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도 웃는 게 아니야
인터넷을 돌다 보면 남의 집 반려견들은 잘 웃는 것 같다. 털이 복슬복슬한 개들이 양 입꼬리를 쭈악 찢고 혀를 날름 내밀면 어우, 심장이 막 흐물흐물해지면서 둘째 딸이 보는 애니메이션에서나 들을 법한 소리가 내 입에서도 절로 나온다. "오~옹"
하지만 그건 남의 집 이야기고 우리 집 꼬댕이는 잘 안 웃는다. 그래도 4년간 함께한 반려인으로서 꼬댕이 표정의 미묘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었으니 대개는 이렇다.
"이 풍진 세상에 어찌 살아갈 끄나" 사색에 잠긴 철학자 같거나
"뭘 꼬나 봐?" 시비조이거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긴데..." 아련해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저 도도함으로 무장.
배를 까뒤집을 때마다 아무리 비벼줘도, 소고기 반찬에 치즈를 올려줘도 응당 받아야 할 대접을 받는다는 자세로 무표정할 뿐 변화가 없다. 이러니 다른 집 애들이 활짝 웃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잭 러셀 테리어 종 자체가 무뚝뚝한가.
그러다 궁금해졌다. 개들이 웃는 건 정말 기분이 좋거나 행복해서 웃는 걸까? <라이온 킹>이 실사 영화화 되었을 때 피해 갈 수 없었던 비판 중 하나가 동물의 표정 구현에 실패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만큼 인간에 비해 동물이 지을 수 있는 표정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러 글을 검색한 결과 [개는 웃을 수 있다]라는 명제는 오래전부터 찬반이 분분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이는 웃을 수 있다고 했고 다른 이는 그게 웃는 게 아니라고도 했다. 또한 웃음의 원인이 인간처럼 꼭 행복하거나 웃겨서가 아닐 수 있다고.
예를 들어 미국의 수의학 행동 전문가은 Lore Haug 박사는 개가 양쪽 입술을 뒤로 당겨 웃는 표정을 짓는 것은 적극적인 복종의 형태라 설명했다. 또한 죄책감을 느끼거나 원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될 때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데 이 역시 복종적인 미소로 주인과의 적대적인 대결을 피하고 싶어서란다.
이를 테면 두루마리 휴지를 다 뽑아 놓고도 씨익 웃는 표정을 지으며 "나 너랑 싸우기 싫어. 야단치지 마" 이런 건가? 고단수들이다.
미국의 한 동물 보호 단체는 개가 웃는다기 보다는 평소보다 안면 근육의 긴장이 풀어진 거라고 설명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입을 벌리다 보니 혀가 늘어져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인다고. 심리적으로 편안하다는 뜻이라고 하니 결국엔 행복해서 짓는 표정 아닌가?
그러던 중 꼬댕이가 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을 카메라에 포착한 적이 있다. 캠브리지에 놀러 갔을 때 캠강에서 작은 보트를 타고 관광을 하던 중이었다. 우리 집 개도 입을 활짝 벌려 혀를 빼고 미소를 지었다! 사람으로 치면 함박웃음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따져보면 저것이 '웃음'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쨍쨍 내리쬐는 햇살에 너무 더워서 나 역시 혀 내밀고 헉헉 대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적도 있다. 입을 조금 벌렸는데 그사이로 아랫니가 가지런히 드러내어 미소짓던 때.
사진 속 꼬댕이는 긍정의 필터를 끼우고 보면 카메라 앞에서 누가 "좀 웃어봐요"라고 말하자 이런 표정을 지으며 "이 정도면 되겠어?"라고 묻는 것 같다. 하지만 사운드가 추가되면 달라진다. "으르르르르르" 사실은 귀를 뒤로 젖히고 이를 드러내며 "나 좀 건드리지 마!"하고 경고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꼬댕이는 웃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실은 나도 요즘 그렇다.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다. 하는 일마다 어쩌자고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건지 나원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내가 꼬댕이도 아니고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이냔 말이다! 글에다가 이런 투정을 부려보고 싶어서 꼬댕이를 끌어들인 나란 인간 비겁한 인간!
* <개새육아>는 주 2회 발행합니다. 같은 주제로 개 이야기와 새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업로드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