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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들어줄 수 있을까?

너는 친구를 원할까?

by 소녜

얼마 전 동네에서 산책을 하고 들어오다 한 아저씨를 마주쳤다.

좁은 길이었고, 먼저 지나가시라고 호두 리드 줄을 잡아당겨 구석에 밀착해있는데, 아저씨가 멈춰 서서 빤히 쳐다보더니 인사해도 되냐 물으셨다.


인사해도 되냐 물으시는 분이라면, 강아지를 좋아하고 예의를 지켜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네,라고 대답했다. 아저씨는 무릎과 상체를 살짝 기울여 호두가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해주셨다. 호두는 슬쩍 다가가 냄새를 맡더니 뒤로 펄쩍 뛰었다. 아저씨는, 자기도 집에서 큰 개를 키워서 그렇다고, 냄새 나서 그런가 보다고 하고 허허 웃으시더니 아쉬우신 듯, 혹시 친구 만들어주게 기다려줄 수 있냐고 강아지 데리고 나오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우리 집은 갈 길도 꽤나 멀었고, 밤이 늦어서 안 되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그러고 이튿날 아침, 일찍 산책 길에 나섰다. 다른 강아지를 만나면 워낙에 흥분하는 호두니까, 사람도 없고 강아지도 없는 아침 시간대나 밤 시간대가 맘 놓고 산책하기에는 좋다. 호두가 좀 더 제 멋대로 굴어도 괜찮고, 나도 졸리지만 긴장을 풀 수 있으니까.


날씨가 좋아지면서, 그리고 해가 일찍 뜨면서 아침부터 산책 나오신 어르신들이나 싸이클 동호회 사람들이 많이 늘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야, 하면서 호두가 맘껏 풀내를 맡고 물구경을 하고 흙바닥에 뒹구는 걸 지켜봤다. 가끔 나와 비슷한, 아침 일찍 산책 그룹들이 저 멀리서 보일 때면 호두 목도 축여주고, 빙 돌아가는 등 거리를 유지했다.

다른 개를 안만나서 아주 평화로운 상태.

그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회해서 갈 길 없는 도로 반대편 저 멀리에서 스탠다드푸들 한 마리가 보였다. 호두는 자기가 아직 아기인 줄 아는지, 자기보다 큰 개를 만나면 지레 겁먹고 짖는 성향이 있어 목줄을 짧게 붙잡았다.


그런데 어라? 어제 본 그 아저씨 분이었다.

눈이 마주치고, 인사를 하고. 그 옆에 서있던 푸들은 너무나도 순하고 얌전하게 기다려줬다. 아저씨가 잘 만났다며, 인사시키면 되겠다고 하셨지만 호두는 그새 저 멀리에서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오고 가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조금 옮겨서, 친해지길 바래를 다시 시도했다. 나는 벤치에 앉고, 내 왼쪽에는 호두가, 그리고 오른쪽에 아저씨와 스탠다드 푸들이 서있었다. 푸들 친구는 너무나도 얌전했다. 여덟 살이랬나, 뭐 한 번 움찔거리지도 않고 가만히 서있어줬다.


호두야 이거 봐, 괜찮아. 이 친구 봐봐라, 하면서 푸들 친구의 턱을 조심스레 쓰다듬고, 귀도 만져보고, 가슴께도 쓰다듬어 줬다. 호두는 잠깐 와서 궁둥이 냄새를 맡는 듯하더니 재빨리 다시 멀어졌다. 그 와중에 푸들 친구는 큰 반응 없이 그저 하품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곧 후기를 쓰겠지만, 최근에 읽고 있는 <개는 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르면, 우위에 있는 개가 열위에 있는 개와 있을 때 하품을 하는 것은 그 친구를 안심시켜주려는 행동이라고 한다. 이 얼마나 고마운 친구인가!)


내가 차분한 목소리로 괜찮다 타이르며 계속 앉아있어도 호두와 그 친구가 가까워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새 벤치 위로 올라와 내 등 뒤에 가만히 숨어있는 호두. 결국 아저씨와는 안타까워하며, 다음에 마주치면 그때는 좀 나아져있기를 바라며 헤어졌다.


사실 호두가 다른 개들과 잘 지내기 바라는 마음은 정말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라기보다는, 산책할 때 좀 덜 긴장하고, 더 편안하게 했으면 좋겠기 때문이다. 나도 호두도 말이다. 산책 중의 호두는 어쩔 때는 지나가는 강아지를 힐끗 보고 말기도 하고, 어쩔 때는 갑자기 자리를 잡고 앉다가 다가오면 웍! 하며 놀래키듯 달려들기도 한다. 또 그러다 어쩔 때는 자기와 비슷한 덩치의 친구를 만나면 잔뜩 겁을 집어먹고 짖기까지 하기도. 차라리 반응이 한결같아서 종잡을 수 있으면 나도 대비를 할 텐데, 매번 반응이 다르니 1번의 베스트 케이스를 기대하며, 또 한편으로는 손에 잔뜩 힘을 주어 리드 줄을 잡고 상황을 지켜보게 된다. 어떻게 하는 게 우리의 산책을 위해, 호두의 기분을 위해, 같이 살아갈 날들을 위해 좋은 습관일까. 호두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다른 강아지들에 대한 경계나, 무서움을 누그러뜨려주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그러려면 친구들을 많이 만나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런 좋은 친구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다니 너무 아쉬웠다.


내성적인, 그리고 겁이 많은 우리 호두. 하지만 힘은 펄펄 넘치는 우리 강아지. 너를 어쩌면 좋을까, 너는 무엇을 원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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