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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Mar 22. 2020

동물 친구들이 마냥 행복만 하길

스물세 번째 한 글자 주제, 개

1. 나만 없어 고양이, 나만 없어 강아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그리고 유튜브까지 모든 sns에서 단연 상위 랭킹을 차지하는 분야 중 하나는 반려동물이다. 강아지, 고양이부터 앵무새 고슴도치 등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힐링을 받는다. 귀여운 모양새, 애교를 부리는 모습, 혹은 주인이 친 장난에 화를 내는 모습까지 귀엽다며 아우성이다. 그러고는 금세 울상이 되어버린다. 왜 나만 반려동물 없냐며, 저런 애정을 주는, 귀여움을 보여주는 존재가 내 곁에도 있으면 좋겠는데 왜 없냐며, 하소연을 한다.

나도 꽤나 자주 우리 집 강아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어떤 각도에서 봐도 예쁜 내 새끼이니, 남들도 이 예쁨을 알아주고 같이 호들갑 떨어주면 좋겠다. 이게 바로 덕질이라는 걸까. 그러면서 가끔은 남들이 해주는 말에 도취된다. 너무 예쁘다, 너무 귀엽다, 왜 나는 강아지 없냐, 나도 보고 싶다. 때로는 황홀하며 때로는 흐뭇하다. 내가 행복해하는 것이면서, 괜스레 나의 반려견도 즐거워할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대신 더 잘해줘야겠다, 그리고 잘해 주는 내 모습도 즐거워하는 강아지 모습도 더 자랑해야지 라고 마음먹는다.

다른 이의 반려동물의 귀여움에 반한 일부는 하소연에서 멈추지 않고 본인의 결핍을 채우고자 실천으로 옮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가장 쉽게는 펫 샵에서, 혹자는 부모의 혈통이 중요하다며 전문 브리더에게 아기 강아지 아기 고양이를 “구매”해 온다. 너무나도 앙증맞아서, 한 손에 쏙 들어올 것만 같은 한두 달 된 아기 동물들은 또다시 인스타그램과 틱톡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전시된다. 그들은 나와 같은 찬사를 받으며 황홀해하겠지.


2. 사지 마세요, 입양하세요


이미 반려동물을 사 온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반려동물이 되어버린 아이가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게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될 뿐이다. 하지만 앞으로 새로 반려인이 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 혹은 집에 둘째나 셋째를 들이려는 사람들이 한 번쯤, 아니 열 번쯤 생각해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우리 집 개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에서 접해 많이들 알고 있는 견종이다 보니, 게다가 사이즈도 작지 않다 보니 산책을 시킬 때면 꽤나 관심을 받는다.

그리고 가끔은 누군가 다가와 이렇게 묻는다.



“안내견 하는 종 맞죠? 리트리버 맞죠? 이런 개들은 얼마나 해요? 비싸죠?”


그럴 때면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힘드니 대부분 그저 모른다고 퉁명스레 대답할 뿐이지만, 반려동물들이 가격을 매길 수 있는 “재화”로 여겨진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고 슬퍼져 버린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펫 샵의 강아지, 고양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생산되는지 알고 있다. 모견들은 몇 개월이 되었던 새끼를 가질 수 있는 사이즈만 되어도 강제로 임신을 당하고, 새끼를 낳고 나서는 또 제대로 된 회복기간도 없이 그 과정을 반복한다. 심지어 그 과정을 겪는 환경은 발 하나 편히 디딜 수 없는 뜬 장 속이고, 밥의 재료는 항생제를 가득 뿌린 음식물 쓰레기. 샵에서는 순종 백프로라며 자랑을 하지만, 결국에는 비위생적이고 절대 건강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생명을 착취하며 생산해낸 거라는 걸, 아주 작은 관심만 가져도 알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이 외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저런 질문을 한다는 건 사람들이 여전히 불편한 소리라고 귀를 막고 있거나, 정말 관심이 없는 거겠지. 이런 무관심한 상황에서 사 오는 동물들은 결국 사 온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치료비 때문에 버려지거나, 혹은 그저 털 짐승이 털이 빠져서, 살아있는 동물이 시끄럽게 굴어서, 등등 가지각색의 이유로 아주 쉽게 버려지고 만다. 그렇게 유기견과 유기묘가 늘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루트로 반려동물을 맞는 것이 옳은, 혹은 덜 틀린 걸까.
 
