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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Aug 30. 2023

소설가를 믿지 마세요 3

그의 말대로 이내 그의 아내가 쳐들어왔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그녀의 표정은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독감에 걸렸는지 연신 코를 풀었다. ‘나쁜 년, 푸, 정말 더러운 년, 푸.’ 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 몇몇이 내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소설가라고? 네가 쓴 소설 다 읽어봤어. 하나같이 사랑타령이더라. 사랑을 그렇게 좋아해서 남의 남자와 낭만적으로다가 몸을 섞었나? 그런 걸 소설로 만들 셈이었나? 얼마나 더럽고 가증스러운지.’ 그녀는 문이 열려있는데도 대문을 발로 찼다.  

   “비켜. 당장. 창피당하고 싶지 않으면.”

   나는 대문 앞을 막아섰다. 

   “법적으로 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할 권리가 없어요.”

   그러자 그녀가 내 팔을 잡아 흔들었다. 

    ‘법, 법 좋아하시네. 소설가이니까 말도 청산유수구나. 그 입으로 잘도 내 남편을 갖고 놀았겠지?’

   그녀의 말은 틀렸다. ‘나를 가지고 논 것은 당신 남편이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바로 당신이다. 당신의 남편은 당신이 죽은 사람이라고 했어. 지금, 죽은 사람이 부활해서 이렇게 행패를 부리는 것에 불과해.’ 나는 이 말을 하려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우위에 서고 싶었다. 야생의 짐승이 아니라 길들여진, 품위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법으로 하면 유리할 것 같아? 내겐 증거가 차고도 넘쳐. 너희들이 돌아다닌 모텔이니 식당이니 말이야. 정말 많이도 돌아다녔더구나. 모르는 모양인데 내 남편은 흔적을 남겨. 개새끼처럼 영역 표시를 하고 다닌다고. 제 물건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제 집 하나 찾아오지 못하는 그런 놈이라고.”

   나는 할 말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참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니까 법으로 소송 거셨잖아요? 이제 법정에서 판가름하면 되지, 이렇게 집으로 쳐들어오면 어떡해요?”

    “입 닥쳐. 그 따위 존댓말 쓰면 우아해지니? 소설가라고 말은 고상하게 하네. 그러지 마. 역겨우니까.”

   그녀는 그의 말과 달랐다. 침울하고 순한 것이 아니라 뜨겁고 거칠었다. 결국 나는 문에서 비켜섰다. 그녀가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뒤따라 들어가며  대문을 닫았다. 그녀는 마당의 화단에 얼어있는 꽃들을 둘러보고 돌확 위에 떨어져 있는 마른 잎들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이건 뭐, 완전 청승 그 자체네. 돌절구에 맷돌에 무슨 도자기 화분이 이렇게 많아? …근데 이렇게 계속 서있게 만들 거야?” 

   그러더니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해사한 얼굴에 짜증이 가득 얹혀있다. 

   “물도 한 잔 주지 않을 건가?”

   그녀가 거칠게 말했다. 그러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함부로 해. 뭐든. 마치 하인 부리듯 해. 마누라 집은 그래. 장인도 장모도 하나같이. 오래전부터 내려온 가풍 같은 거지.” 

   “그걸 어떻게 견뎌?” 

   “제사 때문이지. 제사상을 끝내주게 차리거든. 원래 손도 좀 크고. 입이 쩍쩍 벌어지지. 종손 며느리답게 말이야. 돌아가신 부모도 그걸 보고 편안히 눈 감았으니까. 자신의 제사상을 생각하면서 온갖 만행을 참았을 거야. 근데 말이지. 난 제사상만 보면 구토가 일어나더라고. 죽은 자의 미련도 산 자의 허위도 모두 한 상 위에 포진해 있다는 느낌 때문에 말이야.” 

   그녀는 마루에서 벌떡 일어나서 마당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마루에 방석을 갖다 두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올렸다. 물이 끓어오르는 동안에도 그녀는 마당에 있었다. 석류청에 뜨거운 물을 붓고 그녀를 기다렸다. 그제야 그녀가 마루로 올라왔다. 그 잠깐의 동안에도 냉기를 피하지 못했던지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 앞에 찻잔을 내밀었다. 그녀는 찻잔을 양 손바닥으로 감싸고 물끄러미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더니 조심스럽게 찻잔을 입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석류차는 처음 먹어보네. 석류꽃은 아는데. 참 예쁜데….”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 있을까, 소송을 앞에 두고 본처와 피고인 상간녀가 마주 앉아 이런 비현실적인 대화를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조금 전의 그날 선 기세는 다 어디로 갔는지, 꽃 타령이나 하는 본처라니. 더구나 이런 본처를 죽어버렸다고 말했던 인면수심의 그는 쏙 빠진 채라니.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불쑥 말했다. 

