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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친한 친구에게 산세베리아를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식물은 처음 키워보는데 죽으면 어떡하냐고 하니까 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잘 크는 식물이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성스럽게 포장된 식물을 내 품에 쏙 집어넣어줬다. 당시 허우적대며 우울해하는 나에게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불안해하지 말라며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응원의 말을 아낌없이 주면서 맛있는 밥까지 사줬다. 이럴 때 얻어먹는 밥은 왜 이렇게 맛있는지. 유독 힘들었던 탓인지 친구의 따뜻한 말이 산세베리아를 볼 때마다 생각나서 용기를 얻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마운 친구! 그때 이후로, 나도 고마운 사람에게 식물을 선물한다.
우리 집으로 온 첫 번째 식물, 산세베리아는 내방 침대 헤드에 올려두고 아침이 되면 햇빛이 잘 드는 창가에 옮겨두기도 하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물을 준 게 다인데 정말로 죽지 않고 계속 잘 자라주었다. 3년이 넘은 지금 우리 집 1호 초록 식물 산세베리아는 한 뼘이 넘게 자랐고, 여전히 나와 함께 지내고 있다. 이 사실을 선물해준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게 아직도 있냐며 무척 놀라워했다. 말로는 쉽게 안 죽는다고는 했지만 내가 죽였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때 이후부터 나는 식물에 관심을 깊게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집 근처에 작은 하우스 화훼단지가 줄지어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가끔 들러 마음을 사로잡는 친구들을 하나둘씩 집으로 데리고 왔다.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오롯이 홀로 자신만의 시간을 살면서 생명을 이어가는 식물의 모습이 왜인지 큰 위로가 됐다. 좋아하는 식물들이 하나둘씩 종류가 많아지고, 커져가니 집도 옮겨줘야 하고, 가꾸어 주어야 하니까 시작한 가드닝이 어느새 취미가 되고 일상이 된 지금. 우리 집엔 20여 종이 넘는 식물 친구들이 함께 살고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나 말고 다른 무언가를 보살피는 일이 생각 이상으로 안정감을 준다는 걸 식물을 키우면서 알았다. 우리 집엔 식물들 뿐 아니라 올해 4살이 된 반려견 별이도 함께 살고 있는데, 식물을 살피는 일은 별이를 돌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돋아나는 싹을 보고 있으면 왠지 그 싹이 생명과 신비, 사랑 같은 단어를 한 아름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게 참, 따뜻하고 신비로와 맑은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적당한 햇빛, 바람, 물 그리고 흙 자연의 조화를 알맞게 맞춰주면 어느새 새로운 생명이 반기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식물들에게 물을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늘 보니,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제법 달렸다. 작년에 열린 열매들은 달지도 않고, 사실 아무런 맛이 없었다. 올해는 꼭 달콤한 열매를 얻어 보기 위해 해가 가장 잘 드는 곳으로 화분을 옮기고 물을 흠뻑 주었다. 목이 말랐는지 빠른 속도로 화분 밑으로 물이 빠진다. 다른 식물 친구들도 요리조리 살피고 이런저런 시간을 보내고 보니 10시. 이럴 때 보면 출퇴근이 자유로운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게 참 좋다! 덕분에 오늘도 제법 긴 아침시간을 보내고 출근 준비를 해본다.
2019년 7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