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리 개는 오십키로

내가 힘에서 밀리는 이유가 있었다

by 소녜

나는 한 힘 한다고 자부한다.


여자치고 근육량도 많은 편이고, 몸도 건장하고, 오기랄까 지기 싫어하는 마음도 커서 어디 가서 힘쓰는 일을 도맡아 하기도 한다. 누구한테 밀리는 걸 싫어하고, 실제로 잘 밀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유독 우리 개 호두한테는, 힘으로 안되더라. 특히 이지워크 없이 산책 나가던 이전에는 목줄에 질질 끌려가던 건 다반사요, 아예 처음 호두랑 놀아줄 때에는 아빠 돕바를 껴입고 나가도 호두 펀치에 뒤로 퍽퍽 밀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너는 왜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지 않는 거냐며 혼자 토라지고 씩씩대곤 했다.


그러다 언젠가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사람이 개 무게의 4~5배 이상이 되어야 그 개를 온전히 힘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음 호두는 짐작컨대 15-20kg 정도 나가겠지? 내가 못 이길만하군. 정도였는데, 지난번 병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지금은 다시 빠졌지만, 산책을 시작하고 한동안 내가 간식을 많이 줘서인지, 아니면 밥 량을 좀 늘려서인지 살이 찐듯해서 병원 간 김에 호두가 살이 좀 찐 것 같은데... 하고 운을 띄웠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 왈, 매번 몸무게를 재기 좀 어렵긴 한데 지난번 쟀을 때가 50킬로였네요.


네? 50이요? 하고 바로 반문했는데, 돌아오는 건 네, 하는 가벼운 대답이었다. 이럴 수가 오십 킬로였다니. 이거 참 말티즈를 키우는 내 친구보다도 무거운 녀석이었군, 나랑도 얼마 차이가 안 나는군. 난 정말 호두에게 힘으로는 쨉도 안 되는 상대였겠군, 싶었다.


이렇게 보니 새삼 크다. 늠름한 엉덩이.


이렇게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아이가 전혀 아니다 보니, 그만큼 신경을 더 써야 하는 게 맞다. 소형견들처럼 여차하면 안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이즈가 크니 걸어 다닐 때 차지하는 부피도 커서 주변에 다니는 사람, 개, 자전거도 더 많이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산책을 나갈 때면 바닥에 이상한 건 안 떨어져 있는지, 호두가 불편해하지 않고 잘 걸어 다니고 있는지, 뒤에서 자전거가 오지는 않는지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다.


가끔 저 멀리서 조그마한 강아지가 발발거리며 걸어오는 게 보일 때면, 미리부터 호두의 관심을 돌리려 한참 노력해야 한다. 내 몸으로 막아선다거나, 구석에 앉혀놓고 손! 따위를 하며 간식을 준다던지. 길이 너무 좁아서 어디 비켜설 곳이 없을 때에는 최대한 빨리 지나가거나, 호두가 이미 그 강아지를 발견해서 집중하는 상태가 되면 줄을 바짝 땡겨잡고 튀어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그러다 간혹 그 작은 강아지가 신이 나서 or 잔뜩 짖으며 호두에게 다가오면 더더욱 겁이 난다. 특히 작은 개들은 전체 크기가 호두 머리통만 하기 때문에, 동등(?)하게 인사를 나누기보다는 1) 호두가 일방적으로 냄새를 맡고 그 아이는 옴짝달싹 못하는 채로 얼어있거나, 2) 잔뜩 짖으며 다가오는 탓에 호두가 겁을 먹고 달려들거나 도망가려고 하는 상황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팽팽한 목줄, 참 불안하다.


아주 몰상식한-"우리 개는 괜찮아요, 안 물어요"라며 목줄 없이 산책을 나오거나, "어머 얘 좀 봐 까르르"하며 다른 개에게 호전적으로 구는 강아지를 오히려 독려하고 칭찬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등의-주인들을 제외하고는, 사실 대부분의 견주들이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른 개와 say hello 정도의 안부인사를 묻고 지낼 수 있는 사교성 좋은 아이이기를 바란다. 나도 마찬가지이고, 내가 길에서 마주치는 다른 주인들도 그래 보인다. 그래서일까, 서로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잔뜩 긴장할 때가 많다. 목줄은 바짝 잡고, 언제든지 힘으로라도 데리고 갈 준비를 하며, 각자의 개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이름을 불러댄다. 누구야 괜찮아, 긴장하지 마, 친구 안녕~하고 가자 하며. 하지만 정작 주인끼리는 눈 마주칠 여유도 없다.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아이 단속하려고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아이가 신경 쓰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하는 인사말을 건네게 된다.


하물며 소형견들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도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데, 나는 오죽할까. 하지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이 긴장하게 될 테고, 그럼 그 긴장이 강아지에게 전달될 수도 있고, 그러면 또 개들끼리 긴장감을 조성하게 될 수도 있을 테다. 이 철딱서니 없는 호두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기저기 활개 치고 내 위로 올라타고 난리도 아닐 때가 대부분.

본인 무게를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태도. 어휴 무겁다 무거워


그래서 이 글을 쓰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좀 찾아봤다.


https://www.rd.com/culture/etiquette-rules-for-dog-owners/

이 링크에서는, 강아지들끼리 인사시킬 때의 팁을 알려주는데, 강아지의 제스처에 집중하라고 한다. 이 아이가 차분한지, 꼬리나 눈빛을 살펴보고, 날뛸 준비를 하고 있다면 그냥 지나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호두는 후자에 해당해서 사실 인사하기 좋은 상대는 아니지만, 가끔 아주 아주 사교성 좋은 친구가 쪼르르 다가올때는 금세 긴장을 푸는 편. 물론 한평생 내가 껴안고 다른 개들 못오게 다른 개들에게 못가게 하며 지낼 수도 있지만, 그러면 너무 무료하고 심심하지 않겠나. 아무쪼록 밖에 나가서도 차분하고 릴랙스된 아이가 될 수 있도록 나도 좀 더 여유를 (하지만 주의는 기울이고) 가지고 호두를 편하게 해줘야겠다. 더 많이 공부하고 연습해야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맘충도 개맘충도 없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