   “아직도 이런 집이 있었네. 이런 세월에, 이런 세상에. 이렇게 살면 글이 잘 나오려나. 아, 나도 어릴 적엔 이런 집에 살았어. 더럽게 불편하고 구질구질했는데.”

   그녀는 다시 찻잔을 들어 올려 차를 마셨다. 그녀는 말과 달리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차를 마셨다. 그것에 일말의 기대가 뭉클 삐져나오는 듯 느껴져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소송을 기각할 수도 있겠어. 그냥 적당한 합의금으로 해결될 수도 있겠어. 삼천 만 원의 위자료를 반액 삭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비굴한 심정이 된 나 자신이 못마땅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이런 살림에 위자료 내려면 힘에 부치겠네.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니까 뭐 여유도 없을 테고.”

   나는 그녀의 속마음을 알아차렸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사과였다.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무릎까지 조아리는 사과. 그걸 바라고 온 것이다. 내가 그에게 바란 것과 똑같이. 

   “증거가 확실하니까 한 번에 재판이 끝날 수도 있겠어. 그이가 증인 사실확인서까지 써줬으니까 말이야.”

   증인 사실확인서라니. 나는 쿵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내 쪽에 유리하도록 증인을 서주겠다고 한,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변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저쪽이 이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순 없지만 만약 안 했다면 증인으로 나올 수도 있어요. 증인을 부를 필요는 없겠다고 판사가 선고했지만 증인 확인서는 유효하고 이런 사건은 증인의 위력이 가장 세거든요. 어느 쪽에 증인이 설지 그게 관건인데 … 혹시 연락이 됩니까? 사실확인서는 절대 쓰지 말아 달라고 좀 사정해도 ….’ 

   그녀는 내가 사과할 의사도 합의를 구걸할 의사도 없음을 알았던지 다시 대문 밖에서의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돌변하였다. 그녀는 더 이상 차를 마시지 않았다. 몸을 사정없이 떨더니 화장실을 좀 써야겠다고 말했다. 나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든 채 화장실로 들어갔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세면대의 수돗물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곧 그녀가 나왔다. 

   “우리 남편 어디가 그렇게 좋았어? 대학 때부터 사귀었던 사람이라던데 왜 그때 결혼하지 못하고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일을 벌인 거야?”

   대답하지 않았다. 말할 가치도 의무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또다시 말했다. 

   “젖가슴을 애무하는 게 좋던가? 그 날렵하고 진득한 스킬 말이야? 그것에 빠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건가?”

   그녀는 나를 도발할 작정이었다. 그가 경고한 것은 대체로 적중했다. ‘도대체 종잡을 수가 없어. 하루 종일 시체처럼 뒹굴다가 나만 보면 발작인 거야. 앞뒤도 맞지 않는 말로 막다른 골목까지 밀어 넣거든. 그렇게 발작이 끝나고 나면 또 언제 그랬던가 하는 천진한 표정으로 쓰러져서 잠을 자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죽은 여자로 치부하고도 남지. 안 그래?’ 

   그녀가 벌떡 일어섰다. 

    “소설 쓴다면서 겁나지 않아? 내가 당신의 소설도 엉망이지만 행실은 더 엉망이라고, 상간녀라고 떠들어대면 어떻게 될지 말이야? 나 같으면 내 입을 막으려고 온갖 정성을 다 쏟을 텐데 말이야. 참 겁이 없어.”

   살의를 느꼈다. 나의 행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에 대한, 소설가에 대한 모욕 때문이었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또다시 마루 아래로 내려갔다. 신발이 차가운지 얼굴을 찌푸리며 ‘도대체 이런 집을 드나들다니 상상이 되지 않아. 얼마나 추위에 약한지 집에만 오면 난방을 최고조로 올리는 인간이 말이야.’ 하고 급발진하는 차처럼 또다시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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