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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Feb 09. 2020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건 아니지만 살도 빠지면 좋겠어

스무 번째 한 글자 주제, 살

1. 꽤나 통통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꽤나 통통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다시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졸업앨범들. 여전히 그 사진들을 나는 제대로 마주 보지 못한다.


당시 나는 여름이 싫었다. 여름 교복, 그것도 상의가 아주 끔찍했기 때문이다. 통풍도 잘 되지 않는데 살이 오른 내 팔은 팔통을 가득 채웠다. 몸통은 좁고 짧았다. 안에 티셔츠를 입든, 메리야스를 입든 계속 옆구리 살이 삐져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 시절 여름의 내 포즈는 항상 약간 낮게 팔짱을 낀 자세였다. 배를 가리기 위함이었다.

엄마는 어렸을 때 내가 너무 말라서 걱정이었댔다. 신생아 시절에는 200미리짜리 우유를 20미리만 마시고는 퉤, 뱉어버렸다고 했다. 살이 찐 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한약을 먹은 이후부터였다. 식성이 달라지고 체질이 바뀌었다. 통통하게 살은 올랐지만 그때는 괜찮았다. 아직 어리니까, 더 크면 다 키로 간다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5학년 여름엔가, 방학을 끼고 두세 달간 캐다나에 다녀왔다. 캐나다의 모든 음식은 사이즈가 크고 치즈가 많았다. 그곳에서 난생처음으로 빵에 마가린도 발라먹었다. 자주 먹지는 않았지만 간식으로 아주 짠 감자칩이나 아주 단 도넛을 먹었다. 아이스크림에는 시럽과 과자가 많이 박혀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공항에서 날 마주한 건 엄마의 놀란 표정이었다. 그 짧은 몇 달 동안 나는 10센티가 자라고 8킬로가 쪄있었다. 엄마는 나를 못 알아볼 뻔했다고 했다. 그때도 나는 그저 내가 많이 커졌다고만 생각했다. 뚱뚱하다는 자각이 생기기 전이었다.

뚱뚱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건 아빠가 엄마에게 화내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였다. 식탁에 고기반찬이 올라오면 아빠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애 살찌게 고기를 올리면 어쩌냐는 거였다. 헬스장을 끊어주면서 내가 잘 가지 않으면 엄마한테 또 역정을 냈다. 저러다 쟤 큰일 나면 어쩌냐며 소리치는 소리가 벽을 뚫고 내 방까지 들려왔다. 그 큰일이 무엇인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무서웠다. 그리고 엄마가 그 싫은 소리를 듣고 있는 것도 속상했다. 내가 살이 쪘다는 건 내 잘못도 아니었지만 엄마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때부터 나는 살쪄서 못생겨진 내 모습에 죄책감을 갖기 시작했다.



2. 죄책감은 재미가 없었다



그 이후로부터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었다. 다이어트 한약도 먹어보고, 매끼 샐러드만 먹어보기도 했다. (드레싱엔 지방분해 효과를 위해 청양고추도 갈아 넣었다!) 밥을 먹을 땐 종지 그릇에 덜어먹었다. 헬스장을 다녀보기도 하고, 엄마 따라 문화센터에서 아침 요가도 해봤다. 살은 시기에 따라 빠지기도, 다시 찌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상태이든 내가 바라보는 내 모습은 뚱뚱할 뿐이었다. ‘모태 마름’인 친구들을 동경했고, 어렸을 때 한약을 먹여 내 체질을 바꿔놓은 엄마를 원망했다. 하지만 가장 원망스러운 건 내 몸 그 자체였다. 무엇을 입어도 답답한 느낌이 들었고 넓은 옷을 입으면 뚱뚱해 보일 뿐만 아니라 그 남은 여백까지 내 살로 꽉 차 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에 몸을 한껏 웅크리고 다녔다.

대학 가면 다 살 빠진다는 말은 당연히 거짓이었다. 술과 함께 시작한 안주의 세계는 기름지고 자극적이었다. 해장의 세계는 또 얼마나 짜고 뜨거웠는지. 두 세계는 언제나 신나고 짜릿했다. 하지만 두 세계를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 마음으로 하는 다이어트는 재미가 없었다. 전날 즐긴 신난 마음을 후회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억지로 며칠 밥을 줄이고 억지로 며칠 몸을 더 움직여봤지만 당장 보이지 않는 성과에 죄책감만 더해질 뿐이었다. 죄책감은 정말이지 모든 걸 재미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3. 몸 쓰는 재미를 알게 됐다


