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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통이 Jun 30. 2022

아이스 '마메리카노' 한 잔이요!


남편은 커피에 진심인 사람이다.

회사 내 커피 동아리 ‘시삽’을 역임했으며, 지도에 저장해 둔 커피맛 좋은 카페들도 몇 백개나 된다. 우리가 결혼식때 낭독했던 혼인서약에도 커피가 여러번 나온다. 나는 “신랑이 좋아하는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집에 항상 커피바를 만들고 원두는 늘 채워둘 것이며”라고 말했고, 이어서 남편은 “저는 매일 아침 그 원두로 커피를 내려 눈뜨게 해주겠습니다” 라고 경건하게 서약했다.


신혼집에도 처음엔 핸드드립에 필요한 드리퍼, 필터, 전동 및 수동 그라인더 정도만 있었는데 이젠 에스프레소 머신과 더치커피 메이커, 케멕스 드리퍼까지 생겼다.


나도 아침에 꼭 모닝커피를 한 잔 마셔야지만 머리가 돌아가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데다가 카페 탐방도 좋아해서 우리 부부의 일주일은 모닝커피로 시작해서 주말 카페 나들이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렇게 커피가 일상이었는데 임신을 하고나니 아무래도 조심스러웠다. 하루 한 잔은 괜찮다, 술 담배만 아니면 다 괜찮다, 한 번에 1리터씩 들이붓지 않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임신 초기에만 커피를 조금 참아보기로 했다.


카페인을 갑자기 끊어서인지 걷다가 뒷골이 땡기기도 했고 두통도 있었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아침 잠을 깨우는 따끈한 핸드드립 커피 한 모금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마음에 드는 원두를 고르는 시간, 원두를 갈면 온 집안을 채우던 고소한 향기, 첫 물줄기를 붓고 나면 동그랗게 위로 부풀어오르던 커피빵... 하루를 시작하던 아침의 리추얼을 간절히 되찾고 싶었다.


그렇게 임신 초기를 지나 드디어 12주가 되었고 그리웠던 모닝커피와 재회했다. 너무 진하면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을까봐 남편은 내 전용 커피로 '마메리카노'를 고안해냈다. 귀여운 에스프레소 잔에 커피 한 방울, 뜨거운 물 한 가득을 부어 만든 임산부용 커피.


3월 중순, 여느때와 같은 아침이었는데 남편이 건네준 캥거루 문양이 새겨진 쪼꼬미 에스프레소 잔에 담긴 마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시며 창밖을 보는데 눈물이 맺혔다.


아... 행복하다.


오랜만에 커피를 마셔서 느끼는 행복감인지, 단조로운듯 평범한 일상에 새삼스레 고마움을 느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모든것이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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