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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Mar 08. 2020

꽃은 달뜬 마음을 싣고

스물두 번째 한 글자 주제, 꽃

뭐 택배 온 거 없어?


생일이었던 1월의 어느 월요일, 점심시간이 다가올 즈음 애인에게 연락이 왔다. 뭐 택배 같은 거 안 왔냐고. 뭐 보냈냐고 물어보니 보냈다고, 도착했다고 연락 왔는데 왜 안 왔냐며 얼른 찾아보라며 재촉을 했다. 하지만 회사로 온 택배를 쌓아둔 무더기에서도 내 이름을 발견할 수 없었다. 애인은 한참을 갸웃거리면서 조급해했고, 나는 그저 기다려보자 할 뿐이었다.

점심을 먹던 중 전화가 왔다.


“꽃 배달입니다, 1층 로비인데 내려오시겠어요?”


웃음이 팍 터졌다.

생일선물을 회사로 보내주었나 했더니 꽃이라니. 예상치 못한 서프라이즈에 광대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내려가 받은 상자는 또 날 놀라게 했다. 꽤나 묵직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는데 괜히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며 커다란 하얀색 박스를 이고 올라왔다. 눈치를 보면서도 휴 점심시간 아닐 때, 사람들 많을 때 이게 왔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부끄러우면서도 자랑하고 싶은 이 마음은 무엇인지.

조심히 박스를 열어보니 커다란 장미 꽃다발과 마카롱, 그리고 화병이 들어있었다. 화병에 꽃을 옮겨 담고, 점심시간이 끝나고 돌아온 팀원들에게 마카롱을 나눠주며 생색을 냈다. 내 생일이라고. 애인이 보내줬다고. 꽃도 같이 왔다고.


팀원들은 내 기대대로 꽃과 내 애인의 로맨틱함을 칭송했다. 누구는 책상에 두지 말고 선반에 올려두고 같이 좀 보자는 너스레까지 떨었다. 나는 얼마나 자랑해도 좋을지 감이 안 와서 약간은 민망해하면서도 뿌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일 하다가도 문득문득 고개를 들어 꽃을 바라봤다. 그저 무던하기만 하던 일상에 기분 좋은 설렘이 더해왔다.




한때는 꽃만큼 쓸데없는 선물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엔 시들고 결국엔 버려야 하는, 마음 아픈 선물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저렴하지 않은 가격도 꽤나 큰 마음의 장벽이었다. 간직할 수도 사용할 수도 없는 비싼 선물이라니, 그야말로 가성비 나쁜 선물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꽃이 좋아졌다. 꽃 자체보다도 꽃을 선물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 설렜다. 줄 때도 받을 때도 모든 순간에 함께하는 달뜬 기분과 약간의 즉흥성과 치밀한 계획이 무척이나 다정하게 느껴져서일까.


약속시간이 언제니까 이때는 나와야지, 그리고 어느 꽃집에 들러야지 계획하는 마음. 픽업을 하는 데는 이 정도 시간이 걸리겠지, 좋아해 주면 좋을 텐데, 하며 들뜨는 마음이 다정하다.


혹은 아끼는 이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우연히 꽃집을 만난다. 그의 얼굴을 떠올리고 즉흥적으로 한 다발을 고른다. 조심조심 숨겨갔다가 놀라게 해 줘야지. 기뻐하면 좋겠다. 히히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런 마음을 겪어봐서일까, 혹은 그런 마음으로 내게 꽃을 가져다준 이들 덕분일까.


어쩌면 무용하면서도 보고 있는 것만으로, 향을 맡는 것만으로 은은한 행복을 주는, 그래서 유용한 것이 꽃 말고 무엇이 더 있을까 싶어 졌다. 그리고 그 마음에 꽃이, 그리고 꽃을 선물하는 것이 너무나도 좋아졌다.




생일날 배달 온 장미는 일주일 정도 내 자리 근처 선반을 채우다 치워졌다. 처음부터 말려둘걸 그랬나 아쉬웠다. 화병을 씻어다가 덩그러니 두었다. 몇 주를 그렇게 두니 마음이 허전했다.


조화라도 사다 꽂아둘까 고민하던 차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꽃 배달이 왔단다. 아무 날도 아닌데 대체 누가, 혹시 잘못된 전화번호로 걸려온 것은 아닐지 싶었지만 정확히 우리 회사 건물 1층이란다. 받으러 내려가는 길에 의아한 마음으로 애인에게 연락을 했다.


꽃 보냈어?
응, 화병이 비었다길래.


그렇게 또다시, 회사에 봄이 배달 왔다.

이번엔 예쁜 몇송이를 골라 말려두었다. 오래오래 간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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