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민의 한탄, "정말 그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바로 그제 호두가 오십키로라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어제 기사를 보다가, 이런 기사를 접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71105/87114394/2
속상했다. 이런 탁상정책이라니. 이게 단기적으로는 사람들의 불안함을 해소시켜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장기적으로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사회에 맞는 방향일까?
15킬로라는 기준은 대체 무엇을 토대로 마련된 기준인걸까? 개인적인 경험 상, 목줄을 하고 다니지 않는 견주의 비율은 소형견의 경우가 훨씬 높았다. 아파트 단지 내, 가정 내에서 키우는 실내견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특성상, 소형견을 키우는 집이 많다. 절대적 숫자가 많아 그렇게 느끼는지, 아니면 정말 교육의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 혹은 호두에게 먼저 달려들고 짖는 반응을 보이는 개들도 소형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길 가다 만난 비글은 낮게 한 번 짖었으나 주인이 바로 멈추게 하고 혼을 냈고, 먼저 다가와 냄새를 맡다 돌변해 짖고 코를 문 치와와 주인은 허허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대형견일수록 이빨이 크고, 힘도 좋으니 '제대로' 물리면 더 큰 상해를 입을 거라는 거, 동의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토록 울부짖던 '잠재적 가해자 취급 말라'는 이야기는 정말 개개인, 한 개체로써의 존엄을 해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정말 잠재적 가해자이기 때문에 찔려서 하던 말이던가.
동의한다. 반려견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든, 누구도 물리지 않아야 다 같이 잘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책임을, 혹은 징벌을 개에게 떠넘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람은 잘못 없어, 공격적인 네 탓이야, 하고. 이는 결국 역으로, 사람이 개에게 위협을 주는 상황이지 않을까.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이 키우는 견종도 다양해졌다. 대부분 실내견으로 길러지기 때문에 소형견이 주를 이루지만, 최근 인기를 얻은 시바견부터 최현석 셰프의 시베리안 허스키, 옛날 어느 예능에 나오던 그레이트 피레니즈 상근이까지. 아주 다양하다.
그러다 보니 정말 일부 초소형 견종들을 제외하고는, 몸집이 조금 큰 편인 소형견 녀석들부터, 중형견 이상의 모든 아이들은 15kg 이상이 된다. 많이들 키우는 코커스패니얼이나, 웰시코기, 미니어처 푸들, 비숑프리제 아이들도 충분히 리밋에 걸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많은 아이들이 단순히 무게에 걸린다는 것만으로 마음껏 풀내음을 맡을 자유, 산책 중에 물을 마실 여유, 간식을 먹겠다고 재롱을 부리는 재미를 잃어야 하는 걸까?
개의 공격성은 몸무게나 크기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물론 일명 '도사견'으로 분류되는 일부 야생성이 강한 종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개들은, 그런 유전적 요인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의 경험, 사회화 교육 등이 매우 큰 포션으로 작용한다. 묶여서 길러지는 개들은 그렇지 않은 개들보다 물 가능성이 2.8배나 높다고 한다. 결국 이 탁상정책이 사람들이 반려견들과 안전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는 말이다.
조례 개정을 추진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경기도민이 1,300만 명이다. 그중 '반려 인구 천만'이라는 말에서 따와 비율을 10%로만 적용해도, 130만 명은 견주일 것이다. 그런데 불과 1,000명 밖에 안 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 이런 법안을 기안하다니. 기가 찰 노릇. 만약 조례 개정이 결국 되었다고 치자. 과연 여태까지 목줄도 않고 아무에게나 짖고 달려드는 강아지들을 예쁘다 예쁘다 키워온 견주들이 이걸 지킬까? 아마 '우리 애는 15키로 안돼', 혹은 되더라도 '너가 재봤어?'라는 태도로 일관하지 않을까.
공격성이 강한 아이들에 대해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일괄적으로 모든 개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모든 개, 혹은 모든 견주들에게 적용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면, 그건 교육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강아지의 사회성을 키워줄 수 있는지, 다른 개들이나 사람을 보더라도 흥분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지, 강아지의 정서를 관리해주고 견주의 책임의식을 키우는 교육.
물론 나도 완벽하지 않고 갈 길이 멀지만, 이런 식으로 선순환을 일으켜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