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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Oct 05. 2020

독립하겠다고 했습니다

독립하겠습니다_1

어느 날 가족 저녁을 먹던 중에 이야기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문장이었다.

나 할 말이 있어. 나 내년에는 나가 살기로 결심했어.


온갖 질문이 쏟아질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부모님은 꽤나 쿨한 반응이었다. 어디로 나가 살 건데? 오피스텔 알아보는 거야? 그 동네는 가격이 얼마나 해?

건조한 질문들에 마음이 편해졌다. 편해진 마음으로 건조한 대답을 했다. 회사 근처로 갈 거고, 오피스텔 위주로 보고 있고, 가격은 아직 보고 있어서 딱 말해주긴 어렵다고.




첫 자취는 아니다.

교환학생 때도 혼자 살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편도에 한 시간 반씩, 차가 막히거나 갈아타는 걸 기다리는 동안엔 두 시간 가까이도 잡아먹던 통학에 지쳐 나와 살았다. 집으로 돌아온 건 오히려 취업을 해서였다. 당시 취업한 회사와 아빠의 회사는 불과 도보 십오 분 거리. 아빠도 통근하는데 굳이 내가 나와 살 이유가, 아니 핑계가 전혀 없었다. 동네까지 셔틀도 다녔고, 여섯 시 사십오 분에 셔틀을 타야 했던 걸 고려하면 부모님의 기상 알람 없이 혼자 헤쳐나가기 막막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보증금 조차 없던 나의 재정상태 때문이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 자체를 견디지 못하겠어서 나가고 싶어진 것은 아니다. 집 자체가 싫은 것도 아니다.

부모님은 비교적 내 생활에 거의 터치를 안 하시는 편이고, 냉장고를 열면 맛있는 반찬이 가득에다 내 돈으로 쉽사리 사지 않는 과일도 항상 준비되어 있다. 한 집에 아주 많이 사랑하는 반려견이 살고 있고, 아침저녁으로 같이 볕을 쬐며 산책을 하거나 짬짬이 마당에서 뒹구는 시간도 아주 즐겁다. 빨래나 청소에 대한 부담도 훨씬 덜하고, 늦잠 잘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가끔 동생 옷이나 가방, 신발을 빌려 쓰는 것도 소소한 재미인 데다가, 무엇보다도 월세가 전혀 들지 않는다는 아주 커다란 장점이 있다. (special thanks to 부모님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독립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꽤나 오래전부터 해왔다. 이유는 소소한 것들이다.

코딱지만 한 방에서의, 그것도 부모님의 손을 빌린 자유긴 했지만 혼자 사는 삶의 자유로움은 결이 달랐다. 그 누구도 내게 일어나라고 하지 않았다. 혹은 누군가의 소리에 아침 일찍 잠에서 깨지도 않았다. 아무도 내게 때마다 밥 먹으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뭔가를 가만히 하고 있을 때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었고, 티브이에서 뭔가 웃긴 게 나온다며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일상이라는 건, 단어만으로는 조금 외롭거나 쓸쓸하게 느껴지지만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 오롯한 루틴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 계획에 맞춰 일어나고, 내 바이오 리듬에 맞춰 식사를 하고, 내 계획에 따라 한 주의 식단을 꾸릴 수도 있다. 나만의 공간을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해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무슨 택배를 또 시켰냐며 물어보는 이도 없다. 정말 나만의 삶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는 환경인 거다.


내게 이것이 너무 오래 필요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독립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공표한 이후로부터는 더더욱 그렇다. 직방을 뒤지며 내가 원하는 집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면서 신이 난다. 어떤 삶을 꾸려갈지 기대가 된다. 딸이나 언니로서의 나를 온전히 내려놓고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하루빨리 갖고 싶다.


아, 괜히 내년이라고 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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