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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Jan 09. 2018

[일상자랑] 운전 통근에 성공(?)했다

2017년 목표였던 '운전 잘 해지기' 검증의 날

1월 1일 월요일, 모두가 쉬던 그 날에 나는 출근했다.


일이 대단히 많아 차마 주말에 다 못 끝냈다기보다는, 일정 상 1월 1일에서야 할 수 있고, 또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확인해놔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날 우리 팀에서 출근해야 했던 사람들은 주니어 세 명이었고, 그 전 주에 농담 삼아 차를 가져와볼까, 하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에는 주차공간이 넉넉하지 않아서 평소에는 주차권이 있는 일부 (일찍 출근하셔야 하는) 차장님 이상분들만 주차가 가능하다. 하지만 주말이나 휴일에는 아무도 없다 보니, 직원이라면 차를 가지고 출입이 가능. 그래서 용기를 내볼까 싶었다.


사실 나는 내 명의의 차가 있다. 내 것이 아닐 뿐. 이것저것 할인을 받느라 내 이름으로 샀는데, 사실은 아버지가 타시던 리스차를 반납하고 아버지가 사용하신다. 아직 나이 때문에 높은 보험금을 적용받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 명의의 차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고, 가끔 주말에 동네에서 운동갈 때만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여겼다. 서울 언저리에서 차를 몰아본 건 항상 조수석에 탄 아빠가 함께였다.


집에 돌아가서 이야기를 꺼냈다. 나 1월 1일에 출근해야 해, 여덟 시까지. 그래서 말인데 차를 가져가 볼까? 의외로 아빠는 흔쾌히 콜을 외쳤다. 혼자 연습도 해봐야 늘고, 그 날 아침엔 차가 별로 없을 것이니. 하지만 엄마가 반대를 외쳤다. 날도 춥고, 땅도 얼었을 테고, 다음에 연습해보면 안 될까?


하지만 아빠가 동의를 했으니 한 번 밀어붙여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아니면 계속 못 할 것 같아, 하고 고집을 부렸다.


1월 1일 아침. 휴일인데도 일찍 일어난다는 것에 한참 우울을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땅이 얼긴 얼었더라, 아빠가 말했다. 그래도 브레이크 너무 세게 말고, 적당히 밟으면서 천천히 내려가면 돼. 혹시 바퀴가 미끄러지는 것 같아도 절대 핸들을 움직이면 안 된다. 그냥 그대로 천천히 내려가. 

언덕배기에 있는 우리집은, 눈이오면 감옥이 된다.


마침 아빠도 다른 곳에 볼 일이 있어 우리 집 차가 총출동했다. 내가 먼저 내려가고, 아빠가 뒤따라서 내려왔다. 언덕배기에 있는 우리 집은 눈이 와 땅이 얼면 정말 큰일이다. 그래도 천천히 내려가니 눈이 다 녹은 큰길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거기서 아빠와 나는 갈라졌다. 네비를 따라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괜히 가져왔나. 엄마 말 들을 걸 그랬나. 그래도 이미 올라탄 고속도로에서 어쩌랴, 직진하는 수밖에. 내비게이션을 열심히 따라갔다. 아빠가 평소에 가던 길로 가려고 했는데, 여기가 맞나? 하다가 그냥 네비따라 갔다.


오, 무사 도착! 같이 출근한 선후배들에게 자랑을 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내려주마, 하고 후배에게 약속도 했다.


돌아가는 길, 후배에게는 조금 느릴 수도 있으니 감안하라고 하고 태웠다. 네비 찍어요, 하고 수다를 시작했다. 처음 가보는 길이었다. 사실 앞으로도 갈 일 없겠지.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내를 돌아, 아파트 단지 앞에 내려줬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로 작별인사를 했다.


집으로 향했다. 후배 집은 분당 우리 집은 수지, 사실 멀지 않다. 가다 보니 아는 길이 나왔다. 자신감이 붙었다. 여기부터는 오케이지! 우리 집 올라가는 언덕배기 초입, 산 쪽이라 그런가 그늘져서 그런가 아직 눈이 다 녹지 않았다. 군데군데 얼음도 보였다. 조심히 올라가야지. 슬금슬금 올라가는데 우리 집 걸어서 5분도 안 남은 곳에서 어라? 바퀴가 헛돌았다. 겁이 덜컥 났다.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아빠, 바퀴가 헛돌아. 지금 언덕에서 멈춰있어.
속도 내서 올라와야지.
아예 앞으로 안 가는데?
그럼 후진으로 얼음 없는 데까지 내려갔다가 속도 내서 올라와.
알겠어.


전화를 끊고 후진해서 슬금슬금 내려갔다. 훅, 올라가려 했지만 내가 쫄보인 탓인지 속도를 내지 못하고 다시 멈췄다. 그새 트럭 한 대가 내 뒤에 와 있었다. 아저씨는 다가와 1단으로 놓고 슬금슬금 올라가라고 했다. 1단? 자동에도 그게 되나? 어쩌지 하는 새에 아빠가 내려왔다. 일단 차를 옆으로 치워주고, 트럭 보고 먼저 올라가라고 했다. 트럭도 올라가다 바퀴가 헛돌아 멈췄다. 후진을 하더니 아예 길을 돌아 나가버렸다. 


뭐지, 하는 새에 아빠는 출발했다. 얼음이 없는 곳까지 후진, 그리고 훅! 아, 속도를 이 정도나 내야 하는구나. 나 같은 쫄보는 안 되겠다. 역시, 눈 온 날에는 집에 있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 하루였다.

휴,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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