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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데 그런 말을 하죠?

산책 중에 맞닥뜨린 맨스플레인

by 소녜

얼마 전 일이었다.


아침 산책을 하고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집, 호두는 몇 시간째 못 봤으니 오랜만이라는 듯 우렁차게 짖어댔다. 마당에 펼쳐놓은 캠핑의자에 앉아 호두랑 손장난 발장난을 하다가도, 호두는 아쉬운 듯 계속 대문 내려가는 계단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그래 가만히 앉아있기에 모기도 많고, 그럴 바에는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싶어 간단히 채비를 해서 나왔다.


우리 동네는 약간의 비탈길을 따라 집이 여기저기 나있다. 새로 짓고 있는 집도 많고, 새로 집을 지으려고 공터로 밀어버린 곳도 있다. 여기저기 풀도, 나무도, 흙도 많아서 동네 위아래로 두세 번 천천히 돌아다니고 오면 시간 대비 호두 만족도가 꽤 높은 편.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나와서 돌아다녔다.


그러다 골목 어귀에서 큰길로 나오는데, 갑자기 어느 컨테이너 박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아저씨가 쪼쪼쪼 거리며 호두를 불러댔다. (동네에 공사터가 많아 컨테이너가 여기저기 생겼다) 순간 기분도 나쁘고 경계심도 들었지만, 호두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너무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리드 줄을 부여잡고 아저씨를 쳐다봤는데, 심지어 담뱃불은 끌 생각도 없이 그대로 들고 호두에게 손을 뻗었다.


그 재가 눈에 들어갈까, 혹은 담배연기를 들이마실까 걱정되는 마음과 함께 기분이 한껏 불쾌해졌다. 아저씨는 윗집 사는 개 아니냐며 물었지만, 아니, 우리 집은 명백히 아랫집이다. 그래서 아닌데요,라고 대답하면서도 그냥 가야 할지, 우리 집은 여기서 너무 가까운데 친절하게(?), 혹은 퉁명스럽지 않게 대답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


아~ 나는 또 윗 집 개인 줄 알았지. 지난번에 봤다고 오늘도 알아볼 줄 알았지.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요 그 개랑?

그 개가 어느 개인지 내가 알게 뭐람. 우리 동네에 사는 레트리버만 몇 마린데. 심지어 그 주인분들은 만나본적도 없이 마당에 나와있는 아이들만 몇 번 봤을 뿐이다.


이런 개들은 이런 가슴 줄 말고 목줄을 해야 돼.

이게 그 아저씨의 이어진 말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웬만하면 무시하고 어찌어찌 넘기다가 지나가려고 했는데, 울컥, 화가 올라왔다.


아니에요. 목줄 하면 더 힘들어하고 오히려 더 땡겨요.


진짜다, 내가 직접 경험해봤다. 예전에 잘 모를 때 목줄에 리드 줄을 연결해 산책을 나갔었는데, 그 이후 이지 워크나 지금 쓰고 있는 러프웨어로 산책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나를 끌고 다녔었다. 물론 지금 산책에 더 익숙해졌기 때문도 있지만, 계속 목줄을 썼다면 이렇게 익숙해질 만큼 산책을 못했을지도 모를 상황이다. 제 목이 졸려 컥컥거리면서도 날 끌고 다녔으니까.


아니야, 이런 개들은 목줄을 해야 힘을 못 써.

또 한 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아저씨는 강아지를 한 번이나 키워봤을까? 그러던가 말던가 왜 남의 개에 참견이람.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르는 사람인 나에게 이런 식으로 훈계인 거지? 심지어 담배는 왜 계속 피우는 거야. 그 와중에 말로라도 이겨보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었다. 그래서 전문가 얘기를 인용하면 좀 나을까 싶어,


아닌데요. 저희 강아지 훈련소도 다녀와봤고요, 가슴 줄이 산책할 때 훨씬 좋아요.라고 대응했다.


그랬더니 다음에 나오는 말이 가관이다.


에이씨, 그 놈들 말 하나도 믿지 마. 내가 아는데 이런 애들은 목줄을 해야 해.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턱 막히더라. 전문가도 아닌 자신이, 아니 개에게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지조차 의심이 되는 그 사람이, 전문가를 믿지 말라고? 그럼 내가 당신은 왜 믿어야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멀뚱히 서있다가, 그냥 한숨 푹 내쉬고 호두를 이끌고 뒤를 돌았다. 애초부터 쪼쪼 거릴 때 무시하고 빨리 지나갔어야 했나, 괜한 자책도 밀려왔다. 내가 건장한 나이 많은 남자였으면, 애초부터 그 아저씨가 호두를 불렀을까? 아니면 거꾸로 그 아저씨의 무례함에 내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까? 그런 것과 상관없이라도, 이런 종류의 무례함에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맞는 걸까?


원래 내 욕을 하는 것보다 내 새끼 내 가족 욕 하는 게 더 화나 듯, 지금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대응했으면 됐겠다는 묘수는 떠오르지 않는다. 무시가 최선인 것 같으면서도, 그 사람이 이게 무례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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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무례하시네요, 라고 해야하나. 같이 무례를 범해야하나. 휴, 정말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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