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겠습니다_7
나는 추운 게 싫다. 겨울이 싫다. 겨울이 되면 해도 짧아지고 공기도 차서 좀처럼 이불 밖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다. 아침에 눈도 늦게 떠지고 몸도 으슬하다. 이불 밖으로 내놓은 코끝이 서늘해질 쯤에야 정신이 들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런 기분은 침대에서 나와 씻고 옷을 갈아입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추우니 몸을 웅크리고, 몸을 웅크리니 하루 종일 어깨가 아프다. 요새는 바깥에 나가질 않아 좀 낫지만 사실 나은 것도 아니다.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하니 답답하고, 답답한 몸 때문에 마음도 답답해진다. 집에 있든 밖엘 나가든 싫은 계절인 것이다.
이런 추위에도 불구하고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얼음. 그래, 나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 파, 얼죽아파다.
재택을 하면서, 아침마다 커피를 3인분씩 내린다. 드륵드륵 핸드그라인더로 커피를 갈면서 잠을 깨운다. 한여름에는 바로 시원해졌으면 해서 얼음을 받쳐놓고 커피를 내렸는데, 그러다 보니 얼음 양 조절에 실패해 너무 연한 커피를 마시곤 했다. 이젠 날이 싸늘해 아빠는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에, 처음부터 따뜻하게 커피를 내린다. 아빠 몫 한 잔을 덜어내고, 나머지 두 잔 치는 냉장고로 향한다.
(집안에서긴 하지만) 출근 준비를 하면서 커피가 식기를 기다린다. 그러고 나서는 한 입 농도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사실 차가우면 차가울수록 좋아하지만 가끔 연하게 내려진 날은 차라리 냉장고에 더 뒀다 얼음을 덜 타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시간이 없을 땐 컵째로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까먹어서 더위사냥을 먹게 되는 수도 있다. 그런 날은 낭패다. 내가 아이스 음료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시원한 목 넘김 때문이지, 이런 사각거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커피만 차갑게 마시는 건 아니다. 간혹 가족끼리 와인을 마실 때도 나는 화이트든 레드든 칠링 된 게 좋다. 병을 냉장고에서 막 꺼냈을 때 병 표면에 물방울이 송골송골 바로 맺히는 정도의 시원함이 좋다. 아주 가끔 칠링이 너무 안 된 와인이면 얼음을 한 알 탄다. 맥주나 막걸리는 두말할 것 없다. 위스키는 아직 배우는 중이라 최대한 얼음 없이 마셔보려고 하지만 그래도 가끔 그 얼음에서 녹아내린 물이 향을 더해줄 때도 있다. 아무튼 그래, 이렇게나 얼음이 중요하다.
본가의 얼음 공장은 이렇게 가동된다. 커다란 양면 냉장고 냉동실에 빌트인 되어있는 얼음곽이 있다. 얼리고, 내린다. 아래에 쌓여있는 얼음이 떨어지기 전에 또 얼린다. 이걸 반복한다. 가끔 얼려둔 얼음만 쏙 쓰고는 새로 얼음을 안 얼리는 가족 구성원도 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려다 얼음이 없는 걸 발견하면 커피를 마시기도 전인데 속이 쓰리다. 참을 인자를 새기며 내 탓이라 여긴다. 전 날 밤에 한번 더 냉동고를 확인할걸, 후회한다.
새로 갈 독립 하우스에는 이런 일은 없을 테다. 내가 쓰면, 나만 채우면 된다. 내가 채우면, 나만 쓴다. 문제는 모든 자취생의 작은 냉장고가 그러하듯 빌트인 되어있는 얼음 트레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여러 개로 할 거다. 작은 얼음을 얼릴 수 있는 트레이와 얼음을 모아둘 수 있는 얼음 통을 마련할 거다. 좀 더 큰 얼음도 얼리려고 한다. 온 더 락이 마시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얼음 대신 얼려 쓰는 스뎅 얼음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차가운 음료의 하이라이트는 음료를 끝낸 뒤 와그작 와그작 씹어먹는 얼음 조각의 맛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실리콘보단 플라스틱으로 된 얼음 트레이가 좋다. 비틀어서 뒤집으면 후드득 떨어지는 게 통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리콘이 더 위생적이라는 말도 있고. 한번 알아보려고는 한다.
아무튼, 얼음 트레이 찾아 삼만리.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