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 관한 기록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 올해 나의 독서는 어땠는지 돌아본다. 2023년에는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글을 연재하다가 출간까지 하게 된 덕에 (2024 1월 10일 예정) 관련 분야의 책을 많이 읽었다. 뒤를 이어 소설과 글쓰기를 돕는 책이 수적으로 많다.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작가 중 이슬아와 정혜윤의 글을 읽어 단박에 팬이 되기도 했다.
뭔가 열심히 뒤적인 것 같았는데 결론적으로는 읽은 책이 약 50여 권이 조금 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예년과 비슷하며 이 정도면 잘했다고 할 법도 하지만 올초 "읽는 한 해"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때는 100권은 넘게 읽을 줄 알았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 힘을 발판 삼아 2024년에는 더 부지런히 읽을 테다! 완독 한 책의 목록은 글의 마지막에 첨부했으니 먼저 올해 읽은 책 중 베스트 6을 뽑자면,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흡입력 있는 책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펼쳤다가 이틀 만에 1, 2권 독파해 버렸다. 이 소설은 1930년대에 태어나 50년대부터 미국에서 화학자가 된 엘리자베스 조트의 이야기다. 험난한 현실 속 온갖 편견과 역경에서도 어떻게 자신의 한계를 거부하고 우뚝 서는지 대서사극이 펼쳐진다. 그걸 지켜보다 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뼉 치고 응원하고 함께 분노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는 말한다. 화학은 변화라고. 화학적으로 우리는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라고. 결국 내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새겨준 소설이었다. 이제 40대 중반도 꺾인 내 나이. 여자라고 혹은 나이 들었다고 스스로를 한계 속에 가두지는 말자고 다짐하며 책장을 덮었다. 스포일러 피하기 위해 이 문장만 내보인다. 책을 읽다 보면 이 구절에서 눈물이 절로 흐를 것이다.
“이것으로 화학 입문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수업 끝.”
*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애플 TV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내가 지금 사는 곳의 지배 원리인 자본주의에 대해 그동안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자각을 하게 만들어준 책이다. 근본적으로 왜 우리는 빚을 질 수밖에 없는지, 왜 개인이 돈을 벌고 투자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지, 왜 누군가가 반드시 손해를 봐야 누군가가 이익을 얻게 되는지 등 자본과 금융, 상품 등에 대해 대해 매우 쉽고 재미있는 문체로 설명한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돋보였고 덕분에 머리가 밝아지고 눈이 커졌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더라. 2013년에 출간된 책이다. 2023년 역주행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EBS 다큐프라임 영상 5부작도 볼만하다고 한다.
올해 읽은 글쓰기 책은 전부 재미있고 유용했다. 그러나 글 쓰는 친구에게 한 권만 추천하라고 하면 이 책을 고르겠다. 책 안에는 필사할 문장 30개가 나온다. 나의 인생 책 중 하나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문구를 비롯하여 이미 좋아하고 있던 작가와 이번에 새로 알게 된 작가가 쓴 글의 일부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모두 시간을 들여 곱씹어볼 만한 문장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좋았던 건 각각의 문장에 따른 작가 김선영의 글이다. '30개의 필사'라는 말 대신 '30개의 글쓰기 방법론'이라 이름을 바꾸어도 무방할 정도로 작가가 방송작가 시절부터 쌓아온 글쓰기 경험이 밀도 있게 담겨 있다. 요즘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라는 주제로 다각도로 고민 중인데 큰 도움이 되어준 책이기도 하다.
글을 한참 쓰다 보니 더 잘 쓰고 싶은 분, 생각하고 관찰하는 힘을 기르고자 하는 분, 특히 자신만의 개성 있는 문체를 갈고닦고 싶은 분에게 강력 추천한다.
이 책은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현 사회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고통을 취재하고 내보내야 할 (작가의 표현대로 독자에게 고통을 배달해야 할) 저널리스트로의 김인정과 한 개인으로서의 김인정 사이의 번뇌와 고민이 잘 드러나 있다. 나 또한 다른 이들의 고통을 보며 나의 행복으로 삼은 적은 없는지, 혹은 똑바로 직시해야 할 고통을 외면한 적은 없는지 계속 생각하며 읽어나갔다.
