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그런 날, 혹은 그런 때가 있다.
통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우는 날.
최근 가슴줄을 이용하면서, 채우기만 얼추 성공하면 아주 평화로운 산책시간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채우기'도 보통 밥을 먹을 때 채우거나, 간식으로 유인해 채우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내가 귀찮게 한걸 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어제는 너무 힘들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홉 시가 넘어있었고, 조금이라도 나갔다 오자 싶어 채비를 하고 마당으로 나오니 아홉 시 이십 분쯤. 호두는 이미 밥을 먹고 웅크려있었고, 내가 다가가니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우리 안에서 가슴 줄을 채우는 게 한결 쉬우니 입구를 몸으로 막고 채우려고 했는데, 내 다리 사이 그 좁은 틈으로 도망치더라. 한참을 마당에서 뒹굴고 구르다가, 가슴줄을 들고 덩그러니 서있는 날 보더니 빨리 나가자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나가려면 가슴줄도 채워야 하고 리드줄도 채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가만히 있어야 되지 않겠니. 타이르며 앉아와 기다려를 연속했지만 역부족. 그저 빨리 나가자고 펄쩍 날뛰며 날 뒤로 밀칠 뿐이었다.
짜증과 억울함이 몰려왔다. 내가 여태껏 너에게 들인 시간과, 교육과, 회유. 같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산책도 열심히 나가고, 하지 않아야 할 행동들 (무는 시늉하기, 밀지 않기 등)에 대해서도 여러 번 알려주려고 했는데, 결국 소용이 없는 건가. 내가 너무 많이 기대를 한 건가. 아닌데 그래도 잘 할 때는 잘 하던데, 오늘 내가 너무 늦게 와서 복수하는 건가. 수많은 생각들이 스쳤다.
그래도 내가 뭐 어쩌겠나, 그저 내 마음을 타이를 수밖에. 마음을 다시 다잡고 다잡고 가슴 줄을 내려놓고 냄새도 더 맡게 했다가, 간식으로 유인도 했다가, 앉혀놓고 얌전해질 때까지 기다려도 봤다가. 겨우겨우 가슴 줄을 채웠다.
다행히 가슴줄을 채우고 나서는 몸이 약간 조이는 느끼이 나서 인지 이제 진짜 나간다는 걸 체감을 한 건지 리드줄 연결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집을 나섰다. 기분은 좀 다운되어있었지만 산책 다녀오면 뿌듯하리라, 신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그날따라 왜 이렇게 길에 뼈가 많은지.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지만, 간혹 덤불이 우거진 곳, 혹은 길 구석 어딘가에 돼지인지 소인지 닭인지 뼈 들이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그 냄새를 또 어떻게 맡았는지, 그냥 풀 냄새 맡겠거니 지나쳤다가 뭘 우물우물 빠직빠직 씹어대면 그제야 놀라 뱉으라고 호들갑을 떨게 된다. 어제는 그런 경우가 자그마치 세 번이나. 다행히 간식으로 유인하고 잡아당기고 정신없게 만들어 다 뱉어냈지만, 그래도 진 빠지고 걱정됐다.
이 바보 녀석아, 그거 먹으면 설사하는데, 그거 먹으면 잘못해서 목구멍이나 내장을 긁고 찌를 수도 있다는데. 왜 그걸 먹니!
나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호두가, 차도로 빠지지 않도록 이상한 걸 먹지 않도록 잔뜩 긴장한 탓일까, 집에 돌아오니 맥이 탁 하고 풀렸다. 원래는 들어와서도 줄 풀어주고 마당에서 공놀이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는데 도저히 힘이 없더라.
그래서 공 좀 던져주다가도, 호두가 나 잡아봐라를 시도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놀아주지 못했다. 지치고 춥고 해서 웅크리고 앉았다. 호두는 내 근처로 왔다가, 내가 공을 던져주려 손을 뻗으면 그새 다시 공을 물고 도망치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고개를 푹 숙이고 웅크렸다. 호두는 공을 가지고 멀찍이 도망가있었는데, 내가 한참을 그러고 있었더니 공을 놔두고 총총걸음으로 다가왔다. 자기 얼굴을 내 얼굴에 바싹 붙이고 한동안 빤히 쳐다봤다.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도 가만히 있으니 내 뒤로 걸어갔다. 또 얼른 일어나서 나를 놀아달라고 밀치겠거니, 긴장을 등에 한가득 집중하고 있는데, 와. 내 등에 자기 등을 딱 대고 부비적 대는 거다. 뜨끈한 체온과 그 몸짓에 파-하고 함박웃음이 퍼졌다.
한 번 웃으니 이번에는 머리를 내 품으로 들이민다. 그 작지도 않은 머리통을 내 몸통에 한참을 들이밀더니 이제 바닥에서 구르고 배를 까 뒤집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그 덕에 소리 내 웃고 한참 쓰다듬어주고 놀아주다가 들어왔다.
개를 키운다는 건, 연애나 육아와 비슷하다. 한없이 예쁘고 좋다가도 답답하고 서운할 때도 생겨난다. 그러다가도 날 향해 웃어주는(듯한) 표정 한 번, 꼬리 짓 한 번에 박장대소하고, 또 그걸 떠올리며 피식 웃게 된다. 바라는 것 없이 예뻐할 수 있다 자신하면서도, 작은 행동(사실 호두는 큰 행동이지만) 하나에 옹졸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귀여워서 참을 수 없는 모습에 그날 피로가 다 풀리는 듯한 기분까지. 정말 손도 많이 가고 마음도 많이 가는 잔망 둥이지만, 또 내 사랑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