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에게 자극을 준 사람이 있었다. 함께 스터디를 하게 된 스터디원. 여러 명이 함께하는 스터디 첫 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두 시간 중, 반 이상을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데 차지했다. 그가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TMI처럼 들렸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고, 나의 이야기도 하고 싶었지만 수시로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그를 막을 길이 없었다. 그의 행동이 서서히 불편해지기 시작하는 순간, 아차! 깨달았다. 내 머릿속에서 그 사람을 '이기적이다'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아, 내가 저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평가하고 있구나. 왜 이기적이라고 생각할까? 우리에게 주어진 공평한 시간을 나눠 사용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억울하다 느꼈구나.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이야기도 듣고 싶은 다양성을 원하는 나의 바람이 충족되지 않아 아쉬웠구나. 나의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나를 표현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 답답했구나. 그 마음들이 모여 그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평가했구나.'
나의 마음이 다독여지자, 그 사람의 마음이 들여다보였다.
'그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 우선, 공평하게 시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인지하지 못할 수 있어. 인지하고 있더라도, 나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인정받고, 이해받고,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을 스터디원들에게 새기는 것이 더 중요한 마음이었을 거야.'
그의 마음을 추측해보자 애잔한 마음이 생겼다. 이후 지속되는 스터디에서 그의 투머치 토크는 계속되었지만, 이전처럼 이기적이라고 평가하는 대신 인정받고 싶고, 이해받고 싶은 그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를 바라보기 시작하자, 그 역시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의 나약함과 두려움을 이렇게 많은 말로 장황하게 풀어서 감추려 하고 할 때가 있다고.'
마음 챙김(Mindfulness) 수업에 배운 것도, 비폭력대화를 수년간 공부하며 집중한 것도, 용어는 다르지만 맥락은 같이하는 그것, 알아차림이었다. '저 사람은 지루해.'가 아닌 '내가 저 사람을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있구나.'를 알아차리는 것. 그 알아차림을 빠르게 하는 것. 이제껏 내가 배우고 연습한 것이었다.
무언가를 쉽사리 평가하고 판단하여 비난하는 대신 알아차림을 통해, 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타인을 수용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리고 문득, 이 마음이 내 삶에 큰 감사와 축복이구나 싶다. 과거에 비하면 새로 태어난 사람같다. 마주하는 일상에서 때때로 어려울 때도 있지만, 이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넓히고자 의지를 다진다. 그래서 누군가를 살리는 사람이 되겠다는 나의 소망을 굳건히 한다.
박노해 시인 사진전에 갔다가 내 온몸에 강한 동의와 긍정을 불러일으켰던, 그래서 오랜시간 가만 서서 바라보게 되었던 글귀가 떠올랐다.
바라본다는 것은 바라며 본다는 것
사람은 그가 바라보는 대로 되어간다
Looking is hoping
As we hope and look, so we become
정말이지,
사람은 바라보는 대로 되어가는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