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내가 안을 테니

다음에도 나의 관객이 되어주길, 나의 청춘은 오래도록 상영됩니다.

by 파인트리

어찌하여 나의 극장엔

관객도 없이

두툼히 먼지 쌓인 영사기만이

고요하게 돌아가고 있나요.

다정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

따뜻했던 공간엔

아직 채 가라앉지 못한 온기가

바닥을 간신히 맴돌지만

곧 코 끝이 시큰거리며 빨개지는 걸 보니

저 넓은 허공에는

내가 싫어하는 냉기가 가득한가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울음을 참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니면 둘 다일까요.

언젠가는 당신이

텅 빈 나의 객석을

다시금 채워주길 바라며

오래도록 상영하고 있으렵니다.

나의 대본은 온통 당신으로 가득합니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영원했으면 하는 기억을

하나하나 칠하다 보니

모든 페이지가 형광펜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나는 원래 글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보내고

혹여나 당신이 희미해질까 두려워

오랫동안 당신을 간직하고,

얼마 없는 내 추억에 새기고 싶어

글로 써 내려갑니다.

한 치의 거짓 없이

오로지 무거운 진심만을

꾹꾹 눌러 담다 보니

뒷장에 진한 자국을 남기며

이제야 한 챕터를 완성합니다.

남은 페이지에도

당신을 보관하렵니다.


고개를 들어

구름 한 점 없는 도화지에

어렴풋이 당신의 얼굴을 그려봅니다.

차마 뱉을 수 없었던 고백을 접어둔 채

뜸을 들입니다.

시야가 희미하게 번지고

주체할 수 없이 입김이 터져 나올 때

묻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나요.

당신의 영원한 사랑이 될 순 없었지만

당신에게 영원한 첫사랑으로 남길 바랍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사랑을 묻는다면

내 이름 석 자를 떠올려주길.

새로운 시나리오를 작성하게 될

과연 오기는 할지,

언제가 될지조차 모를

그날을 기약하며

차가운 숨을 삼킵니다.

당신을 충분히 사랑했기에

충분히 아파할게요.

절망은 내가 안을 테니

당신은 무탈히 행복하세요.


당신 덕에 나의 청춘은

오래도록 상영됩니다.


- 파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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