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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녜 Oct 13. 2020

그래서 제 집의 조건은요

독립하겠습니다_2

요새 가장 큰 취미는 직방 구경이다.


독립을 결심하자마자, 가족들에게 공표하기도 전에 직방부터 깔았다. 시세라도 알아놔야 내 결심이 굳어질지, 혹은 터무니없는 결심이었다는 걸 깨닫고 마음을 고쳐 매야 할지 갈피를 잡겠거니 싶었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집값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전세로는 "영끌"로 가도 영 마음에 차지 않는 곳에 살게 될 것 같았다. 더 나은 삶을 꾸리고자 독립하겠다고 한 건데, 더 못한 곳으로 갈 수는 없지, 생각했다.


월세로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니 선택지가 조금 더 넓어졌다. 월급에 준하는 월세 수준이 아니라면야 못 갈 집이 어딨겠냐 싶었다. 아이쇼핑이야 명품관도 마음껏 하는 마당에, 온 집을 다 구경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내게 집이라는 새로운 흥밋거리가 열렸다.


채광과 수압을 확인해야 하고, 너무 시끄러운 골목에 있으면 안 되며, 대로변이라면 고층에 살아야 소음 문제가 없다는 것. 집이 습하지는 않은지, 외풍이 심하지는 않을지, 관리비는 얼마나 나오는지 등 집을 구할 때 체크해야 하는 체크 리스트는 많지만, 직방과 네이버 부동산의 매물들을 구경하며 나만의 새로운 필수 포인트들을 발견했다.




첫 번째, 먹는 곳과 자는 곳이 분리되어야 한다.


사실 이건 매물을 구경하기 전부터 생각했던 거긴 하다. 대학 시절, 침대와 책상 외에는 겨우 요가매트 정도 깔 수 있는 공간이 다였던 원룸에서 생활하면서 나는 집에서 뭔가를 잘해 먹지 않았다. 자취를 시작하는 초반에야 자취 로망에 들떠 부모님이 바리바리 싸주신 요리 도구들로 밥도 해 먹고 시금치 프리타타도 해 먹고 파스타도 해 먹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음식 냄새 때문이었다. 아무리 설거지를 바로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잘 처리해도, 그날 해먹은 김치찌개라던지 마늘 볶은 냄새라던지 등은 환기로도 페브리즈로도 잘 날아가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이제는 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 때에도 정작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어디선가 솔솔 풍겨왔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이른 식사를 마친 날에도 그랬다. 공복에 가까운 상태로 누워있는데 어디선가 풍겨오는 아까 그 냄새는 교묘하게 나의 콧구멍을 파고들며 수면을 방해했다. 이런 경험을 더 하고 싶지 않아 보통 음식은 밖에서 먹고 들어오거나, 집에서는 거의 냄새가 나지 않는 요거트나 시리얼 정도만으로 허기를 달랬다.


하지만 이번 독립에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오롯한 내 자본으로 시작하는 독립이다 보니, 돈을 아껴야 한다는 부담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그 방법 중에 하나로 외식을 줄이는 거다. 하지만 그러려면 최소 자는 곳에서 음식이 떠오르지 않을 만한 환경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옵션은 두 가지. 방이 따로 구분되는 집으로 가거나, 적어도 거리 상으로라도 멀어질 수 있도록 복층으로 가거나.


두 번째, 샤워부스는 필수.


생각지도 못하다 직방 매물을 보다 깨달았는데, 나는 샤워부스 없는 화장실이 싫다. 정확히 말하자면 습한 화장실이 싫다. 샤워부스가 없는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자면 아무리 조심해서 하더라도 변기에도, 거울에도 물이 튄다. 온 바닥도 물바다가 된다. 아무리 배수가 잘 되어도 바닥이 바짝 마르기까지는 몇 시간이나 걸린다. 샤워가 끝나고 수건으로 여기저기 튄 물을 훔쳐봐도 그렇다. 수건으로 여기저기를 닦아 대는 것도 너무 귀찮다. 그렇게 여기저기 튀어있는 물은 물때를 만들고, 새로 화장실 들어왔을 때의 쾌적함을 줄이고, 때로는 양말을 신고 들어왔다가 그 양말을 적셔 불쾌함도 안겨준다.


화장실이 비교적 크면 그나마 낫다. 하지만 내가 들어갈, 내 한 몸 뉘일 1인 가구용 주거환경에 달린 화장실의 사이즈가 커다랄 리 없다. 오히려 변기와 세면대와 샤워기가 옹기종기 붙어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심지어는 변기 옆에 매달린 화장지까지 젖어버릴지 모른다. 혹은 습기에 눅눅해진 휴지가 되어버리겠지. 거의 하루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하는 공간을 쾌적하지 못하게 운용하고 싶지 않다.


샤워부스가 있는 화장실이라면 이런 걱정을 한결 덜어낼 수 있다. 샤워 후에는 샤워부스 안의 물을 밀대로 닦아 낼 것이고, 나온 직후에는 샤워 부스 문을 꼭 닫아 그 습기가 샤워부스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관리할 거다. 화장실 안에 슬리퍼도 두지 않을 거다. 습기가 흘러나올 일도, 물이 이리저리 튈 리도 없으니 양말을 신고도 쾌적하게 화장실을 드나들 수 있다. 역시, 샤워부스는 필수다.


세 번째, 요가를 하기에 충분한 공간이 나오길 바란다.


작년부터 시작한 즐거운 취미이자 습관 중 하나는 요가다. 매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종종 하루에 15분이든 30분이든 요가 유튜브를 보는 게 생각보다 큰 리프레시가 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요가 매트만 한 면적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팔을 이리저리 뻗고, 몸을 비틀어 스트레칭을 하는 동작이 많아 요가매트 x 요가매트 정도의 정방형 공간은 충분히 나와야 제대로 된 동작을 할 수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집이 너무 좁다면, 그래서 내가 늘어놓은 가구로 가득 차버려 바닥에 저 정도의 공간도 남지 않는다면, 집에서는 내가 누리고 싶은 이 짧은 루틴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셈일 테다. 사실 이 문제는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바닥 공간을 최대한 비워두면 해결될 수도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금상첨화라고 내가 필요한 테이블 등을 두고도 요가를 할 수 있는 쾌적한 사이즈의 집을 만나길 바란다.




사실 늘어놓자면 욕심은 훨씬 많다. 


등이 뜨뜻 해질 정도로 햇볕을 쬐고 있는 것을 좋아하니 창이 큰 집에다가 채광도 좋았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외풍은 들지 않도록 이중창이면 좋겠다. 벌레를 너무너무 무서워하니까 아주 청결한 집이었으면 좋겠고, 건물 내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거나 흡연 공간을 잘 지키는 사람들만 살아서 화장실 환풍구에서 담배냄새가 올라오거나 내려오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핫플레이트보다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집이면 좋겠고 (역시 요리는 불맛!), 벽에 절대로 포인트 무늬는 없었으면 좋겠다.


아직 집을 보기 전이라 이런 욕심을 부리는 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임장을 다니고, 매물을 보고 가격을 확인하면 이게 다 말도 안되는 욕심이었다는 현실에 벽에 부딪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뭐 어떤가, 아직 돈을 낸 것도 아닌데. 욕심부리는 게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사실은 무엇을 기대한다는 건 너무나도 즐거운 일인데!


부동산을 보러 다닐 생각은 항상 떨리지만, 그래도 참 설렌다. 좋은 집을 잘 만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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