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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Aug 30. 2023

소설가를 믿지 마세요 5

      ‘사건번호 **** , 원고 ***, 피고 ***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이렇게 판사가 물었고 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한 손을 들며 자신이 원고임을 알렸다. 판사는 결정문을 읽더니 ‘이해하십니까?’하고 물었고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두 건이 더 진행되고 그다음이 나였다. 역시 사건번호와 원고, 피고의 이름을 말하면서 참석 유무를 물었다. 나는 피고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바로 옆의 그 여자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판사는 원고의 청구금액 중 2천5백만 원을 배상하라는 말과 함께 소송비용의 삼분의 이도 피고의 몫임을 알렸다. 앞의 남자와 똑같이 ‘이해하셨습니까?’ 하고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이어 내 옆의 여자가 손을 들고 대답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밖으로 나와 또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갑자기 요의가 느껴졌다. 이천 오백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결국 집을 담보로 대출하는 수밖에 없고 만약 그의 아내가 일부승소에 해당하는 위자료 금액 때문에 부당함을 내세워 항소를 한다면 속절없이 대출금 액수는 커질 수밖에 없다. 

      화장실을 나오려고 할 때였다. 그 여자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는 급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구토를 하는지 웩웩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좀 있어요. 할 말 있어요.’ 여자가 소리쳤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서 있었다. 이윽고 여자가 나오더니 손을 씻고 입을 헹구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난 같은 처지인 줄 알고 온갖 말을 다 했네. 상간녀 주제에 이렇게 당당하게 법정까지 나오는 배포가 뻔뻔하네. 안 그래?”      

   “말조심해요. 난 당신을 무시할 생각이 없으니까 당신도 나를 그렇게 대해주는 게 좋아요.”

   “뭐, 말조심. 이게 정말.”

   여자가 내 뺨을 후려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한 손으로 뺨을 감쌌다.  그리고 화장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러자 여자가 빠른 걸음으로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그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다 낼게. 위자료든 변호사비든.’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럴 필요 없어. 그만한 값어치가 있었어. 화대 정도로 생각할 거니까. 너의 거짓말을 알지 못한 거, 알고서도 확인하지 못한 거, 그 미적지근한 향수에 다소 오래 젖은 것, 가끔 너랑 살아도 되겠구나 하고 잠시 희망을 품어본 것, 무엇보다 너로 인해 소설 속 남자의 심리를 묘사하는 것에 더 이상 주저하거나 망설일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다행이지뭐. 그러니까 소설의 소재를 제공받은 대가로도 충분해.”

   그러자 그의 아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 또한 급발진하였다.         

  “말 다했어? 내가 네 엄마한테 얼마나 잘해주었는데, 그리고 너와 놀면서 얼마나 돈을 많이 썼는데 말이야.”

   막장의 결말에 도달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또다시 심호흡을 하였다. 

   “내가 네 성기를 산 것으로, 그것을 실컷 흡입한 것으로 그래서 한파의 겨울과 봄을 잘 보냈다고, 따뜻하게 뜨겁게 잘 보낸 것으로 퉁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지. 다신 오지 마. 오면 스토커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고, 네 마누라에게도 알릴 거니까. 넌 널 가운데 두고 두 여자가 이렇게 치고받고 하는 것을 즐기고 싶어 미치고 환장하겠지만 말이야. 이제 더 이상 두고보진 않겠어.”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나를 쓸 작정이군. 형편없이 볼품없는 놈으로 그리겠지. 그렇다면 내가 대적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야. 소설가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 믿어선 신세 조진다는 것, 나는 그것을 퍼뜨리는 거지. 네가 속해 있는 문인협회에 장문의 투서를 쓴다면 말이지. 너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도록 은유와 상징이라고 했던가, 그래 시를 쓰려면 그게 필요하다고 했지? 나는 소설 보다 시가 어울린다고 말했지? 너에게서 배운 그것을 교묘하게 장치하는 거지. 아직도 게임은 끝나지 않았어. 절대 쓰지 않겠다고 한다면 해결은 쉬워져. 네가 대출을 할 필요가 없도록 위자료를 댈 거니까.”     

   “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해.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봐.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틸 거니까. 현실에선 내가 패배자로 남게 되겠지만 소설 세계에선 내가 우위가 될 거니까. 상관없어.”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 지루하면서 더럽기만 하던 관계 중독에서 그제야 완전히 해방되는 느낌이 들었다.      

     은행에서  돌아왔을 때 대문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보았다. 나는 대문을 열고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넣어둔 감잎차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가 찻잔을 들이켰다. 목이 말랐던 것일까, 잔은 이내 바닥났다. 

   “이제 더 이상 오해받을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아. 난 당신을 곤란하게 수치스럽게 만들 수 있는 여자니까, 그걸 경고하려고 온 거야. 또다시 내 남편과 서로 연락하거나 만나거나 하면, 난 무슨 짓이든 할 거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하라고, 사람 말 같지 않아?”

   “존댓말을 해요. 말 놓지 말고.”

   그러자 그녀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 또한 그녀를 응시했다.   

