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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Dec 31. 2017

[아무생각] 새해 복 많이 받아야지

2017년 올 해를 돌아보며

올 해가 하루도 안 남았다.


2017년을 어떻게 보냈는고, 돌아보면 8할은 ‘화’였으며, 2할 정도가 ‘위로’였던 것 같다. 한 해 대부분을 화를 내며 보냈던 것 같은 기분. 매우 무기력했고, 스트레스풀했다.


무엇에 화를 냈냐 하면,


1.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화가 났다.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느낀 지는 2년 정도 되었다. 일을 시작한 이래로 계속이다. 처음에는 내 마음을 바꿔보려 노력을 많이 했다. 사람들과도 친해지고, 힘든 속마음도 털어놨다. 일은 열심히 했다. 또래 동기들과 비교해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고, 애초에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못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주어진 것도 못하면서 다른 데 가면 잘 할 것 같아?라는 소리를 행여라도 듣기 싫어 부득부득 힘을 냈다. 인정도 받았다. 지금 이대로만 해. 잘 하고 있어. 나중에 이거 해볼래? 이런 거 해보면 좋을 것 같아, 하는 격려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들이 인정을 해주고, 내가 나 스스로 잘 하고 있다고 느껴도, 내가 선택한 것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거 잘 해봤자. 너가 그렇게 말해봤자.라는 생각이 밀려오며 감정이 바닥으로 돌진했다. 바닥은 무슨. 지하로 뚫고 들어갔다. 그렇게 겉으로는 웃고, 밝고, 힘내지만 속으로는 울고, 욕하고, 한없이 침전했다.


다른 것을 알아보려고도 노력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그러니 악순환이었다. 나 스스로가 쓸모가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자신감이 떨어졌다. 머리로는 잘할 수 있다고 되뇌면서도 마음으로는 잘 되지 않았다.


2. 내가 이렇게 화가 나게 만든 세상에 화가 났다.


내가 원해서 온 곳이 아닌데. 사실 머리로는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겁이 났다. 또 다른 곳에서 똑같은 일을 겪을까 봐, 혹은 아무 데도 갈 수 없을까 봐.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도 최악일 것이라는 생각에 무서웠다. 그래서 용기를 내지 못했다. 대신 남 탓을 시작했다. 나를 왜 여기 데려왔어요, 정말 나를 원해서 인 것도 아니면서. 내가 여기서 잘해서 좋죠? 잘 얻어걸렸다 싶죠? 근데 왜 나예요? 끊임없이 원망했다.


3. 이미 화가 나있어서 화가 났다.


그냥 계속 화가 났다. 원래의 나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는 밝고 자신감이 넘치며 멋있는 사람이었는데. 세 가지 모습 모두 놓쳐버린 것만 같아 화가 났다. 예민해졌다. 작은 일에도 감정적이 됐다. 쿨하고 싶었는데, 절대 쿨해질 수가 없었다.


그래도 2할의 위로가 있어서 버텼다.


1. 올해 시작한 운동, 필라테스.


올해 2월부터인가,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시작은 단순했다. 아직 날이 추우니 실내 운동을 하고 싶었고, 동기가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반은 오기였다. 에라 짜증 나는데 돈이나 써버리자. 필라테스는 사실 비싼 운동이다. 할인을 받으려면 일시불 현금으로 계좌이체를 해야 했다.

해버렸다. 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다음부터 안 하면 되지, 싶었다. 근데 좋았다. 필라테스는 호흡을 중요시하고, 근력운동을 할 때에도 근육 한 부분 한 부분을 떼어내어 집중해야 하는 운동이다. 내 몸에 집중을 하다 보면 감정에 집중할 새가 없다. (힘이 들어서 더욱 그렇다!) 그렇게 화와 나를 분리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그 고리를 조금이나마 끊어낼 수 있었다.


2. 나의 작은, 아니 커다란 강아지 호두.

올해부터 호두 산책을 정말 열심히 시켰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호두를 지켜보는 시간도 늘어났는데, 너무 미안했다. 우리 집 네 가족은 모두 일을 하는데, 그래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 저 예쁜 것이 우리 집에 영문도 모른 채 와서 외로워하는 게 안쓰럽고 미안했다. 비록 아빠가 일말의 상의도 없이 데려왔다고는 하나,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예뻐해 주기 시작했다. 초보 견주라, 부족한 것도 많고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있어 스스로에게 속상할 때도 많았다. 그래도 호두와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호두는 그만큼 내게 애정을 돌려줬다. 나를 반겨주고, 나를 좋아해 줬다. 비록 말은 하지 않더라도 눈빛에서 몸짓에서 그게 느껴지니 참 위로가 됐다.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라는 게.


3. 내 사람들.


가장 많이 만난 두 사람에게 아주 큰 위안을 얻었다.

첫 번째는 남자 친구. 사실 아주 많이 미안하다. 한동안은 내 감정을 나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고 마구마구 던져버린 대상이 된 것 같아서. 그래도 아주 많이 고맙다. 그걸 다 견뎌주고, 옆에서 잡아주려고 노력해서.

두 번째는 같은 회사에 있는 동기. 어떻게 보면 남자 친구보다도 자주 보고 오랜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낸 친구다. 그만큼 서로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직접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서로가 기꺼이 서로의 욕받이가 되어줬다. 이만큼 좋은 대나무 숲이 어디 있으랴.


어찌 됐건 너무나도 힘들었던 올해가 끝나간다. 도무지 견딜 수 없어 내년을 기다린 게 오래다. 올해 많이 쏟아낸 만큼, 내년부터는 청소를 시작할 거다. 감정의 찌꺼기들도, 그리고 습관의 잔여물들도 쓸고 닦아 없앨 거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계속 정의하면서 내 존재를 확인한다. 내가 보았을 때 올해의 나는 정의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엉망이 어떤 건지 경험해봤으니, 내년부터는 다시 멋진 나를 정의할 거다.


새해 복 많이 받아야지!

이제 2017년 액땜은 끝!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는 많이 받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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