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 삶 중 아무 단면이나 뭉텅 잘라다가 독자 앞에 가져다 놓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물론, 작가는 치밀하게 계획했을 터.) 어쩌면 너무 사소하고 개인적이라 들여다볼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일상들, 그런 면면을 소설가의의 언어로 만나는 일은 새롭고 경이로우며 결국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권여선의 단편 소설집 『각각의 계절』이 그랬다. 작년 말 50인의 소설가들이 뽑은 소설로 이 책이 뽑혔다는 기사와 몇몇의 감상&추천평, 올해는 한국 소설을 많이 읽을 작정이라는 삼박자가 맞아떨어져 2024년의 첫 책으로『각각의 계절』을 골라 잡았다.
여러 단편 소설이 디테일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편이지만 권여선의 소설은 그런 부분이 더 도드라졌다. 마치 구글맵으로 지구 전체를 보기 시작하다가 엄지와 검지로 화면을 벌려가며 더 깊이 더 은밀하게 만나는 어느 도시, 어느 거리, 어느 사람의 일을 들여다보듯이.
7편의 단편 중 몇몇은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이들의 현재 모습이 그려진다. 작년 5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권여선은 운동권 후일담이라고 규정하는 일부 평에 대해 "운동권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 세대의 경험과 슬픔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3』 표지 사진을 보며 87년 6월 민주항쟁 때 거리에 있던 그 사람들은 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땐 그렇게 열렬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하는 (조금은 원망의 목소리가 담긴) 질문이었다. 해외생활 14년 차, 이제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지. '사슴벌레식 문답법' 편에서 준희라면 이렇게 답했을까?
어디로든 갔어. 그게 어디인지 알고도 갔고 모르고도 갔어.
작가는 책과 함께 독자에게 남기는 글에서 "우리가 한 생을 살아내려면 한 힘만 필요한 게 아니라 각각의 시절에 맞는 각각의 힘들, 다양한 여러 힘들이 필요한 것 같다"라고 썼다.
세상은 변하고 우리도 변한다. 그때마다 필요한 힘이 달라지기에 시절마다 우리는 각각 다른 종류의 힘을 내야 한다고 권여선은 말하지만 정작 단편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힘을 내야 하는지 몰라 자주 허우적대는 것 같다. 그 모습이 아프고 때론 공감된다. 그러다가도 자기에게 꼭 맞는 힘을 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계절마다 알맞은 힘을 잘 내고 있을까? 어쩐지 올해는 힘을 내는 방향을 조금 틀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품는다. 소설 속 표현대로 자기 합리화라는 모순을 너무 오랫동안 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