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으로 소설 쓰기를 해봤습니다
AI가 이야기도 창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건 작년이었다. 수백, 수천 권의 스토리를 프로그램에 입력하면 기계가 혼자 딥러닝을 하며 인간이 제시하는 조건에 따라 문장을 뱉는다는 것. 허, 참. 내 글쓰기 실력을 갈고닦는 것만으로도 벅차 죽겠는데 이젠 AI와도 경쟁을? 하고 생각하다가 어찌 되었든 시대의 흐름을 뒤집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그렇다면 먼저 적(?)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 AI, 너희들은 어디까지 쓸 줄 아니?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의 마음가짐으로 검색창에 단어를 써넣었다. <AI 소설>.
몇 주 전에 검색한 뒤 어제 다시 해봤는데 그 사이 새로운 뉴스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이런...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렸다. 영어로 된 프로그램이 훨씬 다양하지만 한국어가 지원되는 곳만 몇 군데 둘러봤고 그중에서 <라이팅젤>과 <아나트>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둘 다 한국에서 개발된 것들이다.
스토리를 창작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입력해야 한다. 주제는 뭘로 할 건지, 장르나 등장인물 등등. 일단 입력만 하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몇 초면 된다. 이 글에서는 각 프로그램 당 하나씩만 결과물을 보여드리려 한다. 과연 인공지능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에 독자들은 매료될 것인가?
- 입력 조건 값 -
사용 프로그램: 라이팅젤
시점: 3인칭 객관적 시점
문체: 경쾌한
주요 인물: 송이
장소: 서울
시간: 2023년
주요 사건: 40대 미혼녀가 한 남자를 좋아하기 시작하다
결과물:
37살의 송혜교는 최악의 날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직장에서 좌천되었고,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는 막 약혼을 했고, 그녀는 그녀 자신이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퇴근길에 커피를 엎지른 남자와 마주쳤다.
??? 주요 인물은 송이라고 적었는데 갑자기 송혜교가 등장했다. 40대 미혼녀는 결과물에서 37살이 되었다. 3살이나 깎아주는 착한 AI. 스토리 전개는 여러 드라마를 짬뽕시켜 놓은 모양새다. 그나저나 남자는 어쩌다 커피를 엎지르게 되었을까. 송혜교와 부딪혔을까? 나이 들어 손에 힘이 빠졌나?
- 입력 조건 값 -
사용 AI : 아나트
주제: 인스타그램을 키우고 싶은 여자 이야기
장르: 드라마
등장인물: 송이, 은주
SNS 스타인 인플루언서 엄마 덕에 SNS 계정을 갖게 된 초등학생 송이. 그녀는 평소에도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곤 했는데, 그 이유는 팔로워 숫자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본인의 인기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충격에 휩싸인다.
그런 송이 앞에 나타난 평범한 주부 은주는 새로운 세계를 알려주겠다고 하며 송이에게 접근해 온다. 20대 시절부터 쇼핑몰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해온 경험이 있는 은주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키즈 카페를 오픈하려고 하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며 송이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이에 송이는 기꺼이 도와주기로 하고 둘은 동업을 시작하기로 한다.
<라이팅젤>에 비해 <아나트>의 이야기는 일단 길다. 문장도 하나씩 보면 깔끔한 편이다. 이번엔 송이가 초등학생이 되었군. 그나저나 평범한 주부와 동업을 한다고? 송이 엄마는 이 사실을 알까. 혹시 송이 단독으로 사업을 한 것이라면 돈이 좀 있다는 이야기인데... SNS로 돈을 번 송이! 송이의 인기는 거짓이 아니라 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근데 내가 왜 추측을 하고 있지? 배경설명엔 불친절한 AI다.
인공지능이 만들어 낸 이야기들은 흐름이 엉성하고 황당하게 흘렀다. 개연성 부분에서도 느슨했다. 앞뒤가 안 맞거나 몇 단계를 건너뛰기도 한다. 사용해 보니 최소 지금은 안심해도 될 것 같기는 한데 몇 년 후 아니, 몇 달만 지나도 상황은 달라질 질 수도 있다. 빠른 속도로 딥러닝을 한 AI가 어느 정도까지 발전할지는 가늠할 수 없다.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도 몇 년 전엔 코미디 수준이었으니 이 분야에서도 상상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나와 모두를 놀라 자빠지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소설가,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들은 없어지는 걸까? "아니다"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인공지능이 인류의 지능과 글 쓰는 속도를 뛰어넘는다 해도, 아무리 유려한 문장을 끝도 없이 뽑아낸다 해도, 소설가나 드라마작가, 글 쓰는 사람이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소설을 비롯한 이야기를 읽는 일이 단순히 시간 때우기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도 많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에 작가의 경험이 녹아나고 작가만의 문체가 담길 때 나는 좋은 글이라 여긴다. 특히 현실의 땅에 발을 딛고 선 소설들, 이야기 뒤편에 우리 사회를 향한, 소수자나 약자를 향한 문제의식 같은 게 흐르는 글이 좋다. 여러 책에 나온 문장의 조합만으로는 전개되지 않을 세밀한 스토리가 좋다.
설령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훌륭한 AI가 나온다 치자. 글쓴이와 인공지능이 긴밀하게 연결되는 기술의 발전이 일어났다 쳐보자 이거다. 결국엔 무엇을 쓸 것인가다. 그건 인간이 정한다. 어느 날 20층 빌딩에서 커피를 마시던 AI가 창문을 바라보다 개미 같은 사람들을 보고 "옳거니, 일개미 같은 직장인의 일상을 빗대어 이야기 한판 지어보자"라고 결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조건 값을 제시해야 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어떤 걸 쓸지 고민해야 한다. 글을 잘 못쓰는 사람이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나보다 더 멋진 결과물을 내놓을까 고민하는 시간에 그냥 쓰면 된다. 많이 써 본 사람이 더 멋진 조건 값을 입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2023년 2월에 씀
* 10년 뒤에 이 글을 읽으면 어떤 기분이 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