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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Aug 30. 2023

소설가를 믿지 마세요 2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도 나와 그는 한참 동안 납골당 주차장에 서 있었다. 여름 햇살이 뜨겁게 목덜미를 태우고 있는데도 서로 말을 잊고 멍하니 서 있었다. 갑자기 생각난 듯 그가 말했다. 

   “차 안에 좀 있어. 집에 데려다줄게.”

   차는 용광로처럼 달아올라있었다. 그는 시동을 켜고 에어컨을 작동한 뒤  ‘잠깐만 있어봐.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게.’ 하며 건물의 뒤편 흡연구역 쪽으로 걸어갔다. 요란한 에어컨 소리에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가 걸어가고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의 뒷모습은 후줄근해 보였다. 문득 아이를 지운 것을 뒤늦게 말했던 때가 떠올랐다. 

   '이제 우리 집에 더 이상 찾아오지 마. 어머니 핑계 대지 말고. 너와 다시 결합한다면 나는 아이를 지운 죄책감과 다시 만나야 해. 더 이상 고통스럽고 싶지 않아.‘ 입술을 깨문 채 서 있던 그는 ‘잘할게. 앞으로.’ 하였고 발악을 하듯 소리를 지르는 나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다른 데 가서 이야기하자. 여긴 보는 눈이 많아. 회사 동료들이 얼마나 남의 불행에 관심이 많은지 넌 모를 거야.’  ‘관심 없어. 네가 어떻게 살든. 재미없어. 네가 재미없어. 그러니까 헛수고하지 마. 그리고 난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하지 않을 거고 더구나 미안해라는 말을 하지 않는 남자와는 연애도 안 할 거야.’ 

  끝내 그는 ‘미안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왜 미안해라고 하지 않아, 하고 물었을 때  ‘그런 말하면 낯선 사람이 되지 않나, 그리고 사내가 그런 말을 하기엔 좀 그렇지. 나약하게 보이잖아. 그러니까 그런 말은 평생 안 할 작정이야. 그건 그렇고 넌 아이까지 지우고 다른 남자와 연애하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 소설가라면 좀 지켜야 하는 순정, 뭐 그런 거 있지 않나? 다른 평범한 여자보다는 말이야.’ 그리고 또 말했다. ‘그럼 내가 결혼하고 난 뒤 만나면 우리는 불륜 사이가 되는 건가?’ 그 말에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가 말했다. ‘그것도 좋을 것 같네. 그게 더 짜릿하고 애잔하거든. 물론 너에게 남자가 없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지.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당분간 신혼에 집중할 거야. 네 어머니에겐 잘 말해줘. 낙담이 클 것 같은데 말이지. 그리고 소설 열심히 써. 아, 소설가 아내를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말이지. 하하. 농담이야. 소설 쓰는 여자는 사실 좀 버거워. 결국 난 결혼하기에 적당한 상대를 만났어. 참하고 순진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순종적이지.’ 

   그때 그가 차 쪽으로 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황급히 과거의 기억 속에서 빠져나왔다. 

   “오래 기다렸지? 이제 가자.”

   그는 나의 집 앞에서 ‘차도 한 잔 주지 않을 건가? 섭섭하네.’ 하며 마치 죽은 나의 어머니에게 하듯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그에게 차를 내주었고 그는 집 마루와 서까래와 한지창문을 둘러보며 '오래 전 외갓집 같아. 이젠 사라지고 없는 산골 동네의 초입에 있었던 그 유년의 집 말이야. 그래서 여길 자주 왔지.’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졸린 듯 하품을 하였고 ‘한숨 좀 자고 가면 안 될까? 어머니가 계실 때도 여기서 낮잠을 자곤 했어. 한여름의 낮잠이 얼마나 달콤한지.’ 하고 말했다. 나는 어쩌자고 그에게 베개와 홑이불을 주었던가. 나는 단잠을 자고 있는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의 옆에 누웠고 그가 팔베개를 하자 그의 몸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훅하고 오래 전의 낯익은 체취가 느껴졌고 동시에 그의 혀가 들어왔다. 그 아찔한 느낌은 그토록 불온하고 불길한 예감을 덮고도 남았다. 길고 힘들었던 어머니의 간병에서 풀려난 해방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위태롭고 불안하였고 그래서 어딘가에 미치도록 달뜨고 싶었다.  

   그날이 떠오르다니. 이런 차갑고 건조한 법원에서 하는 상념이 고작 이런 것이라니. 그 짧은 탐닉이 이렇게 불명예스러운  사태를 불러왔는데도 아직도 그따위의 낭만에 젖어있다니. 나는 소설 속 어느 한심하고 멍청한 여주인공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엄마, 화장실 다녀와요. 아직 20분이나 남았어요.’ 옆에 앉아있던 아들이 말하자 나이 든 여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쪽으로 걸어갔다. 아들이 휴대폰을 꺼내보았다.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들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미친년. 이젠 차단까지 해버렸군. 내 딸도 못 보게.’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에 휩싸였다.  손해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결국 집을 담보로 대출을 낼 수밖에 없다. 어머니를 돌본 대가로 받은 낡은 집이다. 이미 변호사 비용을 대느라 통장에서 목돈이 빠져나갔다. 원금과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선 소설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그렇게되면 두 번째 소설집도 요원해진다. 

   나는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청소부 여자 몇몇이 휴게실에 앉아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너를 찾아갈지도 몰라. 정기구독한 문예지를 보고 알아냈네. 네 소설에만 밑줄을 치고 막 그랬거든. 마누라가 네 소설을 다 읽었나 봐. 소설가냐고 내게 묻더니 뭐라고 한 줄 알아? 미쳤군. 딱 이래. 소설을 쓰는 여자를 미쳤다고 하는 건지, 그런 여자를 만나는 나를 미쳤다고 하는 것인지 헷갈리더라. 근데 이혼은 안 할 거라고, 이혼을 할 시기는 자신이 결정하겠다고 말하더라. 그리곤 ‘한번 얼굴 봐도 되지?’ 하는데 안 된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 그러니까 내 말은 … 적당히 타일러서 보내라는 말이야. 사과도 하고. 내 말 듣고 있지?”

   나는 그의 아내가 아니라 먼저 그를 처리해야 하는 위기에 직면한 것을 알아차렸다. 

   “왜 사과하지 않아? 아내가 오래전에 죽었다고 하지 않았어? 사별했다고. 그걸 속인 것을 먼저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가 지겹다는 듯 짜증을 내었다.

   “또 그놈의 사과타령이야? 지겹네. 우리 부부는 말이야. 오래전부터 그렇게 지내왔어. 마누라도 나를 죽었다고 말하고 다녀. 그런 일엔 적극적이라니깐. 다른 때에는 거의 시체이면서 말이야. 무기력하고 침울하고 권태롭지. 그런 마누라가 글쎄 요즘엔 거의 전사가 되었어. 지금이 낫다는 생각도 들어. 귀신보다는 말이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너도 내가 거짓말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잖아? 그래도 나를 밀어내지 않았잖아? 암묵적 묵인 속에서 우린 뜨거웠지. 그렇지, 뜨거웠지. … 다시 전화할게. 내가 전화하기 전까지는 하지 마. 지금 좀 그래.”

   결국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무책임한 놈과 다시 엮이다니. 미친. 나는 조금 전 옆 자리의 아들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청소부 여자들이 일제히 내 쪽을 향해 보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이해할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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