   ‘당신은 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지금 혼절할 수도 있을 거야. 당신의 남편은 당신이 오래전에 죽은 것으로, 암으로 죽은 것으로 말했으니까. 실지로 당신의 남편은 홀아비처럼 징징거리고 애정을 구걸하는 작자였어. 당신도 당신의 남편처럼 애정을 구걸하고 강요하고 소유하려고만 하는 족속이야.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진 못하겠지. 소유욕 때문에 찾아왔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사랑에 근접해.’ 나는 이런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또다시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루에서 일어섰다. 성큼 앞장선 그녀는 나무대문의 걸쇠가 잘 열리지 않는지 나를 뒤돌아보았다. 

   “녹이 슬어서 잘 안 되네요.”

   나는 이런 말을 하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순간 그녀가 나에게 던지듯 말했다. 

   “왜 질투하지 않아요?” 

   나는 그녀가 계속 나를 의심하도록 내버려 둘까, 아니면 해방시켜 줄까하고 잠시 갈등하였다. 

   “질투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요? 질투했는데, 여전히 질투하고 있는데.”

   나는 그녀를 우쭐거리게 만들어주기로 작정하였다.

   “거짓말. 거짓말. 정말 질투하면 그런 말 못 해요.”

   “사람마다 달라요.”

   “소설가라서 그런지 말이 청산유수 같아. 믿을 수가 없어요.”

   “돈은 이번 주 안으로 변호사를 통해 송금이 될 거예요.”

   “그래야지요. … 소설, 이번 일도 소설로 쓸 건가요? 그럼 내가 나오겠네요. 아주 형편없는 여자로 그리겠지요? 그것으로 복수할 셈이니까.”

   나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렇게 하면 좋겠어요?”

   그러자 그녀가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마치 대단한 무기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 쥐뿔도 없으면서, 그저 소설을 쓴다는 것밖에 없으면서. 그래서 나는 소설가를 시시하게 생각해. 만약 당신이 내 일을 소설로 쓴다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불매운동을 할 거야. 당신 소설 읽지 말라고. 그리고 소설가는 더더욱 형편없다고 말이야.” 

   “소설가를 믿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소설은 허구인데, 허구라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소설이 진짜 세상인지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 그게 미친 거지. 작가도 독자도 말이야. 모두 속고 있어. 속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아… 참, 말해줄까요? 소설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남편이 죽은 걸로 알고 있어. 남편과 사별했다고 내가 떠들고 다녔으니까. 그러니까 당신이 패소한 것은 정말 억울한 일인 거야. 이제 다 끝났으니까 말해주는 거야. 진실을 알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 난 표정을 지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소설가들은 말이야. 소설을 쓰지 않는 일반인만 못해. 그냥 이야기를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있어 진실의 맨바닥은 보지 못한다는 거지.”

   나는 또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에는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 그녀의 소설이나 소설가의 본질에 대한 직관은  아주 엉터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로 당신은 더더욱 소설을 , 소설가를 믿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면 되겠지. 삶의 절반도 알지 못하면서 말이지.’

   나는 그것을 입 밖으로 발화하지 않았다. 순간 능소화가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철나무 위를 타고 올라간 능소화 한 송이가 마당에 떨어진 것이다. 그녀가 그쪽으로 걸어갔다. 떨어진 그것을 손에 들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겼는데, 이겼는데도 이것처럼 떨어지는 것 같은, 수명이 다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는 그녀가 꽃송이를 손바닥 위에 올려둔 채 혼잣말을 하는 것을 보자 마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러자 더더욱 그녀가 귀찮아졌다. 이제 그녀가 내 집에서 한시라도 빨리 사라져 주길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때 그녀가 꽃을 바닥에 떨어뜨리더니 발로 짓이겼다. 

   “내가 다시 올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우리 남편도. 이런 일을 당했는데 여기에 다시 온다면 나 죽고 너 죽자 하는 것으로 끝낼 거니까. 그러니까 소설만 쓰다가 죽어버려요.” 

   그리고 대문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녀가 또다시 내 집으로 오게 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의 지루한 일상에서 이번 일만큼 격렬하고 짜릿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남아도는 시간이 있고 그 잉여의 시간과 감정은 나에게, 죄인으로 판명된 나에게 자기 위로와 연민을 버무린 토악질로 뿌려대고 싶어 근질근질할 것이니까. 물론 법원에서 만난 그 여자도 나에게 전화를 걸어올 것이다.  ‘이겼는데도 이긴 것 같지 않아요. 당신은 행복한가요? 행복하면 안 되는데, 안 되어야 하잖아요? 내가 이렇게 억울하고 고통스러운데 말이에요. 잠이 오질 않아요. 한번 만나요. 참 그때 때린 거 미안해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차가 주차한 곳으로 걸어갔고 나는 더 이상 따라나서지 않았다. 문을 닫고 들어오자 심장이 뛰기 시작하였다. 방으로 들어가 책상으로 향했다. 심호흡을 한 뒤 쓰기 시작했다. 소설의 제목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설의 시작도 전개도 주제도 정해지지 않고서는 처음이었다. 소설가를 믿지 마세요. 나는 이렇게 썼고 뒤이어 또다른 문장이  계속 떠올랐다. 나는 그것을 빠르게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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