 되잖아. 친구들이야...... 그래, 친구들은 중요하니까 만나면 되고. 그런데 엄마를 싫어하면 안 되지. 우리 딸 그럼 안 돼. 영원히 엄마를 사랑해야지."


갑작스럽게 딸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엄마가 되었다.


"아니, 내가 지금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요."


표정의 변화도 없이 연두는 놀란 토끼눈을 한 나를 바라보며 차분히 되받아치고는 책을 들고 자기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남편은 아이가 크면 그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내 마음은 이미 쿵, 하고 바닷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이럴 수가. 영원히 내 품에서 나만 바라보고 있을 줄 알았던 딸이 나에게 반항을 하고 소리도 지르고 "엄마 싫어!"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고? 그때까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상상이었다. 그런데 우리 딸이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하다니.......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아렸다. 그렇지 않아도 연두가 방에만 붙어 있으려고 해서 아쉽던 즈음이었다.


그 말 한 마디는 파장이 컸고 나는 곧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너무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11년 전 돌잔치 때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키우겠다던 다짐은 개뿔, 나는 딸을 내 일부분 아니 많은 부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영원히 딸에게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우리 딸도 세상 끝까지 내 옆에서 나를 사랑하며 언제까지나 말 잘 듣는 예쁜이로 남을 거라 믿었던 것 같았다. 이러다가는 큰 일 나지 싶었다. 더군다나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영국이니까.


영국 아이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부모 집에서 나와 독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주욱 한 집에 살더라도 그때부터는 부모에게 월세를 내고 산다. 렌트를 부모의 집에 하는 셈이다. 그래서 대학을 가더라도 웬만하면 집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려고 한단다.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와야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기숙사를 쉽게 배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든버러에 사는 애들은 글래스고대학교로, 글래스고에서는 에든버러대학교로 오는 경우도 이런 이유라나 뭐라나.


이곳의 문화를 생각하면 우리 딸도 5, 6년 후에는 대학이 되었든 어디가 되었든 부모에게 독립하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달리 말해 한 집에서 같이 살을 부비며 살 날이 그 정도 남았다는 이야기다. 차 한잔 마시다가도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쓸쓸해지는 게 지금의 순간을 붙잡아 단단한 기둥에라도 꽁꽁 묶어놓고 싶은 심정이 든다. 하지만 시간은 흐를 것이다. 아이가 크면 부모보다는 친구가, 이성이 더 소중해지는 게 당연 할테지. 사춘기를 지나며 부모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면 우습게 보일 지도 모른다. 부모의 바람과 본인의 의지에 틈이 생기면 화도 내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부터 계속 되뇌었다. 우리 딸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딸의 것이 아니듯.


아이가 커가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두 번째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첫 번째 독립이 내 어머니,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이었다면 두 번째는 아이로부터의 독립이다. 어차피 언젠가는 둥지를 떠날 아이다. 내 인생은 나의 것, 네 인생은 너의 것 확실히 해두어야 한다. 사랑과 관심의 끈은 잡고 있되, 커서 뭐가 되라고 강요하지 말고 훗날 아이가 내 품에서 떠나려고 날갯짓 할 때 열렬히 응원해야지 여러 번 다짐한다. 아이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내 삶과 아이의 삶이 뒤엉켜 버리면 자칫 큰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스카이캐슬 강준상 영글음.jpg <스카이캐슬 18회, 강준상> "강준상이 없잖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허깨비가 된 것 같다고 내가!" 이 장면이 너무 절절해서 가슴이 미어지는 줄 알았다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스카이캐슬> 18회에서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준호가 연기하는 강준상은 어릴 때부터 부모가 하란데로 공부해서 학력고사 전국 수석을 하고 서울대 의대에 들어가 승승장구하여 대학병원장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꽤 성공한 인생일 텐데 18회에서 나이 50의 강준상은 어머니인 윤여사 앞에서 통곡을 하며 외쳤다. 나 자신은 없다고,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허깨비가 된 것 같다고. 자식에게 독립하지 못했던 윤여사는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자녀로부터 독립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 있다.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고, 사랑하니까 바라는 게 있는 것이 당연하다. 어디까지가 사랑이고 어디까지가 지나친 간섭인지 경계는 모호하다. 내 인생과 아이의 인생을 무 자르듯이 자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가 독립을 준비한다고는 했지만 그 뜻 또한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만 나는 우리 딸들이 내 생각과 다르게 커 간다고 해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울부짖는 상황은 안 만들어야지 싶다. 그러려면 아이는 나와 다른 인격체라는 것을, 내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인정해야 한다. 이게 이론으로 뱉어 내기는 쉬운 말인데 실상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여러번 깨달았다. 공부 잘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대신 사교적이고 배려심 많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하는 (조금 더 나가서 리더십 강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바람을 두 딸들에게 얼마나 강요했던지.......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아이의 기질은 전혀 무시한 채 내가 원하는 완벽한 아이의 상을 주입시키려고 했던 것이었다. 나는 어릴 때 그랬는데 너희는 왜 엄마만 못하지? 그러면서 말이다. 또 한 번 되뇐다. 우리 딸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딸의 것이 아니듯.


더불어 우리 딸들이 내 품을 떠났을 때 마음이 허해지지 않도록 나만의 일을 찾아가는 중이다. 작게나마 핸드메이드 제품을 만들어 팔고, 지역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전업 주부이지만 아이들만 바라보지 않고 내 나름의 삶을 가꾸는 일이 지금으로서는 독립의 가장 큰 준비인 셈이다.


1년이 지난 지금 연두는 영국에서 중학생이 되었고 여전히 방에 있는 시간이 제일 많다. 가끔 짜증을 과하게 낼 때도 있으며 주말에 같이 어디 가자고 해도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해서 서운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동안 마음의 준비를 해서 그런지 당황스럽지는 않다. 그저 그려려니 한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기 전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 가며 5초씩 꼬옥 안아주며 인사를 하는 사랑스런 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첫째 딸과 5년 터울의 둘째 딸내미! 초등학교 1학년 나이인 이 아이는 아직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다. 첫째가 지금 둘째의 나이였을 때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힘들기만 해서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랐는데 지금은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금세 지나가는지 알기 때문에 맘껏 즐기려고 한다. 이래저래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가 성장한다는 건 맞는 말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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