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새끼 함부로 건들지 마세요, 개가 안 물면 제가 물어요
이번주 목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저녁 아홉시쯤, 호두를 데리고 산책을 나왔다. 우리 집에서 천변 산책길까지는 걸어서 15분~20분 정도 소요되는데, 익숙한 길이기도 하고 주변에 자극을 줄만한게 많지않아 얌전히 잘 걸어갔다. 가던 길에 길가에 서있는 분들(=산책길까지 가는 길에 있는 고깃집 주인분들이신듯한데, 가끔 푸들을 데리고 나와서 놀고 있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이 얘기는 나중에)에게 익숙한 강아지의 향기가 났는지 슉 다가가 냄새를 킁킁맡아 죄송하다고 한 정도? 다행히 그분들도 큰 개에 익숙하기도 하고, 겁도 내지 않으셔서 괜찮아요 허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산책이 되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10분도 채 가지 않았다. 산책로에 진입하고 슬슬 걸어가는데, 한 커플이 나타났다. 우와 너무 귀엽다~ 하는 추임새와 함께 손을 흔들며 걸어왔다. 뭐지, 하고 고개를 드는데
만져봐도 돼요?
라는 말과 동시에 호두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내가 대답도 안했는데, 호두한테는 냄새 맡을, 경계를 풀 시간도 주지 않은채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귀엽다는 비명과 함께. 어버버하면서도 혹시 호두가 흥분해서 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어 일단 호두를 앉혔다. 침이 많이 묻을걸요, 하면서 그만 만지게 하려고 했는데, 눈치도 없이 어머 괜찮아요 호호호 하면서 만족스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멀어졌다.
나도 호두도 놀랐다. 당황스러웠고, 정신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 새애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호두는 으다다 풀밭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아뿔싸, 맞은편에는 또 말티즈 한 마리가 오고 있었다. 목줄은 하고 있었지만 늘어나는 목줄이었고, 심지어 그게 늘어날대로 다 늘어났는데도 그걸 잡고 있는 아저씨는 끌려오고 있었다. 아니, 자기 강아지를 컨트롤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 말티즈는 사나웠고, 으르르 거렸고, 호두를 향해 다가왔다. 이번에도 나는 혹시나 물면 안되니까, 호두를 진정시키려고 했고, 같이 자세를 낮춰 계속 쓰다듬어줬다.
계속 다가온 말티즈는 호두와 서로 코끝이 닿을정도로 가까워졌다. 으르르 소리는 여전했고, 걱정이 되는 찰나에 왕! 하는 소리와 함께 호두 코끝을 깨물었다. 호두는 깜짝 놀라서 내 뒤로 뒷걸음질쳤고, 아저씨는
야, 너가 져
라는 말과 함께 말티즈를 끌고 갔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그 다음부터 평화란 없었다.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호두는 나를 이리저리 끌고다니며 뛰고 당기고 영역표시하고를 반복했고, 호두를 제때 지켜주지 못한것 같아 나도 죄책감과 짜증에 뒤덮였다. 넓은 공터에 도착해서 예쁘다 쓰다듬기도 많이 해주고, 풀 냄새도 많이 맡게 해주고, 뛰어다니다 간식도 많이 주니 조금 가라 앉았지만, 그래도 그 미안함과 예의없던 사람들에 대한 짜증은 아직도 가득하다.
애견인구 천만시대 도래와 함께,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펫티켓'이다. 산책할때는 목줄을 매고, 배변봉투를 챙겨서 자기 강아지 자기가 잘 챙겨달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전반적인 에티켓을 지키고자 했으면 좋겠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과 살결만 닿아도 불쾌해질지 모르는데, 와서 쓰다듬고 무섭게 굴면 어떻겠는가. 또 아무리 작은 아이라도, 갑자기 와서 욕하고 때리면 얼마나 짜증나겠는가. 강아지가 뭘 안다고, 라고 방치하지 말고. 혹은 강아지는 사람 좋아하니까, 라고 함부로 다가오지 말자. 강아지들도 나름의 comfort zone이 있다.
(참고로, 세상에 나쁜개는 없다 영상을 첨부한다.
큰 개도 겁이 많을 수 있는게 이해가 안되는 분은 참고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