쉽지 않은 문제다. 김인정 역시 이렇게 묻는다.
"고통을 언제 보여줘야 하고 언제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고통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고 응시를 참아내야 하는가? 고통을 얼마나 보여주고, 또 가려야 하는가? 보여주기의 윤리와 보여주지 않기의 윤리는 누구를 지키는 것이며 누구를 위한, 향한 것인가?"
이 수많은 질문에 결국은 답을 정해야 하고 고통을 잘 전달하여 소비시켜야 한다. 김인정은 믿는다. 그 과정에 누군가는 그것에 감응하여 생각을 바꾸고 행동할 것을, 그 안에 희망이 있을 것을 말이다. 고통을 매개로 한 새로운 시선을 던져준 책이었다.
[아무튼 노래]를 읽으며 이슬아 작가의 문체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2024년에는 작가의 다른 책을 시도해 볼 계획이다. [1%를 읽는 힘]은 원래 투자자들을 위해 쓴 책이라고 하지만 내용 자체가 훌륭했다. 현 산업구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매우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 읽고 나면 역시 눈이 밝아질 것이다.
개브리엘 제빈의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역시 흡입력 강한 영미 소설이다. 게임을 좋아하고 내년에 수학과에 입학할 딸아이의 미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강력 추천한다.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으며 내가 뽑은 키워드는 의외였다. 마음 챙김, 명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 디로딩(잠시 물러나 컨디션을 조절하고 회복하는 행동) 등이다. 내가 요즘 추구하는 방향이다.
글쓰기 / 책 쓰기 / 독서법 관련 (7)
책 한 번 써봅시다 - 장강명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 김선영
글 우리도 잘 쓸 수 있습니다 - 박솔미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 정아은
강원국의 글쓰기 - 강원국
일기를 에세이로 바꾸는 법 - 이유미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 이동진
소설 (11)
구의 증명 - 최진영
앵무새 죽이기 - 하퍼 리
삼성동 하우스 - 김경래
딸에 대하여 - 김혜진
레슨 인 케미스트리 - 보니 가머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 개브리엘 제빈
제 꿈 꾸세요 - 김멜라
구디 얀다르크 - 염기원
귀향 - 베른 하르트 슐링크
내 생의 마지막 다이어트 - 권여름
세계명작고전 (5)
좁은문 - 앙드레 지드
싯다르타 - 헤르만 헤세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요한 폴강 폰 괴테
허클베리핀의 모험 - 마크 트웨인
올리버 트위스트 - 찰스 디킨스
미니멀리즘 관련 (10)
미니멀 키친 - KBS <과학 카페> 제작팀
먹고산다는 것에 대하여 - 이나가키 에미코
사지 않는 생활 - 후데코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 사사키 후미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졌다 - 이혜림
소비단식일기 - 서박하
사물의 심리학 - 아테네 쉐퍼
미니멀리스트 - 조슈아 필즈 밀번, 라이언 니커디머스
정리의 힘 - 곤도 마리에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 에린남
에세이 (8)
일은 서울에서, 잠은 제주에서 - 박상영
쓸만한 인간 - 박정민
엄마가 카페에서 때수건을 팔라고 하셨어 - 애매한 인간
아무튼 양말 - 구달
아무튼 노래 - 이슬아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정혜윤
월급쟁이 이 PD의 사생활, 이동원 (전자책으로만 읽음)
한국 소설이 좋아서 - 김혜정, 장강명
경제 경영 (4)
EBS 다큐 프라임 자본주의 - EBS <자본주의> 제작팀
1% 를 읽는 힘 - 메르
지리의 힘 - 팀 마샬
트렌드 코리아 2023 - 김난도 외
인문 / 사회정치 (3)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 러셀 로버
고통 구경하는 사회 - 김인정
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자기 계발 (4)
세이노의 가르침 - 세이노
타이탄의 도구들 - 팀 페리
빠르게 실패하기 - 존 크럼볼츠, 라이언 바비노
언어를 디자인하라 - 유영만, 박용후
읽고 있고 2024년에 계속 읽을 책 (기필코!)
도파민네이션 - 애나 렘키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 정지아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그냥 하지 말라 - 송길영
월든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암컷들 - 루시 쿡
그리고 봄 - 조선희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라 하라 - 최인아
숫자 사회 - 임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