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서로 조금씩 더 노력해봐요
이직을 하고 나서, 그리고 특히나 여름이 짙어져 가면서 산책 나가는 시간이 일정해졌다.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는 회사에 다니게 되면서, 저녁 일정을 내 마음대로 조정해지기 쉬워졌다. 그러면서도 날이 너무 더우니 산책을 나갈 수 없는 시간이 정해져 버렸다. 이전에는 아침 일찍이라면 선선한 바람을 쐬며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이제는 해가 떠 있는 시간이라면 정말 이제 동이 막 트는 새벽이 아니고서야 아스팔트 바닥이 항상 뜨거운 계절이다. 호두 신발을 사주고 어느 시간에나 나갈 수 있도록 해볼까, 싶다가도, 나도 이렇게 숨이 턱 막히는 더위에 저 털가죽을 둘러메고 있는 호두는 얼마나 답답하겠냐 싶어 (+ 신발이 잘 벗겨지고 잘 없어진다는 후기에) 낮 산책은 꿈도 못 꾸고 있다.
그러다 보니, 평일 저녁에는 비슷한 시간대에 산책을 다니게 됐다. 해는 떨어진 지 좀 지나 땅은 좀 식었지만, 또 한 시간 반 정도 걷다와도 너무 늦지 않을, 그러니까 잠 시간을 놓치지 않을만한 시간대에 나가고 있다. 그런데 나랑 비슷한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더 있는지, 이제는 얼굴이 익어 인사도 주고받는 이웃(?)분을 알게 되었다.
그분들과의 첫 만남은 아주 젠틀했다. 뭔가 피곤하지만 그래도 나와서 거의 정신을 놓고 걷던 날인데, 그 날 따라 호두도 꽤나 얌전해서 고마워하고 있었다. 우리가 반환점으로 삼는 다리 즈음, 한 젊은 부부가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나와 같은 속도로 걷더니, 인사를 건네셨다. 안녕하세요, 얘는 이름이 뭔가요, 나이가 뭔가요, 너무 예쁘네요 와 같이 지극히 평범하고도 자연스러운 이야기. 맥락 없이 쪼쪼쪼 혀 차는 소리로 호두 관심만 끌려는 사람만 겪다가, 이런 정상적인 접근(?)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아주 반가웠다. 나중에는 만져봐도 되나요, 하는 물음에 천천히 냄새부터 맡게 해주세요,라고 했고. 손을 내밀자 호두는 킁킁 냄새를 맡더니 발라당 뒤집어 애교를 부렸다.
그 이후에도 그분들을 종종 마주치고 있다. 처음 다시 만났을 때에는 쭈뼛쭈뼛 오시더니 얘 호두 아닌가요?라고 물어보며 인사를 건네셨고, 그 이후에는 먼저 알아보고 호두야! 하고 다가오기 까지.
물론 예쁜 내 새끼, 다른 분들도 예뻐해 주신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요새 “어디 큰 개를 끌고 나와” 라던지, “왜 입마개를 안 하고 다녀” 와 같은 혼잣말을 다 들리게 하시는 분들을 몇 번 마주쳐서, 근처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경계하고 호두도 조심하도록 단속(?)하며 다니고 있기 때문에 특히나 더.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 더 조심스레 다가와 주시면 좋을 텐데, 그리고 나도 그런 요구를 더 제 때 잘해야 할 텐데, 하고 후회, 그리고 반성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상황이다. 호두는 일단 성격상 매우 겁이 많다. 하지만 사람은 또 좋아한다. 한 번은 그 부부의 남편 분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 호두야 하고 반가운 목소리와 함께 손을 쑥 내밀었더니 호두가 냄새도 맡지 않고 벌러덩 누웠다. 나도 그때까지는 호두가 그 사람을 기억하고 반가워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그분이 호두를 만지려고 하니 풀쩍 뛰어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더니, 내 뒤에 숨어버렸다. 그분은 이내 아쉬워했다. 그러던 중 아내분이 가만히 서서 호두야, 하고 부르니 또 거기는 사르르 다가가서 냄새를 맡고 부비적 거렸다. 아마 갑자기 자기를 만지려고 하는 게 겁이 났을 테지. 그랬더니 그분은 속상한지 이리와 봐- 하면서 목덜미를 잡아당기려고 하셨다.