그러다 호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됐다. 어릴 적 캐나다에서 돌아온 이후의 악몽을 되풀이할 수는 없기에, 몸을 더 많이 움직이기로 했다. 남는 게 시간인 교환학생 생활이기도 해서, 온갖 곳을 걸어 다녔다. 40분을 걸어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고, 한 시간 반을 걸어서 오페라하우스를 보러 갔다. 지치면 잠깐 공원에 누워 낮잠을 잤다. 같은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 공원에는 야외 수영장이 있었다. 20회권을 끊어다가 주말이면 친한 언니들과 자유수영을 다녔다. 한국에서는 그렇게도 입기 싫던 수영복이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비키니를 입고 내 속도대로 물속을 돌아다니자면 아주 자유로워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홈트도 시작했다. 스트레칭 위주긴 했지만, 간신히 발가락에 손 끝만 가져다 대던 내가 발바닥에 손바닥을 가져다 댈 수 있게 됐다.

집 앞 빅토리아 공원의 수영장. 사진출처 thingdoer.


한국에 돌아와, 취업 준비를 시작할 즈음에는 복싱 도장에 등록했다. 이시영의 복싱 이야기가 핫해졌기 때문도, 다이어트 효과가 좋다고들 해서도 있지만, 주 목적은 스트레스 풀이었다. 나를 잘 꾸며 말할 수 있는 삼백자 내지 칠백자를 적고 있노라면 이게 말이 되는 건지 혼미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도장에 가서 십여분 줄넘기를 하고, 이십여 분간 샌드백을 치다 보면 머릿속은 하나둘하나둘 박자로만 가득 찼다. (그러지 않으면 곧잘 스텝이 꼬여버리기 때문에 다른 생각할 도리가 없었다) 말끔히 비어낸 머리로 다시 자소서를 읽으며 고쳐나갔다.

본격적으로 운동에 재미를 붙인 건 취업하고 나서부터였다.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비싼 운동 하러 간다며 핑계라도 대고 빨리 퇴근하는 날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에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나와 합이 잘 맞는 사람이었다. 더 할 수 있다는 독려와 엄살 피우지 말라는 말로 내게 오기를 심어줬다. 그러면서도 왜 내가 이 동작이 어려운지, 왜 이 운동을 해야하는지 설명해줬다. 관절과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알게 되자 몸의 가동범위를 더 넓히고 싶어졌다. 이왕 가지고 태어난 몸뚱이, 더 잘 써먹고 싶어 졌달까. 이후 웨이트 트레이닝과 요가와 수영으로 종목을 옮겨다니기도 했지만, 몸을 써서 특정 부위가 느껴지는 경험 자체가 재밌어졌다.



4.(이제)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건 아니지만 살도 빠지면 좋겠어



시간이 흐르면서 살은 빠졌다. 솔직히 밝히자면 운동 때문만은 아니었다. 전 직장이 스트레스와 함께 내게 만성 위염을 가져다줬기 때문이었다. 스트레스받으면 항상 먹는 걸로 풀던 나였는데, 스트레스받아 입맛이 없어지는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식욕이 줄고, 식사량이 줄어들어 살이 빠졌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줄어든 이후에도 어느 정도 몸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운동 덕분이었다. 죄책감이 아닌 재미로 한 운동이라 꾸준히 할 수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 몸에 대한 죄책감도 자연스레 줄었다. 여전히 마르고 탄탄한 몸을 동경하는 마음이 없지 않지만, 모양만 예쁜 몸보다는 강한 힘을 낼 수 있는 몸이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랫동안 담아둔 이상적인 몸의 모양새는 쉽사리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요가 자세가 좋아지고 몸이 더 많이 열려 뿌듯한 마음 사이에서도 몸의 모양새가 달라지지 않으면 곧잘 시무룩한 마음이 삐져나온다. 운동할 때만은 그런 마음에서 벗어났다가도, 주변에서 운동하고 있는 사람의 뚜렷한 등근육을 발견하면 저지방 고단백 몸을 동경하고야 마는 것이다.

결국 솔직한 내 마음은 이렇다. 이제는, 이제야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건 아닌 마음을 갖게 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살은 빠지면 좋겠다고. 선명하게 근육이 드러나는 멋진 저지방 몸을 갖고 싶다고. 하지만 또 억지로 다이어트를 위한 다이어트는 하고 싶지 않다고. 참, 끊임없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언제 서야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도 무엇을 위해서든지 일단 내일은 요가에 가야지.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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