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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Apr 05. 2020

악법이 무법보다 낫다

스물네 번째 한 글자 주제, 법

“안전 이별해”라는 말이, 친구의 연애 상담에서의 마지막 문장이었던 때가 있다. 

데이트 폭력이라는 말이 슬슬 물 위로 나올 즈음이다. 뉴스에서 종종 이별을 고한 전 여자 친구를 찾아와 폭력을 행사하거나, 집에 몰래 숨어 그 가족까지 해한 범죄자들이 등장했을 즘이다. 그럼에도 내가 저 문장을 마음의 큰 동요 없이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은 농담 이어서다. 아무리 그래도 내 주변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내심 믿었기 때문, 아니 믿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몰카 조심해”라는 말을 수군수군하기 시작했던 때가 있다. 

공중화장실 칸에 으레 있던 나사 구멍들이, 그전까지는 몰랐는데 어느 순간 왜 이리 많다는 걸 깨달았는지. 왜 사람들이 구멍마다 저리 휴지를 박아놨나 싶었는데 이제 내가 막고 있다니. 그러면서도 분노와 억울함보다 어리둥절함이 먼저 밀려왔다. 대체 어디 하나 섹시할 수 없을 것 같은, 오히려 봤다간 비위만 상할 것 같은 남의 용변 보는 모습을 왜 촬영한담. 너무 뒤늦게 알았으니, 항상 구멍들을 눈여겨보진 않았으니 이제서부터 조심한다고 해도 이미 어딘가에선 내 용변 보는 영상이 돌아다니고 있겠지, 싶은 포기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몰래 찍어서 몰래카메라인데 내가 암만 조심한데도 어떻게 더 조심하나 싶기도 했고.

아무리 그래도 이런 미친 짓을 하는 자들은 아주 소수라고 생각했다. 내 주변에는 감히 없을 것이다 믿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힌트들은 아주 많고 아주 흔했다. 

교실 구석에서, 열명씩 둘러앉아 무엇을 열심히 보던 너희들이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힌트다. 옹기종기 둘러앉은 너희들은 자신의, 그리고 서로의 정수리를 마이로 둘러 감싸 마치 요새를 차려놓은 모양새였다. 호기심이 많은 몇 여자 친구들은 뭐하냐며 가까이 갔다가 쟤네 이상한 거 본다고 울상이 되어 돌아왔다. 또 다른 힌트는 교탁에서 출석부를 보며 뭔가를 열심히 적던 너희들이다. 그중 누군가의 남자 친구였던 아이가 본인의 여자 친구에게 그게 사실은 반 여자애들 점수와 등수를 매기던 거라고 알려줬다. 또 기억나는 이야기. 인강을 보는 게 너무나도 당연해진 고2 즈음이었나, 다들 동영상을 담을 수 있는 pmp하나씩 있었다. 간혹 영화를 담아와서 돌려보기도 했더랬다. 그런데 몇 남자애들은 곧 죽어도 자기 pmp는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녀석이 다른 녀석의 pmp를 들고 도망가면서 제목을 큰 소리로 읊었다. 이런 식이었다. “100명의 누나가 한 번에 ㅇㅇㅇ”. 뭔가 역겹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건 놀리는 거고 웃긴 건데, 하고 조용히 넘어갔다. 지금 와서 깨닫지만, 얼마나 이런 일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고 흔하고 평범한 거였을까.


그 평범함이 아마 이 사태를 키웠을 테다. 

아무도 여자들의 외모를 순번 매기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지 않았으니까. 반에서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남자아이는 그 여자애를 좋아하는 애가 되었을 뿐이니까. 이 모든 것에 악의는 없고 단순히 어쩔 수 없이 타고난 본성과 욕망만이 있을 뿐이니까. 남자는 그냥 그런 존재라고 이해받아왔으니까. 항상 성 매매 산업이 존재해왔고 성 판매 여성이 존재해왔다는 것 만으로 그것이 문화이고 역사라고 주장되니까. 그 모든 것이 뭐 하나 잘못되었다고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 다들 나 하나쯤 이래도, 나 하나쯤 조금 더 가학적이라도 어차피 같은 맥락의 행위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테다. 저런 걸 직접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는데 그저 얼마의 돈을 내고 보는 나는 별거 아니지 하고 생각했을 거다. 그 누구도 특별한 악마가 아니다. 누가 시작이었든, 어찌 되었건 숫자는 그렇게 1만, 내지 6만, 내지 26만이 되었을 거다. 


정확한 숫자가 무엇이든 그게 제일 중요한 건 아니다. 그게 만 명이 아니라 백 명이었더라도, 아니 열명이었더라도 문제는 마찬가지다. 가장 큰 문제는, 여태까지 문제를 문제라고 정의해줄 기준이 없었다는 암담한 사실이다.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내고도 승리를 감옥이 아닌 군대로 보내고, 정준영을 백만원형에 처하고, 손정우는 곧 출소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지금의 법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상황을 재단하고 제재할 수 있는 기준이 법이다. 하지만 피해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예방하고, 가해자가 처벌받을 수 있는 실효 있는 법이 지금의 우리에겐 전무하다. 그래서 우리에겐 너무나도 이 상황을 개선할 법이 필요하다.


얼른 법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누군가는 ‘섣부르게’ 조항을 만들 수는 없다고, 그리고 ‘섣부르게’ '무고죄로 희생당할지도 모르는' 미래가 창창한 청년들의 앞길을 막을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사태까지 와서 그 무엇도 섣부른 건 없다. 소형 불법 촬영 카메라, 불법 약물을 사용한 약물 강간, 지인 합성 포르노, 이제는  N번방까지, 가해의 수단이 무궁무진해진 지금, 보호의 수단이 하나라도 많아져야 한다. 가해의 수단이 하나라도 제재받아야 한다.


법은 문화와 정서를 반영해야 하지만, 우리의 정서는 아직도 너무나도 후지지만, 한편으로는 법이 문화와 정서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믿는다. 아무런 보호도, 아무런 해결도 기대하기 힘든 지금, 섣부르든 서투르든, 어떤 방식으로든 피해자가 보호받고 가해자를 처벌하며 피해 상황을 예방할 수 있는 법이 어서 빨리 생겨나길 바란다. 차라리 악법이 무법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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