헉. 잡아당기지 마세요
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에서 맴돌았다. 다행히 호두가 다시 훅 도망가서 실제로 멱살을 제대로 잡히지는 않았지만, 바로 그 말을 하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소중한 내 새끼인데, 강아지를 다른 사람의 자식으로 대하든 혹은 심지어 물건으로 대한다 하더라도, 그렇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원망스러운 마음과 함께 나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다음부터는 절대 바로 얘기해야지, 몇 번을 다짐했다.
그러고 헤어지기 전에 간단히 나누는 수다에서, 어디서 분양받았냐고 물어보셨다. 사실 나는 호두가 어떤 환경에서 있다가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처음에는 경황이 없었고, 지금은 그게 뭐가 중요하니, 우리 집에 왔고 이 상황에서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주는 게 중요하지, 가 되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아기 강아지를 분양받아 오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어렴풋이 추측하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파양- 심지어 돈을 받고 팔려고 한 아이를 우리 집에 데려오게 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한꺼번에 하다가, 갑자기 오게 되어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하지만 또 후회. 만약 이 사람이 강아지를 좋아하는 마음이 아주 크고, 언젠가 반려견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분양받지 말라고. 제발 입양해달라고, 한 마디 더 붙였어야 한 것이 아닌가. 후회가 되었다.
바로 얼마전의 산책에서도 사실 그분들을 만났다. 잔모래가 많은 곳에서 호두를 반갑게 부르신 터에 호두가 또 바로 그 모래바닥에서 굴러버렸다 (ㅠㅠ... 이제는 거의 반사적으로 누군가가 본인을 예뻐하면 눕고 보는 호두.) 그전에 사실 앗 여기 모래가 너무 많아서요...!라고 얘기하고 있었지만 그분들은 그럴 것을 예상 못해서인지, 그냥 반가운 마음만 앞서서인지, 반가운 목소리를 한 껏 내셨고, 결국... 호두는 먼지 범벅 털이 되었다. 그러고 나서도 지난번과 비슷하게 손을 뻗었지만, 어제도 역시 호두는 펄쩍 도망갔다. 그래도 어제는, 호두가 겁이 많아서, 먼저 냄새를 맡게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알려드리니 그제야 손바닥이 아닌 손등을 내미시면서 냄새를 맡게 기다려주셨다. 호두는 이미 겁을 먹어 그분들을 모른 척 하기 시작하였지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계속 고민이 된다. 한편으로는 아무도 우리를 자극하지 않았으면, 그냥 모르는 사람이 옆에 지나가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 주셨으면, 호두를 자극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결국 나중에, 사람들이 보다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형태의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진다면, 반려견들에 대해 우호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을 때 그게 쉽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면 길에서 만난 강아지들을 대할 때, 반가워해주더라도 어떤 식으로 반응해주는 것이 더 좋을지 알려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계속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걸 알려주는 게 꼭 호두를 통해서여야 하는지, 호두가 스트레스받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어 이도 저도 못하다가 아무런 반응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도 강아지들이 어떤 환경을 가장 편해하는지 다 알지는 못한다. 강아지들마다 성격도 다를 테고, 주인들의 반응에 따라 또 강아지들의 반응도 달라질 거다. 그래도 어느 정도 범위의 행동이 강아지들이 위협받았다고 느끼지 않을 수준일지는 나도 열심히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걸 알아주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면 좋겠다.
견주는 강아지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만큼 큰 책임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는 지나가다 강아지를 예뻐해 주시는 분들은 그 강아지들이 어떻게 흥분하더라도, 어머머 하며 지나가면 끝일지 모른다. 하지만 예뻐서 다가와주신 만큼, 그 이후 견주가 다시 그 아이의 흥분을 가라앉혀야 하는 노력, 평소에 너무 흥분하지 않도록 훈련해야 하는 그 시간을 한 번 더 생각해주시면, 더 즐거운 동반 산책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