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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원 Aug 30. 2023

해당화 1

트럭기사는 미역 자루를 던져주고 달아났다. 맞은편 점포의 황영감이 비틀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얼굴 가득 고단함이 배어있다.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 새벽부터 문을 여는 그로서는 젖은 미역 한 다발이 천근만근처럼 느껴질 것이다. 

   “남자 직원을 아직도 구하지 못한 거야? 큰일이군. 나 같은 늙은이가 아니면 이런 일을 할 사내가 어디 있겠냐마는 이러다간 거래처를 모두 빼앗기고 말 거야. ”

   황영감이 말했다. 이미 몇 군데의 소매점이 미수금을 갚지도 않은 채 거래를 끊었다. 그들은 장날 제 때 팔지 못해 손해를 본 게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도리어 고함을 질렀다. 가게 바닥에 잔뜩 쌓여있는 미역 자루를 둘러보다가 불현듯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나는 화들짝 놀라 사정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놈을 떠올리다니. 놈을 떠올리는 지경에 왔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전화하지 않았지? 오라버니에게 말이야.”

   백내장이 진행되고 있는 황영감의 탁주 같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내가 놈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챈 것이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미역 자루의 바로 한가운데를 칼로 사정없이 푹 찔렀다. 검푸른 생미역이 줄줄이 쏟아졌다.  

   미역 다발은 사정없이 무겁고 차가워 장갑을 두 겹이나 꼈는데도 진저리가 쳐졌다. 미역 대가리를 적당한 간격으로 자르고 줄기에 붙어있는 수초를 떼어낸 황영감은 그것을 내 쪽으로 던졌다. 나는 그것을 저울에 달아 포장하고 수레에 실어 대형 냉장고에 넣는다. 손이 저릿한지 황영감이 장갑 낀 손을 아래위로 흔들어대었다. 그의 입에서 뿌연 입김이 연신 새어 나왔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뿜어내었던 깊은숨이 떠올랐다. 미역포자가 잘 붙도록 돌의 표면을 깎기 위해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던 아버지는 물 위로 올라올 때마다 숨비소리를 내뿜었다. ‘내가 죽거든 가게를 정리해라. 너도 이제 이런 일을 하기엔 버거울 나이야. 너와 네 언니가 살 돈은 될 거야. 하나 네 오라버니에겐 단 한 푼도 주어선 안 된다.’  어머니가 죽고 채 일년도 되지 않아서였다. 결국 큰언니에 이어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장례가 모두 바다에서 치러졌다.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던 작은 언니의 염불과 목탁소리는 끓어 넘치는 파도에 묻혔다가 다시 떠오르곤 하였다. 

   아버지의 뼛가루를 막 뿌릴 때였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놈이 바닷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고 뒤이어 놈의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따라 들어갔다. ‘저 바다가 놈을 삼켜버리면 좋겠어.’ 나는 이를 악문 채 저주를 퍼부었다.  

   “뭐 해? 전화받지 않고?”

   황영감의 말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귀에 붙인 채 한 손으로는 미역다발을 비닐봉지에 넣었다.   

   “오랜만이지?”

   목소리를 듣자마자 와락 짜증이 솟구쳤다.  ‘왜 그래요? 자기가 뭘 잘못했다고? 사람 목숨은 하늘에 달린 거지, 자기 잘못이 아니야. 죽은 동생이든 어머니든 아버지든 자긴 아무 잘못이 없어.’  황영감이 놈과 여자를 해변으로 건져 올렸고 여자는 뭍에 올라오자마자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정말 너무하네. 얼마나 해야 직성이 풀리겠어? 죽은 사람을 두고 산 사람을 이렇게 잡으면 어쩌자는 거야? 저이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데. 그림 그린다고 사람대접도 못 받고. 저이는 뭐 살고 싶어서 사는 줄 알아? 겨우 술로 버티며 살아오고 있어. 정말 그러는 거 아니야.”

