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는 쫄보다

사회성에 대한 고찰, 우리 개는 개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by 소녜

호두는 사회성이 좋은 개는 아니다.


강아지들도 어렸을 적 사회화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더라. 골든타임은 생후 약 6개월까지. 어렸을 때 엄마랑 형제들이랑도 지내보고, 좀 더 크고 나서 사람들이나 다른 개들은 다양하게 만나면서 밝고 사교성 좋은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랑 거의 똑같다.


나도 그렇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거의 올해 초까지는 마당에서 놀아주는 게 대부분이었다. 나가면 우리를 질질 끌고 다니니까, 날이 추우니까, 각양각색의 핑계와 함께 마당에서 머물렀다. 마당에서 원반던지기나 달리기나 눈이 오면 눈싸움을 하거나 눈사람을 만드는 우리 주변에서 놀게 두거나 등등. 다른 동물을 만나는 것은 손에 꼽는 일이었다. 간혹 가다가 찾아오는 새들이나 길고양이. 아니면 정말 가끔 밑에 산보 내려오시는 할아버지 리트리버(윗집 어드메에서 키우는 아이인데, 알아서 산책 나갔다 들어온다고 하더라)를 담 넘어 아련한 눈길을 보내는 정도가 최선이랄까.

올해 여름, 또 간만에 찾아오신 할아버지 리트리버. 안쪽에 있는게 우리 호두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산책 횟수가 많아지면서, 사람들이나 개들을 만날 일이 많아졌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호두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그래도 굳이 경험을 분류해보자면 다음 몇 가지 정도 되겠다.


1. 눈눈이이 (대부분 이렇다)

갑자기 달려드는 꼬마나, 강아지들이 있다. 뭔가 자연스럽게 걸어오기보다는 호두를 표적(?)으로 삼고 속도를 붙여 다가오는 아이들. 그러면 호두도 경계하며 몸을 일으키거나 해당 방향으로 몸을 튼다. 아무래도 사이즈가 커서 그 단순한 몸집도 위협적인지, 먼저 다가오던 아이들은 휙 도망간다. 나도 혹여나 호두가 튀어나가지는 않도록 꼭 붙들고 있는다. 그 아이들이나 강아지들의 보호자 대부분은 "어우 무서워", "가지 마 너 물려"와 같은 말로 아이들을 달래가며 데려간다. 호두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어쩔 수 없다 싶으면서도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까, 혹은 그저 호두가 그런 소리를 들었다는 것만으로 괜스레 서운해진다.


가끔 그런 와중에 감사한 분들도 있다. 어떤 꼬마 여자아이가 호두를 발견하고는 우다다 달려오다 앉아있던 호두가 벌떡 일어나자 꺅하고 도망쳤다. 그 어머니 반응은 아주 쿨하고 멋있었다.

야, 쟤가 너 때문에 더 놀래겠다.


2. 작업의 정석(아주 환영합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다가오는 강아지들도 있다. 예를 들면 산책길까지 가는 중에 두어 번 만났던 도토리묵집 푸들. 가끔 목줄도 없이 풀어져있는 그 아이를 만날 때가 있는데, 집 주변에서 신나게 냄새 맡고 놀다가 호두를 발견하면 쪼르르 다가온다. 호두가 쳐다보건 말건 다가와서 냄새를 맡고, 호두가 자기 냄새를 맡게 둔다. 어지간히 통성명했겠거니, 내가 나지막이 호두를 불러 다시 가던 길 가려하면 또 그새 따라온다. 툭 치고 도망가면서 놀자고 꼬셔댄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주인분들은 "강주리~ (아마 주인 분 성씨가 강씨이고, 강아지 이름이 주리인가 보다) 이제 들어가자~"하고 불러들인다. 그제야 헤어지면, 호두도 큰 미련 없이 하지만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다시 걷는다. 이렇게 사교성 좋은 아이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호두도 배워서 흥분 조절 잘 하고 잘 어울리는 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괜히 내가 다 설레게 하는 선수같으니라고.


3. 조심스럽게 다가와주세요


지지난 주말이었던가, 지지지난 주말이었던가. 일요일 아침, 간만에 나름 일찍 일어나 오전 산책을 시켰다. 으레 꼬맹이들을 만나면 큰 강아지를 신기해하며 멀찍이서(하지만 너무나도 잘 들리는 목소리로) 엄마 아빠한테 자랑하듯 이야기하기도 하고, 다가오려고 하기도 한다. 그날도 그런 꼬마라고 생각한 한 남자아이를 만났다. 처음 마주쳤을 때는 나지막이 탄식 정도 내뱉더니,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주변에 서서 머뭇머뭇 구경을 했다. 호두도 그 아이가 그새 익숙해졌는지 별로 신경을 안 썼고, 와서 인사해볼래, 라는 말로 아이를 불렀지만 고개만 절레절레 지을 뿐이었다. 그러다 그 친구가 궁금해졌는지 호두가 다가가서 킥보드 앞바퀴 냄새를 킁킁 맡았다. 콧물(?)이 앞바퀴를 다시 검게 적셨다.

images.jpeg 부러워서 그런건 아니지?

그 후로 까르르 웃으면서 신이 났는지 우리를 계속 따라오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산책 중이었던 것 같은데, 우리가 좀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가면 초조한 목소리로 엄마를 재촉하며 킥보드로 따라왔다. 집은 저 윈데 거의 우리 집까지 쫓아오려고 해서 어머니가 다급히 아버지 호출. 내가 작별을 고해야 정말 돌아갈 것 같아서 다음에 또 산책길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호두 잠깐 앉혀 쓰담 쓰담해주게 하고 보냈다. 으이그 귀여운 녀석. 이렇게 조심조심 조금만 시간을 들여 서로 자연스럽게 낯을 틀 수 있다면 호두도 상대방도 스트레스나 트라우마 없이 친해질 수 있을 텐데. 흥분 잘하는 호두도 아쉽고, 큰 개라서 겁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아쉽다.


여러가지 유형의 만남들을 통해 결론내리자면, 호두는 매우 쫄보다. 작은 개들이 쪼르르 오면 같이 관심을 표하다가, 또 그 아이들이 돌변해서 짖거나하면 금세 뒤로 숨는다. 빠짝 긴장해서 냄새 맡고 영역 표시하고 달려 나가고 장난도 아니다. 자기보다 큰 애를 만나면 굳어버리고 티가 나게 경계한다. 가끔은 호두도 개 파크(?)도 데려가고 친구도 만들어주고 싶은데 될런지, 호두를 위해 좋은 것은 맞을지 고민이 앞선다. 이런 개도 있다는 걸 사람들이 그리고 강아지들이 이해해주고, 본인이 선수가 아니라면 조금 더 조심히 다가와주면 좋을 텐데.

물론 나도 호두가 그런 상황에서 스트레스 덜 받도록 많이 데리고 나가고 안심을 줘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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