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개월 간 결론이 나지 않던 고민이 있었다. 선택지는 두 가지. 양손에 저울을 들고 열심히 재보아도 어떤 날은 오른쪽, 다음 날은 왼쪽으로 기우는 탓에 한동안은 목에 큰 생선 가시가 걸린 것 같은 기분으로 살았다. 남편의 직장을 옮기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였는데, 단순히 회사를 바꾸는 차원이 아니라 영국에 머무느냐 한국으로 옮기느냐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와 술 한잔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 나이 들면 한국 가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닐까?"
막연하던 생각이 실현될 수도, 안될 수도 있는 순간 앞에 선택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40대 후반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 그에게 어쩌면 이번이 한국으로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가자고? 말자고? 얄밉게도 영국 직장과 한국 직장은 장단점을 골고루 나눠 가졌다.
남편이 다니던 영국 직장은 정년퇴임이 없다. 원하면 죽기 직전까지 일을 할 수 있다. 영국 사람들이야 일정 시기 후 은퇴하고 연금 받아가며 편히 살고 싶어 하지만 한국인의 정서로는 벌고 싶을 때까지 벌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세금이 40%가 넘어도 한국에 비해 사회보장제도가 좋은 편이니 노후를 생각하면 괜찮은 선택이다. 여름 날씨 20도 안팎에, 경쟁에 치이지도 않는,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마이너로 살아야 하는.
한국으로 가면 급여가 늘어난다. 한국어로 일 할 수도 있고 한식을 맘껏 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 사회 안에서의 지위가 바뀐다.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니다. 하지만 영국 시골마을에 비하면 미세먼지와 매연이 심하고 한국에 집이 없는 우리는 거주지가 안정되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짐작조차 안 간다. 무엇보다 둘째 딸이 자라 독립할 때까지 (약 6년 간?) 1년에 절반 이상은 떨어져 살게 될 처지였다.
영국이냐, 한국이냐, 갈림길 앞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시간만 흘려보냈다. 이건 오늘저녁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먹을지 립아이 스테이크를 먹을지 결정하는 차원이 아니었다. 메뉴 선택을 잘 못해도 다음날 맛있는 걸 먹으면 만회가 되는데 나라를 바꾸는 일은 한 번의 선택으로 인해 남은 인생의 모습이 달라지는 중대한 문제였다. 가보지 않은 길이니 앞날은 상상에 맡길 수밖에. 상상은 대개 구멍이 많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세계사>에서 미국의 경제학자인 러셀 로버츠는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는 것을 "답이 없는 문제들"이라고 부른다. 어느 쪽이 옳은지도 분명하지 않고, 이 길이 아닌 저 길을 택했을 때의 기쁨과 고통이 무엇일지 끝까지 알 수 없는, 오직 도착해 본 후에만 온전히 알 수 있는 문제들 말이다.
도대체 이럴 때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해야 할까. 노트에 위에서 아래로 일자로 줄을 긋고 왼쪽엔 장점을 오른쪽엔 단점을 나열해 본들, 결론적으로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조차 헷갈리는데.
살면서 누구나 비슷한 문제를 만날 것이다. 결혼을 할지 말지, 아이를 낳을지 말지, 어떤 회사에 들어갈지, 어떤 친구를 사귈지 등등.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한 것이라 해도 뒷감당은 온전히 스스로의 몫인 데다가 그 선택으로 인해 인생의 각도가 달라질 수 있으니 어느 길로 갈지 정하는 게 쉬운 문제는 아니다.
러셀은 "답이 없는 문제에서 그냥 그대로 따르면 되는 간단한 규칙 따위는 없다"라고 못 박으며 "선택의 순간에 단순히 비용과 혜택을 나열해서는 결론이 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대체 뭣이 중하단 말인가?! 본문에서 그는 이렇게 언급했다.
"우리는 목적을 원한다. 의미를 원한다. 나 자신보다 큰 무언가에 속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열망한다.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이런 전반적인 느낌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고 나 자신을 어떻게 볼지를 결정한다. 잘 산 인생의 중심에는 이런 동경이 있다."
경제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손에 쥘 수 있는 이득만이 선택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사람은 때때로 손해를 보거나 고통을 겪는 길이라 해도 그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방향이거나 개인의 성장을 돕는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그 길을 갈 수 있는 존재다.
고심 끝에 남편은 한국행을 택했다. 직장에서는 주어진 일이나 하고 영국 시골 마을에서 산책하며 정원 가꾸고 평화롭게 사는 삶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며 일한 결과가 우리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되고 더 나은 곳으로 가는데 기여하고 싶어 했던 옛 시절의 소망이 남편을 다시 흔들어 깨운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