   놈은 여자가 악다구니를 치는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해변에 쓰러져 누워 있었다. 여자의 치마 속으로 숨어 들어간 무기력하고 무책임하고 비겁한 놈을 나는 으르렁대며 노려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다시 만났던 곳은 병원이었다. 여자는 나에게 전화하기 뭣했던지, 작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교통사고라는데 문병은 가야 하지 않겠니? 많이 다치지 않았는지 보고 와.’ 작은 언니가 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병원 복도에서 만난 놈은 나를 본척만척하고 어느 한 그림만 응시하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목을 있는 대로 쭉 뺀 채 벽면 한쪽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그림을 바라보고 있는 놈을 보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가게 일은 걱정도 되지 않느냐, 가져간 돈은 왜 돌려주지 않느냐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술이 원수지 뭐. 술에 취한 채 길을 걷다가 차에 받힌 거라고 하네. 몸이 붕 떠서 몇 미터나 멀리 떨어졌다는데 다리만 골절됐으니까 얼마나 다행이야. 머리나 손을 다쳤다면 영영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 아냐. 근데 운전자가 없어. 뺑소니친 거야. 새벽에 일어난 일이라서 아무도 본 사람이 없고. cctv도 없다는 거야.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

   여자의 넋두리는 끝이 없었다. 나는 그림을 바라보는 놈의 뒤통수를 노려보다가 놈이 빠져있는 그림을 올려다보았다. 해안가 만발한 해당화 옆에서 세 여자가 앉거나 서 있는 그림이었다. 먹구름이 낀 하늘, 검푸른 바다 위의 돛단배, 말 한 마리, 해당화, 추운 듯 웅크린 여자와 서 있는 두 여자애, 계절을 알 수 없는 여자의 옷차림과 표정이 주술처럼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저 그림 알지? 명색이 화가오빠의 여동생인데 그 정도는 알아야지. 저건 천재화가 이인성의 작품인데… 저 화가도 이이처럼 여동생이 있었던가봐… 근데 저 여자애들의 표정이 좀 이상하지 않아? 하나같이 어두워. 일제강점기 때라서 그런가. 어쨌든 그림을 도통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봐도 보통 그림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이이도 집에서 좀 밀어주었더라면 저 화가처럼 유명해졌을 텐데 말이야. 이이는 저 화가가 그렇게 좋은가 봐. 저 화가의 그림에는 말할 수 없는 고백이, 비밀이, 슬픔이, 정신이 살아있다고 했어. 그러니까 병원 원무과장이 모조품이라며, 팔 의사가 전혀 없다고 하는데도 저렇게 막무가내지.  아버님도 참 너무 하시지. 가게든 집이든 재산을 전부 딸에게 돌려놓고.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이이가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엄연히 상속법이 있고 무엇보다 하나뿐인 아들 아니야? 이제 이이 옆에는 나밖에 없어. 나밖에….”   

   여자는 가난하고 실패한 화가를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여인이라도 된 듯 ‘그렇게 오래 올려다보면 목 아파.’ 하면서 한 손으로 놈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나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고개를 돌렸는데 그때 그림 아래 ‘해당화’라는 제목이 아크릴판에 씌어 있는 것을 보았다. 해당화. 오래전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마구 흔들리고 있었던 해변의 해당화 울타리와 그것이 일순 멈추었을 때의 적막감과 공포. 나는 가지고 간 돈 봉투를 놈의 휠체어에 던지고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나왔었다. 

   그때의 일이 떠올라 차갑게 말했다. 

   “그래서 요점이 뭐예요? 지금 내가 바빠서요.”

   “그이가 있는 작업실의 주인에게서 전화가 왔어. 월세가 몇 달이나 밀렸는데 얼굴도 통 안 보이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계약서에 나와 있는 내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네. 밀린 월세를 내지 않으면 당장 작업실을 빼겠다고. 그이 그림이 길바닥에 나앉게 돼. 그럼 어떻게 되겠어? 나도 여기 미장원이 잘 안 돼서 돈 나올 데가 없어. 사실 지금까지,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전시회에 들어간 내 돈만 해도 아파트 한 채는 샀을 거야. 사실 우리가 결혼을 했나, 아이를 만들었나, 안 그래? 어쨌든 그림은 건져야 할 거 아냐. 거기서 만나자고.”

   여자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미역이 든 포장비닐을 거칠게 바닥에 내던졌다. 그 서슬에 봉지가 찢어지며 미역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황영감이 말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믿어선 안 돼. 하나뿐인 오라버니 아닌가. 내가 어떻게 해서든 납품을 맞춰 볼 테니까 다녀와. 그래야 내가 저승에 가서 자네 아버지를 떳떳하게 만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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