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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글음 Oct 09. 2023

미니멀리즘의 6단계를 아십니까

미니멀리스트를 자처한 지 이제 10개월. 아직 나는 햇병아리 수준이다. 고수가 보기에는 "갈 길이 멀었소!" 외치며 혀를 끌끌 찰 지도 모를 수준이다. 그럼에도 관련 글을 계속 써 내려가는 건 그동안 경험한 미니멀리즘이 꽤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같이 하자 마구 조르고 싶다. 


초보자의 의지는 하늘을 찔렀으나 뭘 몰라 자주 망했다. 그렇기에 궁금한 것도 많았다. 알고 싶은 게 넘치니 남들은 어떻게 실천하나, 미니멀리즘이란 무엇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탐구생활이 시작되었다.  


가방 하나에 가진 짐 모두 넣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는 극강의 미니멀리스트 이야기는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맥시멀리스트가 엎어지고 자빠지며 가진 짐 줄이려 노력하는 도전기도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어머, 쟤도 저러고 앉았네?" 나의 좌충우돌 경험담이 다른 미니멀리스트 지망생에게 이 정도만이라도 받아들여진다면 땡큐 베리 머치다. 잘했다, 못 했다 반복하며 고군분투하는 게 당신만은 아니라고 말을 건네고 싶다. 


그리하여 지난 10개월을 돌아보니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과정에는 대략 6단계가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단계마다 밀려오는 현타에 정신이 무너지길 여러 차례. 미니멀리즘을 향해 가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더라. 그게 꼭 기쁘지만은 않다. 쓸데없는 걸 사 모은 부끄러운 모습까지 봐야 했으니. 


하기야 무어가 되었든 목표를 향해 가는 길은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다. 그걸 뚫고 가야 길 끝에 누군가가 후시딘 들고 기다리고 있겠지. "어서 와, 가시에 찔리느라 아팠지? 약 발라줄게."라고 말하며.

   

미니멀한 라이프에 도전 중인 분이 있다면 지금 자신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 가늠해 보도록 하자. 포기하지 말고 다음 단계로 건너가 보자. 물건도 삶도 심플해지면 더 큰 평안이 찾아오나니, 가는 길 험난해도 멈추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진정한 미니멀리스트가 되지 아니하겠는가!?





1. 결심기


미니멀리즘을 결심하는 계기는 다양하다. 여느 미니멀리스트들의 책 제목처럼 집안일이 귀찮아서일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행거가 무너져일 수도 있다. 혹은 그저 모델하우스 같은 깔끔한 인테리어를 따라 하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오늘도 좌절'을 모토 삼아 실패와 한숨을 차곡차곡 쌓아 올릴 무렵, 거실 소파에 앉았다가 꽉 찬 짐이 나를 짓누른다는 생각이 들어 결심했다.  


결심의 순간은 굳건하다. 누가 뭐래도 해낼 것 같은 의지가 샘솟고 지금 당장 집 정리를 시작하고 싶다. 상상 속 미래는 장밋빛. 깔끔해질 집을 떠올리면 입가로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온다.  

 

2. 명현 반응기 


집정리를 시작한다. 뒤집고 뒤집으면 못 뒤집을 리 없건마는 다 뒤집어 숨어있던 짐 밖으로 꺼내 고개 들어 주변을 살피면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다. 집은 오히려 좁아지고 멘붕 상태가 된다. 한의학 용어를 빌어 이 시기를 '명현 반응기'라 칭해 본다. 치료가 되기 전 증상이 악화되는 명현 반응과 이 시기가 비슷한다.  


납득이 어려운 단계이기도 하다. 수납장 좁은 줄 알았던 집에서 물건은 왜 끝도 없이 나오는 건지, 저것은 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가끔은 의아하다. 나, 도벽 있나? 난생처음 보는 것 같은 물건도 마구 쏟아지며 정신은 혼돈의 도가니 속으로 쏟아지는 단계다. 


짐을 펼쳐놨건만 갑자기 하기 싫어 당황스럽다. 정리 전문가가 있다던데 돈 주고 맡길까? 그래도 직접 해야 의미가 있다. 가진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쓰지 않고 쟁여둔 물건은 또 얼마나 가득인지 깨달으며 얼굴이 좀 화끈거려야 한다. 이걸 빼먹으면 도로 맥시멀리스트 되기 십상이다.   


3. 정리 탄력기


명현 반응기를 잘 넘어오면 이번엔 정리에 탄력이 붙는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차라리 쉽다. 평소 눈에 거슬리던 것을 다 싹 다 치워버리고 싶다. 내 물건 네 물건 소유권이 어딨더냐. 딸 것이든 아들 것이든 다 갖다 버리거나 팔고 싶다. 


이때 (미니멀하지 않은) 가족과의 갈등이 시작된다. 엄마, 그거 버렸어? 여보, 그건 내 보물이야. 보물 같은 소리 한다. 그저 쓰레기로밖에는 안 보이는데! 


정리하고 나서 넓어진 공간을 보면 물건을 살 때만큼이나 쾌감이 크다. 자칫 잘못하면 버리기에 중독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필요한 것도 쓰레기통에 마구 처넣는다면 그건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 버리미스트.  


4. 방심기 


집이 어느 정도 깔끔해진 것 같다.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 계속 먹고, 계속 사고, 계속 움직이고, 계속 일하다 보니 아차, 집안 꼴 도루묵 됐다! 미니멀리즘계의 요요현상이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다. 방심은 금물이거늘. 후회해 봤자 남는 건 한숨뿐이다. 미니멀리즘이란 게 한번 집 정리를 하고 나면 완성의 단계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챙겨야 한다. 이 단계에서 도중하차하는 이들이 생긴다. 


5. 결심기 시즌 2


방심기를 거친 사람 중 일부는 다시 도전을 결심한다. 1번 결심기와 비슷하기도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다. 얼추 어떤 일이 벌어질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집이 다시 난장판이 되겠군. 물건을 계속 사들이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잖아? 이번엔 잘할 테다!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방 하나 뒤집는데 얼마만의 시간이 필요한지 추측도 한다. 


미니멀리즘 하던 가락을 잘 살리면 일취월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후 2, 3, 4의 과정을 거쳐 다시 결심기에 이르면 그건 시즌 3.   


6. 해탈기 


1-5를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득도의 경지에 이른다. 더 이상 줄일 짐도 없고 일상이 평화로운 상태. 미니멀리즘을 온몸으로 체득하여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미니멀한 라이프를 즐기는 수준이다. 


의지가 강철 같다면 해탈기에 도달하기가 쉬울 수도 있으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직 꿈의 단계다. 나의 목표는 해탈기다. 언젠간 다다르고 말리라. 



그래서 당신은 어느 단계에 서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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