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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Aug 30. 2023

해당화 3

비질 자국이 선명한 마당은 적요하다. 암자에 목탁소리가 낮게 울려 퍼지고 있다. 목탁 소리에 언니의 비탄이 서려있는 것일까, 처절한 절규처럼 들렸다. 몇 해 전 목숨을 내던지려고 했던 언니였다. 시봉 하던 행자가 아니었다면 작은 언니마저 잃을 뻔하였다. ‘아무래도 불길해요. 며칠째 물 한 모금도 드시지 않고 기도만 하고 계세요.’ 내가 한달음에 달려갔을 때 언니는 치사량의 약을 옆에 둔 채 좌선 중이었다. 언니가 말했다. '언니처럼 나도 똑같이 가는 수밖에. 죽어서 남자 몸으로 태어나는 수밖에. 징그럽구나. 여자라는 것.'

   “스님이 여기 읍내 보육원 아동들의 보험을 후원하고 계셨거든요. 계약자이자 보호자로 되어 있어요. 보험회사에서 갱신 절차 때문에 여기로 전화를 했는데 그걸 한 신도가 대신 받았나 봐요. 그날 제가 사미니계를 받으러 가는 바람에 여기 없었거든요. 그 신도는 스님이 여러 아이를 낳고 그것을 보육원에 버린 것으로 마구 소문을 퍼뜨렸던 거예요. 스님의 승적 박탈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동네 입구에 걸기도 하고 난리가 아니었어요. 보육원에 전화 한 통만 했어도 아니, 스님의 말을 믿기만 하였어도 될 일인데 말이에요.”

   보육원 원장이 달려와 신도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난 뒤에야 소문은 잠잠해졌다. 신도들은 삼천 배를 하면서 사죄했지만 언니는 생기를 잃어버렸다. 

   염불이 끊어지고 언니가 이마를 바닥에 조아리며 삼배를 하였다. 

   “스님, 저 왔어요.”

   언니가 제단 위의 촛불을 끄고 옆의 차방으로 들어갔다. 

   “마셔보렴. 몸이 따뜻해질 거야.”

   “난 미역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어떤 것을 먹어도 짠맛이 나는 걸요. 물미역을 좀 가져왔으니까 드셔보세요.”

   내 말에 언니가 슬픈 표정을 지었고 그것을 보자 나는 놈의 여자처럼 수다스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 행자님은 이제 스님이 된 건가요? 시봉 하는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 해요?”

   “무문관에 들어갔어. 이제 공부해야지. 내 시봉은 필요 없어. 자신의 몸도 돌보지 못하면서 수행자라고 할 수 있나? 그래 처사는 만났어?”

    “못 만났어요. 그림도 이제 집어치웠나 봐요.”

   나는 놈이 해당화 그림을 산 것이나 그 해당화를 똑같이 따라 그리려고 했던 것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았다. 혹여나 언니가 놈을 가엾게 여겨 언니 몫의 돈을 놈에게 양도할까 봐서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닌데. 혹여 나쁜 생각을 하는 건 아닌지.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말이야.”

   언니가 말을 고르느라 숨을 멈추었다. 그러자 또다시 기억의 조각들이 마구 떠다녔다. 그 바닷가 마을, 주술과 미신이라는 것을 밥처럼 신봉하던 사람들, 여자애가 생리를 하기 시작하면 치마 속에 아무것도 입히지 않은 채 밖으로 내보내는 야만적인 풍습. 그것은 해안가를 따라 이어져 있는 군 초소 때문이었다. 속옷도 입지 않는 여자애를 군인이 덮치게 되어, 운 좋게 임신이라도 된다면 그것이 그 동네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물질만 하며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예외였다. 마을에서 우리 네 남매는 유일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여자라도 배워야 한다. 하나라도 배워서 이 동네에서 빠져나가야 해.’ 어머니의 신념이었다. 

   언니가 말했다. 

   “이것을 보여줄까?”

   언니가 잿빛 승복을 들추었다. 꽃 자수가 그려져 있는 하얀 단속곳이다.   

   “그날 빨랫줄에 걸린 언니의 단속곳을 내가 가로챘어. 내 것은 덜 말랐고 무엇보다 난 언니의 단속곳 끝단에 새겨져 있는 꽃 자수가 탐이 났거든. 언니는 할 수 없이 단속곳 없이 바다로 나가야 했어. 그게 그런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지는 정말 몰랐어.”

