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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Aug 30. 2023

해당화 2

작업실의 전면 유리창은 새로 갈았는지 말끔했다. 놈이 가게로 와 금고의 돈을 모조리 훔쳐 달아났던 날, 나는 한밤중에 이 도시로 왔었다. 하지만 놈은 나를 피해 달아났고 나는 작업실 유리창을 향해 돌을 던졌다. 와장창 부서지는 유리창을 보면서 놈의 몸통도 대갈통도 피를 뿌리며 박살이 났으면 하고 염원했었다.  

   “어머,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 어쩌면 여전히 맨얼굴에 작업복차림으로 오다니. 아무리 늙어도 여자는 여자인데 말이야. 결혼도 못하고 억울하지도 않아?”

   여자가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갑자기 내 옆구리에 팔짱을 끼었다. 나는 여자의 손을 빼내었다. 

   “어쩜 핏줄 아니랄까 봐, 쌀쌀하기는 정말.”

   여자를 만난 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그 자리를 떠나고 싶었다. 밀린 월세를 던져주고 작은 언니가 있는 암자로 얼른 달려가고 싶었다.  

   여자가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 앉아 있던 노파가 빤히 우리의 얼굴을 보았다. 

   “어머 깜짝이야. 귀신인 줄 알았네. 아, 어르신 안녕하세요. 여전히 정정하시네요.”

   노파가 여자와 뒤이어 들어오는 나를 올려보았다. ‘남편을 혼자 내버려 두고 내빼다니. 쯧쯧.’ 노파가 여자를 향해 쏘아붙이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동생이구먼. 영락없네.” 

   “어머, 첫눈에 알아보네요. 맞아요. 막내 여동생이지요.”

   호들갑을 떠는 여자의 말이 길어질까 봐 얼른 노파에게 돈을 내밀었다. 노파가 메마른 손으로 돈을 천천히 세었다.  노파가 건네준 열쇠로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집을 비워두었던 때문인지 냉기와 함께 매캐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작업실과 방이 따로 구분이 없는 실내에 온통 이젤과 물감, 붓이 어지럽게 널려져 있었다. 벽엔 단 두 점의 그림이 걸려있을 뿐이다. 한 점은 병원에서 보았던 그림이었고 또 하나는 보라색 소파 위에 세 명의 여자가 앉아 있는 그림이다. 마치 테이블 위의 사과나 모과, 복숭아 등의 정물을 그린 것처럼 무심한 표정의 세 여자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한없이 어두운 느낌의 그 그림은 우습게도 화려한 금빛 액자로 장식이 되어있어 과장된 가면처럼, 우스꽝스러운 비극처럼 느껴졌다. 

   “어머, 이게 아직도 있네. 이미 오래전에 팔아버린 줄 알았는데. 저 그림을 탐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알아? 이이는 이상하게 전시회 때마다 저걸 전시했어. 돈을 많이 주고 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나타났는데도 절대 팔지 않았어. 내가 그랬지. 팔고 또 똑같이 그리면 되지 왜 그러냐고. 그러니까 뭐라는 줄 알아? 그건 장사지, 예술이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절대 저 그림은 팔지 않을 거라고, 죽을 때 자신과 같이 태울 거라고. 숨 쉬며 사는 주제에 죽는 이야길 얼마나 하는지. 어머, 이건 또 뭐야? 결국 이 그림을 샀네. 원 참 월세도 못 내는 주제에 이 그림이 대체 뭐라고. 아니 이걸 똑같이 그리려고 작정했던 거야?”

   여자의 말대로 작업실 바닥에는 그리다 만 캔버스 그림이 여러 장 나뒹굴고 있었는데 한결같이 해당화를 따라 그린 것이었다. 바다와 먹구름, 해당화와 세 여자의 윤곽만 데생이 된 것과 제일 앞에 앉아있는 여자를 뺀 나머지 여자만 채색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상한 점은 앉아있는 여자의 얼굴만 텅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눈, 코, 입이 없는 텅 빈 얼굴을 보자 그제야 놈이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 차마 무엇을 그릴 수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놈의 죄책감이니 속죄에 나 또한 물들지 않기 위해 거칠게 그것들을 발로 아무렇게나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러자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림을 그렇게 발로 밀치면 어떡해.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그러는 거 아니야. 가족들이 단 한 번이라도 전시회에 와서 축하를 해 준 적 있어? 부모님은 그렇다 치더라도 여동생이 두 명이나 있는데도 말이지. 근데 그 많던 그림이 왜 한 점만 남아있지? 그 사이에 다 팔았나 보네. 자기 작품 몽땅 다 팔아서 저걸 산건가 보네, 쯧쯧.”

