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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4. 2022

인스턴트 같은 인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한입 두입 신선하고 맛있었다. 먹다 보니 즐거웠다. 그러다 어느 날, 속이 메스껍고 내 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무엇 때문이지?’ 혼란스러웠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두드러기 난 피부를 보듬다가 나중에서야 내가 먹던 그것이 인스턴트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것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내가 만났던 한 아이를 나는 ‘인스턴트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것에 신선함을 느꼈다. 대안학교를 나오고, 대학을 거부하고, 배우를 하다 감독을 꿈꾸는 아이. 주입식 교육 탓에 스스로 사고할 줄 모르고, 수동적인 여타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선택한 것은 열린 마음으로 하려는 아이,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고 뚝심있는 모습이 ‘신선하다’ 생각했다.


사람에게 다정하게 질문하는 태도도 반가웠다. 대화하는 것이 어색한 여타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매사 순수한 태도로 그저 다정하게 질문하는 모습이 친근했고 악의 없어 보여 좋았다. 더욱이 섬세한 아이였기에 나의 작은 감정 하나하나를 잘 캐치했고 잘 반응했다. ‘이렇게 대화가 통하다니,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어’ 하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건 이후로 그 아이에 대한 내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아이는 폴리아모리스트였다.(폴리아모리: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 사랑을 뜻하는 말이다.) 그 덕에 새로운 관계 형태를 알아가고, 그 아이의 연애도 응원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듣고 보니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자기만의 스토리가 있고, 오랜 생각 끝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 이야기했지만, 그 깊은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진정성, 진솔함, 정직이 중요한 나는(그리고 바람피우는 남자들에 대한 분노가 그 아이에게 투사되어) 그에게 술에 취해 ‘꼴 보기 싫다! 진정한 폴리아모리스트로 거듭나라!’ 술주정을 부렸다. 그러나 그는 한번 사는 인생 좀 비겁하게 살면 어떠냐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토마시를 떠올리게 했다.


그 아이는 ‘대다수 사람들은 멍청하다’ 생각했다. 겉으로 누군가를 깔보진 않았지만 소위 말하는 ‘비판하고 허점을 보는 것’에 자신 있어 보였다. 겸손보다는 오만에 가까웠고, 남을 인정할 줄 아는 태도보다 타인에 대한 인색함에 더 가까운 아이였다. 고집도 참 셌는데,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있으면 타인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배우로 성공해서 관심받고, 인정받고 싶었지만 그 욕망이 좌절되어 남들도 다 망했으면 좋겠다 바라던 시기심이 애잔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관종이 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은 맥락 없이, 눈치 없이 튀어나와 때때로 불편했다.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아이의 대다수 언행이 플러팅에 가까운 것들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같은 성향이 이상형이었다  ‘나의 부족한 점을 언급하며 자신이 가진 강점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강조하는  ‘내가 만나고  남자들에 대해 한없이 부정적인 피드백 이야기했다.  아이의 말과 행동은 쌓여갔고, 나도 모르는 사이  감정도 쌓여 갔다. 어느 ,  이상  아이를 온전한 마음으로 대할  없겠다 확신이 들자  관계 바운더리 내에서  아이를 지워버렸다.


그 아이와 맺었던 관계를 되돌아본다. 나는 ‘한 인간’으로 그를 대했다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그 아이를 ‘이성’으로 생각했던 걸까? 후폭풍 같이 밀려오는 이 분노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도대체 정리되지 않은 이 불쾌한 감정들은 뭘까? 그리곤 결론 내렸다. 나는 그 아이에게 설렜다.


그 아이의 플러팅 가까운 다정스러운 말 한마디에 나는 그에게 한번 더 시선을 주었고, 관심을 가졌다. 그는 그러한 말 한마디로 자신에게 향할 시선을 기대했는데 (그로 인해 관심받고, 인정받아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고 싶었는데) 그 모든 것을 내가 충족시켜준 셈이다. 그 무의식적인(의식적일 수도) 패턴에 내가 열심히 반응했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모든 사람은 장단이 있고, 그 장단이 양날의 검이 되어 모든 관계에 영향을 주는 법인데, 나는 왜 이리도 그 아이에게 화가 나는 것일까. 한동안 인정하기 싫어서 직면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내가 그 아이에게 설렜다’는 것이 진짜 이유였다. 플러팅을 일삼아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는 그런 놈에게 설레다니, 열등감에 사로잡혀 남을 시기할 줄만 아는 그런 놈에게 설레다니, 그런 놈에게 설렐 만큼 내 마음이 단단하지 못한 것에 화가 났다. 애매한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야말로 심리적 성숙의 증거라던데, 애매함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관계를 끊어낸 것에도 화가 났다. 성숙.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생각하며 나를 자책했다.


내 마음, 내 감정.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모든 것이 받아들여진다. 관계를 끊어낸 것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도 참 잘한 일 같다. 그런 아이와 친구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나에 대한 오만이다. 다만 한 가지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그 아이와 마지막 인사가 너무 나이스 했다는 것. 마지막 인사로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넌 내 인생에 인스턴트 같은 인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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