   언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날, 눈부신 햇살 아래 큰언니의 삼단 같은 머리칼과 가는 다리는 해당화처럼 빛났다. 오빠는 우리를 그렸다. 오빠가 다정할 때는 그때가 유일했다. 아버지의 눈을 피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 오빠의 학교 친구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 친구들이 오빠의 등 뒤에서 그림을 훔쳐보면서 시시덕거렸다. 오빠는 뭐라 저항도 하지 못했고 우리는 그런 속수무책인 오빠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나중엔 우리를 에워싸고 희롱하였다. ‘와, 이 계집애 봐라, 속바지도 없이 돌아다니고 있네. 양년처럼 말이야. 공부 좀 한다고, 이런 년은 맛을 좀 보여줘야 돼.’ 그들 중 한 놈이 큰언니의 손목을 잡아 낚아채 해당화 울타리 쪽으로 끌고 갔다. 또 다른 한 놈은 오빠의 목덜미를 팔꿈치로 찍어 눌렀다. 잔돌 위에 무릎이 꺾인 채 쓰러진 오빠는 신음소리를 내었고 나와 작은언니는 해당화 울타리 쪽으로 뛰어가다가 나머지 한 놈의 발에 걸려 나뒹굴었다. 오빠가 비명을 질렀고 그러자 오빠를 찍어 누르던 놈이 오빠의 목덜미에 칼을 들이대었다. 그 검은색의 칼이 뜨거운 햇살에 하얗게 표백되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러자 마구 흔들리던 해당화 무더기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큰언니의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야, 튀어. 큰일 났어. 이 년 죽은 거 아냐? 눈동자가 완전히 돌아갔어. 뭐 해? 어서 도망쳐.”

   잔돌 위로 발자국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고 뜨끈한 것이 내 가랑이를 타고 내려왔다.  

   그날 이후 큰언니는 돌변했다. 말이 거칠어졌고 남자애들과 돌아다니느라 자주 학교를 빼먹었고 나중에는 집을 나가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애간장을 태웠고 오빠는 방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고 작은언니는 학교를 가지 않았고 나는 오줌을 자주 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마을 수협의 조합장이 대구의 자갈마당이라는 유곽에서 큰언니를 봤다고 떠들어대고 다녔다. 아버지는 한달음에 거길 찾아갔다. 하지만 아버지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놓쳤어. 얼마나 빨리 달아나는지 잡을 수가 없었어. 그곳을 왜 자갈마당이라고 했는지 알겠더라고. 달아나지 못하도록, 몰래 도망치는 것을 감시할 수 있도록 그렇게 자갈을 깔아놓았겠지. 나쁜 놈들. 저벅저벅, 저벅저벅, 여기 바닷가의 잔돌 소리와 어쩌면 그렇게 똑같이 들리는지 심장이 후들거리는데. 어쩌면 거기서 그렇게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그걸 아니까 이 아비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달아나는 거 아니겠어? 여기 오면 뭐 해. 여기도 지옥일 텐데.’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큰언니가 있는 곳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여기, 지옥보다 덜한 곳이라면 거기가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큰언니는 해변에서 발견되었다. 밤새 태풍이 몰아치던 다음 날이었다. 뒤채는 파도에 해변의 잔돌 위로 사정없이 내처져 까무룩 해진 오징어와 물고기를 줍기 위해 나간 동네사람들이 언니의 시신을 보았던 것이다. 마치 아버지가 깎은 돌 표면에서 자란 미역다발인 듯 그것이 큰언니를 관처럼 감싸듯 했고 언니의 분홍색 아랫도리에 어머니가 혼절하였다. 

   굿판이 벌어졌다. 무당이 몇 시간이고 공중을 날 듯 버선발로 뛰었다. ‘아이고 불쌍한 처녀가 있네. 하초에 피를 흘리며 물속에서 울고 있네.’ 나는 그때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 한겨울에 푸르고 가는 뱀 한 마리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어서 어머니의 곁으로 가는 것을. 무당이 놀라 마루 위로 펄쩍 올라가고 작은 언니가 얼어붙은 나를 안았다. 그때 아버지가 낫을 들고 나타났다. 아버지가 그 뱀을 낫으로 갈랐다. 뱀의 몸이 반쪽이 나면서 피가 흘렀다. 거의 투명에 가까운 피가 찔끔 마당을 적셨다. 아버지가 혼이 나간 듯 중얼거렸다. ‘사람으로 태어나거라. 이 불쌍한 것아. 이 아비가 죽어 뱀이 될 테니.’ 

   그리고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집과 미역 어장을 팔고 도시로 이사했다. 평생 물질하던 아버지가 도시에서 먹고살 길은 없었다. 오랜 친구였던 황영감이 없었다면 우리 가족은 죽은 목숨이었다. 결국 아버진 또다시 미역다발을 보고 만지고 다듬어야 했다. 얼마나 이를 악물었던지 잇몸이 내려앉았고 이가 몽땅 빠졌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중얼거렸다. ‘우리가 잘못했네요. 도망치는 게 아니었어요. 그 놈들을 찾아서 때려잡았어야 했네요. 죄인을 놔두고 생때같은 딸만 죽였네요. 그깟 졸업장이 뭐라고.’ 

   중학교 졸업식을 앞두고 작은언니는 출가했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그것을 막지 않았다. 서로를 보는 것이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한 사람이라도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나았다. 우리 가족은 침묵이 쌓아 올린 절벽 위에 서 있는 집처럼 위태로웠다.   

   언니의 눈언저리가 붉어졌다.  

   “내가 이 단속곳을 빼앗지만 않았더라도 언니가 그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거야. 잘못은 나에게 있어. 그러니까 처사, 오빠를 용서해야 해. 언니도 그것을 원할 거야. 아버지도 어머니도.”

   언니의 굵은 눈물이 단속곳 위로 떨어졌다. 그러자 큰언니가 수를 놓았던 꽃 자수가 선명하게 피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가 차갑게 식어갈 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바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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