   여자의 끊임없이 지껄이는 말속에서 또렷이 또 하나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미친놈, 사내놈이 그림이나 그려서 뭐 하려고. 다시 그리기만 해 봐라. 손모가지를 잘라 버릴 테니.’ 아버지는 놈의 방으로 들어가서 스케치북과 물감, 물감 통, 나무 이젤, 팔레트, 도화지 묶음 등을 몽땅 수레에 싣고 바닷가로 달려갔다. 그러자 놈은 마루에 걸린 괘종시계를 떼어내어 마당으로 내던졌다.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시계가 산산조각이 났다. 장독대에서 나를 목욕시키던 어머니가 놈에게로 달려갔다. ‘이 놈의 집구석,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 ‘넌 우리 집의 기둥이 아니니?  네 밑에 여동생이 모두 셋이다.’ ‘내 인생 살기도 힘들어. 저까짓 계집애들을 내가 왜 책임져야 하는데? 학교도 보내지 말고 물일 시키라고. 다른 집은 다 그러는데 왜 우리 집만 이래? 계집애가 학교가 다 뭐야.’ 놈은 아버지에 대한 화풀이를 어머니에게 하고 있었다. 나는 차갑게 식어가는 물속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지옥. 나는 입 밖으로 지옥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단번에 타락한 어른으로 성장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차 한 잔 할까? 다행히 커피가 있네.”

   여자가 달그락거리며 커피잔을 챙겼다. 나는 이젤에 걸려있는 놈이 그리다 만 그림을 또다시 바라보았다. 이인성 화가의 해당화를 똑같이 따라 그리려고 했던 게 분명했다. 구도도 인물도 풍경도 똑같았다. 유화물감으로 채색을 마친 두 명의 여자애와 텅 빈 얼굴의 여자를 뚫어져라 보았다. 그릴 수 없겠지. 차마 큰언니는 그릴 수 없겠지. 벌을 받아야 해. 고통을 느껴야 해. 그릴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비참하게 죽어야 해. 나는 아버지처럼 이를 악물었다.   

   여자가 나에게 커피잔을 내밀었다. 

   “우리가 그림을 모르니까 그렇지, 잘 그린 것 같지 않아? 이 바다색 좀 봐. 진짜 같지? 여기서 살 때 자주 바다에 가곤 했는데.”

   일순 여자의 얼굴이 굳어지는 듯했다. 여자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가, 마치 끊어진 다리처럼 어색하고 참혹한 침묵이 흘렀다. 여자의 얼굴 위로 한 줄기 햇살이 사선으로 긋고 있었다. 그러다가 여자가 말했다.  

   “그이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 이혼하고 난 뒤 죽을까 말까 하루에도 몇 번씩 갈등하고 있던 때였어. 그럴 때마다 이 도시에 오곤 했는데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그이를 만난 거야.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나타난 그이가 말했어. ‘얼굴에 관을 뒤집어쓰고 있군.’ 그 한 마디에 완전히 그이에게 빠져버렸어. 호호.”

   여자는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그날 사람들의 눈을 피해 왕릉을 올라갔어. 죽은 사람과 함께 강제로 매장된 사람들의 억울하고 서글픈 무덤을 올라간 거야. 그렇게 죽어갔던 사람들이 내가 사는 이유가 될 줄은 몰랐지. 아, 나는 그이를 떠나면 안 되었어.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인데 말이야. 그이에게 이상한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어. 이 그림이 말해주고 있잖아. 안 그래? 이 그림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절대 무서운 일 같은 건 생기지 않을 거야.”

   여자의 말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상한 일은 말이야. 어느 날 그이가 갑자기 차를 세우라고 소리치지 않겠어? 바다에 눈이 막 내리고 있었어. 눈은 바다에 닿기도 전에 녹아버렸어. 그이가 해변으로 달려가더라고. 해변 가장자리까지 달려가서는 몸을 잔돌 위로 엎드리고는 글쎄 얼굴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입을 담그고는 바닷물을 삼키는 거야. 다 삼켜야 한다고, 그래야 죽은 동생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그런 사람이야. 그이가. 그이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사는지 알아? 나는 그것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어. 그래서 그이 곁을 떠난 거야. 관을 뒤집어쓴 것은 내가 아니라 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말이야.”

   여자의 말에 일순간 내 몸이 경직되었다. 발아래 둥근 잔돌들이 부서지고 놈의 이젤이, 물감을 푼 팔레트가 바닷물 속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놈의 친구들이 낄낄거리며 오줌을 갈기고 그 오줌 줄기가 바닷물과 합쳐지고 해당화 울타리가 마구 흔들리고 그러다가 그들이 달아났던, 일련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놈이 작은 언니와 내 손을 잡고 ‘오늘 일은 없었던 거야. 알았어? 만약 사실대로 말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하고 말했다. 한참 뒤에 큰언니는 놈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늦도록 아버지와 어머니의 방엔 불이 켜져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놈과 실신한 듯 누워있는 큰 언니, 그리고 입을 봉인한 나와 작은 언니. 오랜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가 말했다. ‘이 동네사람들처럼 결국 속바지도 입히지 않고 내보내는 꼴이 되어버렸으니. 허참.’  ‘떠들어대면 우리만 손해예요. 어디 학교나 제대로 마칠 수 있겠어요? 가뜩이나 딸년들 학교 보내는 정신 나간 집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처지에.’ 어머니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벽에 등을 기댔다. 여자가 불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가슴속 깊숙이 봉인했던 기억의 조각들이 제멋대로 튀어나와 온몸을 난도질하는 느낌에 나는 얼굴을 무릎 속에 파묻었다. 이내 여자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밀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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