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서른, 신을 믿겠다고 찾아간 교회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동글한 얼굴에 말똥거리는 눈을 가진 귀여운 외모, 직업은 전도사, 나보다 네 살 어린 친구였다. 처음 그 아이에게 느낀 감정은 낯섦이었다.
어린 시절, 사역자는 나에게 범접할 수 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자라나 어른이 되어서도 그 거리감은 그대로였다. 꽤나 진지할 것만 같고, 무언가 대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사람들.
그런데 내 눈앞에 앉아있는 이 귀여운 친구가 전도사님이라니.
하지만 곧 익숙해졌다. 교회 내 제자 훈련을 위해 우리는 매주 만나야 했고, 한주 한 주 만나며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고, 우리의 신앙을 얘기하고, 서로의 살아온 삶을 나누며 그렇게 ‘전도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 그 아이를 만나갔다.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이야기 하나가 있다.
“사역자 집안에서 자랐으면 벗어나고 싶지 않았어?”
“벗어나고 싶었죠. 사역자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됐어?”
“사랑이 가장 부족한 곳에서 일하라는 파파(그 아이는 하나님을 파파라고 칭했다)의 부르심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사랑이 가장 부족한 곳이 한국 교회더라고요.”
불안과 두려움을 더 많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덮으려는 인간의 본성은 어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인간이 모인 교회, 그런 교회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이슈를 보며 나 역시 위선자, 개독교라 욕했던 때가 떠올랐다. 자신을 지키고자 아등바등하는 세상 속에서 더 낮아지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사랑이 흐르도록 사랑을 내어주겠다고 결연하게 다짐한 한 아이의 삶이 내 마음을 자극했다.
이제는 같은 교인을 넘어 친구가 되었다. 매주 아이들을 섬기며 사역하는 만남도 있지만, 함께 책을 나눠 읽고 이런저런 삶을 나눈다. 그 아이의 삶을 보며 나 역시 사랑이 부족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담사가 되겠다던 다짐을 되새긴다. 그 아이의 편에 서서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