한 번은 지인이 내게 물었다. 자기의 지인이 반려동물을 들이고 싶어 하는데, 어디서 찾아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펫 샵이나 브리더는 아닌 걸 알겠는데,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솔직히 나도 내 버전의 정답을 정리하지 못해 포인 핸즈만을 알려주고는 혼자서 괴로워했다. 조금 더 많은 정보를 나눠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왜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도 제대로 없었을까, 속상했다.

보호중인 유기동물들을 보고, 입양도 할 수 있는 플랫폼, 포인핸드


요즘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은 누군가 임시보호 중인 아이들을 우선 꾸준히 관심 있게 바라보는 거다. 입양하기로 결정하면 절대 무를 수 없는 선택이니만큼, 나와 케미가 맞을 것 같은 아이를 만나는 건 아주 큰 행운을 요한다. 그럴 때 임(시)(호)자 분을 통해 아이의 성격에 대한 힌트를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다면, 행운을 맞이할 문을 더 활짝 열게 되는 거 아닐까. 게다가 임보자분들도 입양을 보낼 때 임보 중이던 아이가 행복할 수 있도록 입양 신청자에게 여러 질문을 해주시니, 이 과정에서 이 아이를 데리고 오면 기필코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나의 다짐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아닐까. 앞으로 누군가 새로 나에게 물어보면 일단은 이렇게 대답할 테다.


3. 평생 백 점짜리 반려인은 못되더라도


나는 이제 육 년 차 반려인이다. 칠 개월 즈음의 나이로 나타난 우리 집 강아지 호두도 어느덧 여섯 살.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가족들에게는 말도 없이 데리고 왔던 개였다. 유년시절 내내 강아지를 키우자며 졸랐던 나였지만,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반려인의 삶을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준비 없이 반려견을 맞은 나는 삶의 패턴을 바꿀 결심도 다짐도 부족했다. 그래서 부끄럽게도 호두가 오고도 그저 오명가명 눈이나 마주치고, 간식이나 가끔 줄 뿐, 크게 신경 써주지 못했다.

호두에게 좀 더 신경을 써주기 시작한 건 내 마음이 힘들어지면서부터였다. 꽤나 큰 스트레스를 때문에 이대로라면 정상적인 삶을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을 때, 밤마다 산책이라도 하기로 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저녁마다 한 시간 내지 한 시간 반을 호두와 함께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때로는 피곤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하루 종일 나를 괴롭게 했던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몸을 움직였다. 호두가 나를 끌고 갈까 봐, 길에서 이상한 것을 주워 먹을까, 때로는 다른 사람이나 강아지를 놀라게 할까 봐 신경을 쓰느라 스트레스와 고민에게 나를 내어줄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그 시간 덕에 하루를 또 버텨냈다. 이 얼마나 큰 은인인지, 그런데 나의 옛날은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한지.

고마운 마음과 애정이 커지니, 내가 못 해주고 있던 것들도 더 보였다. 더 좋은 사료를 먹여주지 못해서, 출근해 있는 시간 동안 놀아주지 못해서 속상하다. 내게 보내는 모든 시그널을 읽어내지 못해서, 그래서 더 만족할만란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루에 한 번, 가능할 땐 두 번 내지 세 번 산책을 시켜주고, 혹시 갑자기 어디가 아플까 적금도 챙겨 들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고 부끄럽다. 이런 와중에 하나 확신이 드는 건, 나는 평생 백점짜리 반려인이 되지는 못할 거라는 거다. 백점짜리 부모가 없듯, 언제나 나는 더 해주지 못한 것에 아쉬워하며,  뭔가 더 해주려고 고민할 테다.

백점짜리 반려인이 될 수 없으면 반려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큰 고민 없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사람들도 과정 속에서 배워가며 훌륭한 아이를 키워낼 수 있듯, 어쩌면 큰 다짐 없이 반려동물을 들이는 사람들도 아주 큰 애정을 주고받으며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우연만을 믿기는, 아름다운 이상만을 그리기에는 아직도 너무 많은 유기견과 너무 많은 유기묘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고민과 더 큰 결심이 필요하다.


짧으면 십 년, 길어도 이십 년뿐인 수명의 생명들이 더 이상 인간의 소유욕만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장난감으로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결심과 다짐을 한 사람들이 더 신중하게, 그리고 바른 방법으로 아이들을 반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와 함께 백 점짜리 반려인이 못된다는 사실에 부끄러워하면서도, 조금씩 더 노력하며 반려하는 아이들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행운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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