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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Sep 27. 2018

동물원이 동물원다울 수 있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벌써 일주일 전,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퓨마 한 마리가 탈출했다.

탈출이라는 말을 쓰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문이 열려있었고, 열려있었기에 나온 것이니까.


처음에 탈출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까지는 왠지 모를 기대가 있었다. 다행히 아무런 피해도 없이 무사히 집에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금방 들려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달리, 첫 소식을 접한 지 하루 만에 사살되었다는 뉴스로 돌아왔다. 


전국의 동물원. 실내 체험 동물원은 그마저도 빠져있다.

우리나라에는 28개의 동물원이 있다. 렛츠런 파크 (구 경마공원)을 포함한 숫자이긴 한데, 우리나라 사이즈 대비 적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실내 동물원까지 포함하면 더 많아진다. 아마 이렇게 많은 동물원이 만들어지게 된 데에는 동물원에서 충족할 수 있는 "동물 교육"에 대한 기회를 지역에 상관없이 균등하게 부여해야 한다는 명목적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동물원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는 인간들에게 평소에 보지 못하는 동물들을 보여주고, 유희 혹은 오락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 오락시설이다. 거기에 일반 사람들이 직접 관찰을 통해 동물에 대해 체험하고 배울 수 있다는 교육적 목적이 더해진다. 이것이 동물원이 처음 생겨났을 때의 이유였을 것이다. 

우리도 한 때는 비슷한 목적으로 전시된 적 있다


두 번째는 자연 그대로 남겨두었을 때 멸종할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보호 차원에서의 역할이 있다.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혹은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해 더 이상 자연적으로는 번식이 불가능하거나, 생존이 불가능한 동물들이 분명히 있다. 이런 개체들을 모아 번식을 도와주고, 생존을 도와준다면 지구 상 생명의 다양성을 보존한다거나, 혹은 진화에 대한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동물원의 역할은 무엇일까? 단연코 두 번째다. 동물원에 가지 않으면 동물에 대해 알기 어렵다는 건 이제 사실이 아니다. 매년 전 세계에서 동물에 대한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온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지구의 눈물 시리즈를 통해서 북극, 남극,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동물원 철창 안의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물들이 아닌, 자연 상태에서의 진짜 모습도 알 수 있었다. 화면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건, 그래서 꼭 내 눈앞에서 (동물원에서) 봐야겠다는 건 일종의 기만이다. 인간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동물들을 억압하고 유희 거리로 즐기겠다는 무책임한 생각의 발현일 뿐이다. 그것이 의식 위에 있든, 아래에 있든. 

남극의 눈물의 한 장면. 동물원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


두 번째 목적의 동물원을 위해서라면 인간이 아닌 동물을 위한 동물원의 기준을 고민해야 한다.  멸종 위기의 동물들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생존 그 자체뿐만 아닌, 신체 정신적인 건강도 신경 써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대부분의 동물원들은 좁은 철창에, 수동적인 급식 방식, 그리고 관람객들로 인해 동물들에게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준다. 그래서 많은 동물들이 제자리에서 빙빙 돈다거나 하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동물원이 꼭 이런 형태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프랑스의 벵센 동물원은 동물들에게 최대한 서식지와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고, 관람객들을 최대한 눈에 띄지 않도록 떨어뜨려놓았다. 국내에서 똑같이 만들자고 하면 이 좁은 나라에 땅이 어디 있으며, 비용은 어디서 댈 것이냐는 비난의 말이 난무하겠지만, 그게 관람객으로써, 동물원을 운영하는 책임자로서, 그리고 그 허가를 내어주는 기관 혹은 국가로써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얻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치르는 것도 필요하다. 굳이 많은 동물원을 가까이, 적은 비용으로 유지하는 것보다 제대로 잘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호롱이의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무고한 동물의 죽음으로, 누군가에게는 인간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최선의 선택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사육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동물원의 책임이자 제대로 관리할 역량이 없는 데도 허가를 내준 / 관리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국가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생명을 보전하고 증식, 그리고 그를 전시함으로써 사업을 운영하는 동물원은 그 안의 동물들을 적절하게 관리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국가는 동물원이 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인력을 적절히 갖추었는지, 교육은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감시할 의무가 있다. 


나는, 원래 동물원이나 강아지 카페, 고양이 카페를 매우 좋아했었다. 강아지를 키우기 전이었고, 동물이 좋지만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일이 없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개인으로서 내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호롱이의 죽음을 접하게 됐고, 이런저런 글을 찾아보다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의 저자인 최혁준 씨의 인터뷰 글을 보게 되었다. 그중에서 결국 관람객이 피드백을 주지 않은 채 외면하게 되면 동물원은 나아지지 않고, 동물들은 더 안 좋은 삶을 살게 된다는 말은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라도, 내 글 하나가, 피드백 하나가 되어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많은 개인들의 피드백으로 더 나은 동물원이 될 수 있게, 동물원이 동물을 위한 동물원다운 동물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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